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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May 18. 2022

[연재 동화]  산지니, 다시 하늘로... 15편

다시 만난 오소리...


                    < 15 >


  가창오리들이 북쪽으로 날아간 뒤부터 오소리는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갈대밭에 나가 온종일 돌아다녀 봐도 기껏해야 작은 들쥐나 한두 마리 잡는 게 고작이었다. 이제 귀여운 새끼들도 부쩍 자랐기 때문에 더 많은 먹이를 잡아야 했다. 


  오소리가 겨우 들쥐 한 마리를 잡아 굴로 돌아오다가 올무에 목이 걸려 다 죽어가는 토끼를 발견했다. 토끼는 자기 앞에 나타난 오소리를 보고 겁에 질렸지만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오소리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음날부터 오소리는 갈대밭으로 내려가지 않고 산속을 돌아다녔다. 올무에 걸린 작은 동물들을 손쉽게 얻었다. 도망도 가지 못하니까 그냥 다가가서 덥석 물어버리는 끝나는 일이었다. 오소리는 새끼들에게 풍족한 먹이를 가져갈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억! 컥컥! 으으, 이게 뭐야?"

  오소리는 목을 조여 오는 고통에 숨이 막혔다. 조심해야 한다고 늘 마음속으로 새겼지만 맛있게 먹이를 먹는 새끼들을 생각하다가 자신이 올무에 걸리고 말았다. 빼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올무는 점점 더 목을 조여오기만 했다. 누가 좀 도와달라고 큰소리를 질러보아도 근처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소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살려줘! 컥컥! 아이고, 숨 막혀 죽겠네."

  새끼들의 재롱떠는 모습이 눈앞에 가물거렸다. 자기가 먹이를 물고 굴 안으로 들어가면 쪼르르 달려와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산지니는 혼자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방향을 가리켜줄 노랑 부리는 떠나고 없었지만, 그동안 함께 다니면서 소리나 냄새, 그리고 바람이 부는 방향을 세밀히 익혀두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자신의 위치를 짐작하면서 날 수 있었다. 노랑 부리와 오랫동안 연습을 했다. 비행속도를 천천히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날았다. 


  산기슭 위를 선회하다가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다시 한번 그곳을 선회했다. 분명히 누군가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산지니는 좀 더 낮게 내려갔다. 혹시라도 나뭇가지에 걸릴 수도 있으니 신경을 썼다. 

  "야 컥컥. 나야 나, 오소리야! 나 좀 구해줘!"

  오소리가 하늘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산지니를 발견하고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목청껏 외쳤다.

  "저건 오소리 같은데. 왜 나를 부르지?"

  산지니는 주위를 맴돌며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다고 생각했다.  

  "살려줘! 덫에 걸리고 말았어. 숨 막혀 죽을 거 같아! 켁켁켁."

  산지니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내가 내려갈 테니 계속 말을 해라!"

  "응! 그래. 이리로 내려와라! 그래, 그대로 조심해서. 컥컥. 아이고 목이야."

  산지니는 컥컥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오소리 옆에 무사히 착륙했다. 


  "잘 왔어. 나 좀 살려줘.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컥컥."

  하지만, 산지니는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어서 와서 이 끈 좀 풀어줘."

  "널 어떻게 믿니? 내가 구해주면 당장에 달려들어 나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오소리가 낯빛이 변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런 일 없어. 나를 살려주었는데 어떻게 너를 해칠 수 있겠어? 제발 좀 도와줘. 내가 죽으면 우리 새끼들 굶어 죽고 말아. 흑흑흑."

  오소리는 흐느끼며 사정했다. 새끼라는 말에 산지니의 마음이 좀 약해졌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나쁜 놈은 이번 기회에 죽어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돌아섰다. 


  산지니가 날개를 펼치는데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새끼들이 어딨는지 나는 아는데!" 

  산지니는 날갯짓을 우뚝 멈추고 돌아섰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내 새끼들이 어디 있다고?" 

  오소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네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말했어. 컥컥. 에구 죽겠네. 목이 막혀 말을 못 하겠어."

  산지니는 야비한 오소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의심이 갔지만, 아무래도 죽음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네가 올무를 풀어주면 내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겠니?"

  오소리는 드디어 살았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산지니로서는 알 턱이 없었다.

  "빨리 말해라!" 

  "에구, 목 아파 죽겠는데. 말했잖아! 컥컥."

  산지니는 오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느 쪽이야?"

  부리로 나무에 매달린 끈을 열심히 쪼아보았지만 질겨서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산지니는 자기 새끼들 소식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부리가 부서져라 쪼아대고, 발톱이 빠질 정도로 끈을 잡아 뜯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에야 산지니는 겨우 올무를 끊을 수 있었다. 다시 살아난 오소리는 거친 숨을 토하며 한동안 누워 있었다.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어..."

  "이제 내 새끼들에 대해 말해 봐." 

  오소리는 잠깐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일단 먹고 보자. 너도 배고프지? 우리 집으로 가자. 내가 먹을 거 줄 테니까. 자, 따라와."

  오소리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산지니도 배가 많이 고팠으므로 오소리의 발소리를 들으며 따라갔다. 


  산기슭에 파놓은 굴속에는 새끼 세 마리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소리는 숨겨두었던 토끼를 꺼내와 새끼들에게 먹였다. 다리 한쪽을 떼어내더니 산지니 앞에 던져주었다. 

  "너도 먹어라. 네 친구 가창오리가 떠나고 나서는 아마 제대로 먹지 못했을 거다." 

  산지니는 발 앞에 놓인 먹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고기인가! 오소리의 말대로 노랑 부리가 떠나고 나서는 항상 배가 고팠다. 어쩌다 들쥐라도 잡히면 겨우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은 산지니는 좀 살 것 같았다. 같은 먹이를 놓고 싸우던 오소리에게 얻어먹다니 산지니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나랑 함께 사냥하러 다니지 않을래?"

  오소리가 새끼들을 잠재우고 굴 밖으로 나와서 말했다.  

  "나를 구해줬으니 나도 네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어때?"

  뜻밖의 제안에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라 잠시 망설였다. 앞으로 먹을 것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산지니는 새끼들에 대해 물어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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