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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Oct 24. 2020

맞팔 소통, 이웃 소통 말고 진짜 소통이 고플 때

취향을 공유하고, 공유받는 여행




이보다 정확한 추천 알고리즘은 없다

 도쿄 오모테산도에 있는 카페. 큼지막한 창문을 뒤로하고 나란히 앉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구성한, 나무 냄새가 나는 카페였다. 

 부산 사는 바리스타 그녀는 일본 사는 나보다 도쿄에 대해 많이 알았다. 도쿄가 처음인 나와 달리 그녀는 종종 도쿄 커피 여행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알려주는 카페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공통점은 일본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했다는 것. 그녀의 한결같은 취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취향에 나도 녹아들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는 나에게 예쁜 카페를 소개해주었고, 차를 좋아하는 나는 그녀를 데리고 티룸에 갔다. 어느 도시에서나 그랬다. 우리의 여행은 커피 차 커피 차 커피 커피 차 차의 연속이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드러내고 나누는 여정. 나란히 발맞추어 취향을 넓혀 가는 여행이 퍽 마음에 들었다.


 친구라는 존재는 그 어떤 추천 알고리즘보다 정확하고 확실했다. 인공지능이 아닌, 그녀가 하는 추천에는 진심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추천한 커피를 같이 마셔주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 가끔 돈도 내준다. 사랑합니다, 친구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번과 달라진 머리스타일도 알아봐 주고, 옷과 신발이 잘 어울리는지도 살뜰하게 봐준다. 읽으면서 나를 떠올렸다는 책, 곁들이면 좋을 음악까지 아주 그냥 종합적으로다가 추천해준다.


 일본 아줌마들은 이런 여행을 '죠시타비 女子旅'라 했다. 여자들끼리만 가는 여행이라는 의미다. 동성친구끼리 가는 여행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도쿄 카페에서 우리도 죠시타비를 한다. 

커피 한 모금을 넘겼다. 이번에도 그녀의 취향은 옳았다. 돌연 "이게 진짜 소통이지."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 소통이라면 사절합니다

 소통이라는 단어를 사랑했지만, 쓰지 않은지 오래였다. 한 때 내 마음을 뛰게 했던 그 단어가 SNS의 시대를 맞아 쓰임새가 달라진 까닭이다.


 결혼으로 인해 단절되는 건 경력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니 친구와의 관계도 끊어진 듯 희미해졌다. 많은 친구를 원한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소통할 사람이 줄어만 가는 것일까. 육아용품이나 아이 교육에 대해 말할 사람은 늘었지만, 내 기호나 취향을 물어와 주는 사람은 드문드문했다. 

 자연히 SNS에 손이 간다. 일을 하고, 아이를 보는 틈에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마저 관심사를 순수하게 공유하는 것이 어렵다. 


 인스타그램에서 "맞팔 소통해요", 블로그에서 "이웃 소통해요"같은 메시지를 받을 때 특히 그렇게 느낀다. 

심지어, 한여름에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세요. 우리 소통해요~"라는 댓글도 달린다. '좋아요 반사' 혹은 '이웃 추가'를 요구하면서.

무한히 복사 붙여 넣기 한 댓글을 받으면 묻고 싶다. "당신이 말하는 소통이 무엇인가요?"라고. 


 소통이 그러한 용례로 쓰일 때, 단어에 담긴 속뜻은 이러하다.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 너를 알아갈 시간도 없어. 나는 조회수가 필요해. 너도 그렇다면 우리 품앗이 하자. 좋아요랑 댓글 부탁해."


 소통이란 단어가 그렇게 변화했고, 널리 쓰인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딘지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소통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접하면서도, 밀도 있는 소통은 간 데 없이 공허함만 맴돈다. 


 그럴 때마다, 아주 간절히, 친구를 만나고 싶어 진다.

 자랑할만한 호화로운 호텔이나 대단한 여행지가 아니어도 좋다. 우리 사이에 놓인 음식이 떡볶이 한 접시라도 괜찮다. 

 밀떡을 먹을 것이냐 쌀떡을 먹을 것이냐, 즉석떡볶이를 먹을 것이냐 시장 떡볶이를 먹을 것이냐를 놓고 재잘거릴 수 있다면 충분하다. 




엄마에게 친구와의 여행이란

 나에게 여행의 정의는 '마음의 지도를 넓히고, 신선함을 느끼는 것'이다. 

엄마가 된 후 친구와 떠나는 여행엔 한 가지 의미가 더 붙는다. 

'간만의 진한 만남.'


 사는 곳이 멀고,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어오던 만남을 초단기 집중코스로나마 성사시키는 것이다. 

코스는 각 장마다 '얼굴 보기'와 '수다 떨기', '취향 공유' 등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코스를 모두 수료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그 여행에서야 나는 내가 알던 소통을 한다. 


 요즘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게 재밌는지, 힘들거나 맘에 안 드는 것은 무엇인지를 세심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엄마로서의 나가 아닌, 그냥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동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혼자 가는지, 아이와 가는지, 친구와 가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여행도 그렇다. 누구와 함께냐에 따라 도시를 걷는 속도와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진다. 엄마에게도 죠시타비女子旅가 필요한 까닭이다.


 단 1박 2일이라도 좋다. 

 친구가 좋아하는 음악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자. 아이 데리고 가기 편한 식당이 아닌 내가 가고 싶은 식당에 가자. 그리고 밤새도록 이야기하자. 

친구와의 소통이라는 강한 전류가 엄마의 방전된 배터리를 꽉꽉 채워줄 것이다. 






우리가 만나면 서울에서도 차를 [오설록 1979]


도쿄에서도 차를 [히가시야 긴자]


그런 다음 커피를 [오모테산도 쇼죠 커피]


또 다시 커피를 [아자부주반 넴 커피]


전시를 보고 [모리미술관]


거리의 예쁜 포스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오모테산도 넘버슈가]


이자카야 가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충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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