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오르다가...
다시 만난 무각사 종소리...
댕.... 댕.... 댕.... 댕....
숲 저 건너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사이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사찰에서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였다.
길 가에 앉아 땀을 식히며 오래전 광주에서 훈련할 때 들었던 종소리가 생각났다.
5. 18 기념공원 산책길을 두 바퀴째 돌고 있는데 언제나 이맘 때면 종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줄줄 흐르고, 숨은 거칠게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오고, 오르락내리락 무각사 주변을 걷고 있는 두 다리는 어느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전날, 무각사 경내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요사체인듯한 건물 마루에 걸터앉아서 범종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치길래 도대체 몇 번을 칠까? 한마디 했더니만, 함께 간 동료가 절 관계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물어보고 내게 와서 하는 말,
아침에는 28번 치고, 저녁에는 33번을 친다고 전해주었다. 무슨 의미일까? 그 숫자가...
무각사는 백제불교를 이끌었던 사찰이라고 한다. 도심 가까이에 이렇게 큰 절이 있다니... 아니, 원래는 절이 먼저 있었을 테고, 사람들이 절 가까이로 다가온 것이리라... 그러다 보니 절이 속세 한가운데 서 있게 된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산책로를 걸으며 종소리를 세다가 깜빡하는 순간 몇까지 세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종소리가 그치고 이내 목탁소리가 또 들려왔다. 금속의 울림과 나무의 울림이 숲에 사는 짐승과 생명들에게, 저 숲 바깥에 있는 중생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삶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주겠지...
저녁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해는 이미 져서 어두워져 가고, 날은 저물어 오늘 하루를 마감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무각사 주위를 돌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되돌아보았다. 종소리가 마음을 울려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내려앉듯 어지러운 생각들이 하나 둘 고요히 자리를 잡아 편안히 내려앉는 듯했다.
세상의 만물이 내 것이 없듯이, 내 가진 것 영원히 내 것이 아니라 잠시 이 세상에서 빌어 쓰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만나는 모든 인연 또한 영원한 것 없으니 집착하지 말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단지 남는 것은 오직 내 마음속에 있을 뿐이리라...
스쳐간 바람이 더는 나를 시원하게 해주지 못한다. 아쉬움보다 그저 고마움이 느껴져야 하지 않겠는가...
잠깐 스친 만남도 긴 시간이 지나 문득 다시 생각난다면, 그것도 내 삶의 인년 중의 하나리니, 소중한 또 하나의 의미로 남게 될 게다...
나는 다시 일어나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