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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05. 2022

거인이 되어버린 우리

벽을 허물어야 세상이 보인다.

                거인이 되어버린 우리   



  지금 그대의  정원에도 향기로운 꽃이 피고,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다니고, 고운 목소리로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관객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로 공연이 끝나고, 나는 새삼 가슴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려본다. 네게도 혹 거인의 정원이 있지나 않은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수많은 벽들이 있기 전에 그냥 자연 그 자체였다. 나무와 풀, 하늘과 땅, 흙과 시냇물, 바람과 비, 꽃과 나비, 새들과 구름이 자유롭게 이리저리 넘나들며 어울려 지내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간의 그 작은 가슴에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즐기고, 함께 지내기보다 홀로 독차지하고, 홀로 즐기고, 홀로 조용히 살고 싶어 하게 되었다. 


  동네 아이들의 시끄러운 노랫소리도 듣기 싫고, 이웃들의 관심도 받기 싫어진 것이다. 누가 나의 편안한 휴식을 방해하면 그 참을 수 없는 울화통이 거친 말싸움을 일으키고, 심지어 이웃 간의 끔찍한 사건으로 발전하기도 했으니... 


  우리는 점점 더 두터운 벽을 쌓아 소음을 막으려 애를 쓰고, 직적 만나서 얼굴을 보며 대화하기보다는 첨단의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하고,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서 각자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세상 속에 갇혀 사는 꼴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외로워도 함께 놀 장난감이 손바닥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추워도 그저 오리털이니 거위 앞가슴털이니 하는 걸로 만든 것만 껴 입으면서 춥지 않다며 자위하고, 지하철 안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로지 <쑤구리족>의 자손인 양 고개 숙인 똑같은 자세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보았던 뮤지컬이 생각났다. <로스트 가든>의 제목을 듣고 내용이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오스카 와일드의 <욕심쟁이 거인>이 원작이라고 했다. 제목을 보아하니 동화 같은 냄새가 풍겨와서 좀 더 뒤져보니 정말 예전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단편동화였다. 내용은 그다지 길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정원에 와서 시끄럽게 노는 것이 싫어 거인은 마음속의 악마들을 동원해서 아이들을 정원에서 몰아내고 높은 담을 쌓아버렸다. 아무도 없는 정원은 고요하고 좋았다. 거인은 혼자만의 정원을 즐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었다. 


  세상에는 봄이 왔는데 거인의 정원에는 여전히 겨울이 계속되어 눈의 여왕, 서리, 찬바람, 추위의 악마들만 뛰어노는 놀이터가 되었다. 신나게 뒹굴고 재주넘기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바이올린의 찢어지는 고음이 날카롭게 귓속을 파고들며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저음의 베이스 기타와 가슴 밑바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드럼의 배경음악은 눈보라 치는 정원을 내려다보는 관객들의 마음을 점점 더 춥고 떨리게 만들었다.  거인은 점점 병이 들어가고, 여전히 봄은 찾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각자 눈보라 치던 겨울이 있었던 거 같다. 세상과 단절하여 홀로 어두운 터널 속에서 힘겨웠던 순간들.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거부하며 절망했던 시간들. 거기에는 늘 매서운 찬바람만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가느다란 봄바람 한 줄기도 들어올 틈을 허용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룹 <GOD>의 싱어였다는 가수 김태우가 거인 역으로 나왔다. 어쩐지 관객들 중에 어린 학생들이 많더라니... 아이들은 거인의 노래에 까무러칠듯한 반응을 보이며 박수세례를 보내고 있었다. 역시 인기가수라 그런지 노래는 잘 불렀다. 


  외로운 거인의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겨울 악마들의 놀이도 계속되었다. 텀블링을 하고, 춤을 추고, 바닥을 비비며 일명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뮤지컬인지 댄스극인지 헷갈리긴 했지만...


  뮤지컬의 내용은 동화의 그것과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별다른 각색도 없이 약간은 지루한 느낌도 있었다. 다음에 전개될 내용은 누구라도 익히 알고 있는 그대로 진행되었으니. 거인은 벽을 허물어 아이들에게 정원을 내어주었다. 그리하여 거인의 정원에는 다시 봄이 찾아왔다. 꽃도 피고 새도 울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리게 되었다. 


  겨울정원에서 외롭고 병들어가던 거인에게 처음 찾아온 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을까?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거인의 정원에 다시 꽃이 피게 만들었다. 아이는 추운 겨울을 몰아내는 봄이요, 외로움을 떨쳐내는 즐거움이요, 이웃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요,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빛이었던 것이다. 거인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 세상과 소통하게 한 인도자였다.


  힘들었던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세상과 어울려 지내는 데는 분명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라도 이런 경험은 다 있지 않을까? 거인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마음을 열어야 세상이 보인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이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사는지 스스로 자신을 돌아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거인은 자신이 쌓았던 벽을 다 허물어버렸다. 다시 아이들이 정원에 놀러 와 꽃이 피고 새가 찾아와 노래를 불렀다. 행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나누고 배려하고 열린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리라. 이 간단한 이치를 우리는 문득 잊고 살아가기도 한다. 


  아주 짧고 단순할 수도 있는 동화 <욕심쟁이 거인>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벽을 쌓으면 작은 공간만이 자신의 정원이 되지만, 벽을 허물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의 정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지.


  그러나,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는지...


  요즘 아파트 놀이터에도 벽이 높이 쌓여 있다고 한다. 입주민들의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외부 아이들이 들어와 놀면 안 된다는 경고판이 나붙은 곳도 있다고 하니, 그런 걸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혹여 삭막한 아파트처럼 키만 불쑥 큰 거인이 되지나 않을는지 마음이 씁쓸해진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고 외친다. 

  "어른들은 몰라요~~"


  뭘 모른다는 걸까? 어른들은 당연히 아이들보다 더 많이 알 텐데...  


  한때는 우리도 어린이였다. 그렇지만 벌써 잊어버린 지 오래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거인이 되어버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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