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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Apr 28. 2022

기억 속에서 굴러 나온 야구공

기념품을 챙기자...

              기억 속에서 굴러 나온 야구공...



  내가 기거하는 안방 테이블 위에는 굵은 대나무 한 마디가 우뚝 세워져 있다. 몇 년 전, 울산 태화강변에 놀러 갔다가  대나무 밭에서 가져온 것이다. 


  마침 공원 관리원이 톱으로 대나무를 자르고 있길래, 한 마디만 잘라줄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쓱싹쓱싹 한 뼘 길이로 잘라주었다. 푸른 대나무 통은 연필꽂이 하기에는 다소 좁기도 하고, 마땅히 다른 용도로는 쓰임새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대나무 통을 볼 때면, 어느 가을날 태화강변 대나무밭이 생각나고, 향기 가득한 국화꽃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건 울산에서 가져온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갔을 때, 될 수 있다면 뭔가 그 여행지를 떠올릴 수 있는 기념품을 챙겨 오든지, 사 가지고 온다. 하다 못해 작은 열쇠고리라도 좋고, 강가의 조약돌이나, 싸구려 합죽선도 좋다. 그것은 당시의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장에 갔을 때는 기념품이라고 챙겨 올 만한 것은 아마도 공뿐이리라...


  관중석으로 날아온 축구공이나 농구공은 내 품에 들어왔다 해도 너무 크고 비싸서 슬쩍 주머니에 넣을 수가 없다. ^^ 보는 눈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 공이 없으면 선수들이 경기를 진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한번 잡아본 기념에 만족하고는 다시 경기장으로 던져 주어야 한다. 


  반면, 야구공의 경우는 다르다. 파울볼이나 홈런공은 먼저 잡은 관중이 임자니까, 서로 잡으려 이리 뛰고, 저리 몰려가 심지어 몸싸움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어린이 관중이 많아지다 보니 어른들이 잡은 공을 어린이에게 주기도 한다. 사직구장에서는 파울볼이 날아가면 "아주라~ 아주라~"하고 관중들이 합창을 하니 어른들이 공 하나 챙기기도 쉽지 않다. 


  파울볼을 맨손으로 잡다가 다칠 위험이 있어 야구 글러브를 가져오는 이들도 많다. 쉽지는 않겠지만, 야구 구경 왔다가 기념으로 파울볼 하나 챙겨간다면, 그에게는 기쁨이요 좋은 추억이 되지 않겠는가...


  아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면, 야구 이야기를 많이 한다. 며칠 전에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샀는데, 어느 선수 이름을 새길 건지 고민하다가 구자욱 선수로 정했다고 했다. 근데 지금 구자욱 선수가 잘 못하고 있다, 아쉽게도 말이다...  그래도 열심히 응원하라고... 거금 들여서 기념품 샀는데... 네가 선택한 선수인데 우짜노~~ 이름 바꿔 붙일 수도 없고...^^        


  아들과 함께 야구장에 간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각자 챙이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오후의 강렬한 여름 햇빛에 도시는 뜨겁게 달아 있었다. 야구장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아들은 처음 와보는 야구장을 보고 잔뜩 기분이 들떠 종달새처럼 뭐라 뭐라 재잘거리고 있었다.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 놓칠까 봐 손을 꼭 붙들었다. 여기저기에서 통닭이니 쥐포니 땅콩이니... 군것질거리를 팔려고 소리치는 장사꾼들과 표를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로 시민운동장 야구장 앞은 붐비고 있었다. 


  아들은 1루 쪽으로 가자고 했다. 관중석에 올라서니 뜨거운 햇볕이 온몸에 내리쬐었다. 내야석에는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외야석 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다 홈런과 파울을 구분하는 폴대 가까이 갔을 때야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호용 그물망이 눈앞을 턱 하니 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에이, 여기서는 파울볼 하나 줍기 어렵겠네..." 

  아들은 못내 아쉬운 소리를 했다. 마치 파울볼이라도 날아오면 '얏!'하고 잡을 것처럼 말이다...


  "야아~ 양준혁 선수가 안타를 쳤어요." 

  아들은 어느새 야구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었다. 우리가 응원하는 삼성이 지고 있었다. 아들은 연방 다시 뒤집기를 바라며 박수를 치고, 고함도 질렀다. 몇 번씩이나 돌아오는 인간 파도에 아들과 나는 파도가 되어 벌떡 일어났다가 앉으며 운동장을 휩쓸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우리가 응원하는 삼성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점수는 여전히 '6:3'으로 지고 있었다. 아들은 "제발, 제발.." 하면서 역전을 기대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아들은 파울 볼 하나 줍지 못한 것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나는 야구장 기념품 가게 앞을 지나오면서 선수 싸인이 되어있는 야구공을 하나 사주었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야구공을 만지작거리며 연방 입꼬리가 귀에 걸리며 좋아했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과 함께 갔던 야구경기였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야구공은 아마도 지금 아들에게는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아들의 바쁜 학창 시절 속 어디론가 굴러갔을 거다. 


  언제쯤  아들과 함께 다시 파울볼 주우러 갈 날이 오게 될는지... 이제는 아들이 나를 위해 야구공을 주워줄 게 분명한데 말이다... 근데, 파울볼 하나 주울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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