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탁 진 Apr 23. 2022

나에게도 찬스가 있다...

날아간 찬스...

                    나에게도 찬스가 있다.



  겨울철이 되면 북쪽에서 백조들이 하얀 날개를 휘저으며 따뜻한 남으로 날아온다. 아마 저들 중에는 오리들에게 미움받던 그 미운 오리 새끼도 어느새 훌쩍 자라 우아하게 날개를 펄럭이며 아름답게 성장한 백조도 있을 게다...


  한파가 몰아치고, 강원도에는 하얗게 눈이 많이 내리던 크리스마스에 맞춰 북쪽에서 백조 같은 딸아이가  남으로 날아왔다. 음, 사실 날아온 것은 아니고 차를 몰고 달려왔다는 게 맞는 말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딸아이는  일 년에 한 번, 두 달간 분원으로 순환 근무를 하러 구미로 내려온다. 작년에는 거의 연말이 되어서 오더니, 이번에는 때를 맞춘 것처럼,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우리 품으로 날아들었다. 


  예전에는 짐 가방을 어깨에 메고, 캐리어를 덜덜덜 끌며 KTX를 타고, 중간에 내려 무궁화 호 기차를 갈아타고, 구미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낑낑거리며, 힘들다고 투덜거리며 갔었는데...


  이번에는 제 오빠가 타다가 선물처럼 넘겨준 검은색 아반테에다 두 달간 지내는데 필요한 짐들을 잔뜩 싣고, 느긋하게 휴게소를 들러가며 내려왔다. 


  비록 같은 도시는 아니지만, 차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서 지내다 보니 오프 날이면 자주 집에 들르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밥때가 되어도 대충 있는 반찬 꺼내 한 끼 때우는 식으로 먹던 아내가, 혹여 내가 반찬 투정이라도 할라 치면 무서운 아내의 얼굴에 찔끔~ 군말 없이 감사히 먹었지만, 딸아이 집에 온다는 메시지를 받게되면 마트에 장을 보러 가곤 했다. 물론, 나는 짐꾼으로 따라가야 하고...


  그래서, 딸이 집에 오는 날이면 나는 행복해진다. 덕분에 푸짐한 밥상을 받게 되니 말이다. 딸이 좋아하는 반찬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건 딸과 나의 교집합 속에 들어있는 것이었으니... 


  나는 딸에게 한 마디 한다. 

  "자주 와라... 덕분에 포식 좀 하게~~ 하하하..."

  나의 농담에 아내는 또 한 번의 눈 화살을 날린다.  찌릿~


  평소 자주 가지 않던, 분위기 좋다는 카페도 딸과 함께 찾아가고, 아내의 생일, 내 생일에는 들안길에 있는 이름난 한정식 식당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기도 했다. 휴일에는 봄꽃 보러 월드컵경기장에도 가고, 송해 공원으로 봄나들이 가기도 했다. 아, 백조랑 놀려니 힘드네... 이제는 날아다닐 힘도 없는 집오리가 되어버린 건가...^^


  어느새, 내게 따뜻하고 푸짐했던 겨울은 가고, 봄이 찾아와 딸아이는 주섬주섬 제 차에 짐을 챙겨 다시 제 둥지가 있는 북쪽으로 떠났다. 뭔가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라니... 이제 나에게 딸 찬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식탁이 왜 이리 넓어 보이는지...


  나는 아이들에게 소위 아빠 찬스란 걸 써 보지 못했다. 그럴 만한 능력도 없었지만... 하지만, 아내의 노력과 정성 덕분에,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모두 제 뜻대로 제 갈 길로 가게 되었다. 아빠로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함부로 아빠 찬스 잘 못 써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일도 없으니... 


  거실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커피 시킬 건데, 뭐 마실 거야?" 

  어? 딸은 며칠 전에 서울 갔는데... 나는 생각하다 가만히 중얼거려본다. 


  "나는 캐러멜 마키아토 먹을 거야... 따뜻한 거..."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로 떠난 개, 라이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