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11분.
회사 건물을 나오자마자
공기가 달랐다.
문을 하나 나섰을 뿐인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 아래,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조용한 골목 사이,
불 꺼진 가게들과 불빛이 퍼지는
식당들 사이로
지친 하루의 흔적이 흘렀다.
“오늘,
회의실에서 너 많이 힘들어 보였어.”
그가 말했다.
나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응.
‘그냥 일’이라는 말이 제일 힘들더라.
내 하루는 그냥이 아니었거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한테는 매일이 진심이니까.
그 진심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
더 가벼운 거야.”
우리는 계속 걸었다.
말없이,
서로의 속도에 맞춰서.
그가 내 손을 살짝 잡았다.
“그래도 이렇게 걷고 있으니까,
오늘이 조금은 덜 힘든 것 같아.”
나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말보다 같은 속도로 걷는사람과
함께 있다는 건, 더 큰 위로였다
이 거리, 이 조용한 걸음,
말 없는 이 따뜻함 하나로
하루가 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몸이 더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그보다 더 가벼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