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땐 피크닉
"타누키코田貫湖 간다고? 그런 데가 있어? 후지로 출장을 그렇게 다니면서도 몰랐네. 어떻게 찾아냈어?"
남편이 나보다 더 흥분했다. 40대 일본 남자도 잘 모르는 타누키 호수를 용케 알아낸 것은 바리스타 그녀였다.
우리의 '친교 여행'은 서로가 꼭 가고 싶은 목적지로 큰 뼈대를 잡고, 동선과 기호에 맞는 작은 일정으로 살을 붙이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두 사람 모두가 만족할만한 최적의 여행법을 찾아낸 우리가 대견스러웠다.
친구와 여행을 가서 다툴 때 다투더라도 절연까지는 하지 않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곳과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고루 찾아다니며 같이 있어주는 것. 나에게는 이런 것도 성장의 일종이었다.
이번 목적지는 시즈오카현 静岡県. 일본의 자연을 상징하는 후지 산을 품은 곳이다.
후지산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후지 산이 솟은 곳은 시즈오카 현 후지노미야 시富士宮市. 그곳에서도 타누키 호수에 가면 물에 비친 후지산이 마름모꼴로 빛나는 '다이아몬드 후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봄의 교토에 이어, 여름 후지산을 눈에 담을 때였다.
시즈오카시를 베이스캠프로 삼은 우리는 이른 아침 후지노미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에서 본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긴 장마의 초입이었다. 꽃가루 대잔치가 끝나면 장마, 장마 끝나면 태풍. 일본 날씨도 참 기구하다. 우리가 목적지에 닿았을 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열리기를 기대할 뿐이었다.
바닷길을 따라 달리던 열차는 티켓에 적힌 것과 같은 '후지노미야富士宮'라는 표지판 앞에 멈추었고, 우리는 타누키 호수 행 버스로 갈아타고 숲으로 향했다.
이런 산골이라면 현지인들은 차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 터. 버스를 탄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자였다. 승객이 열 명 남짓한 버스엔 한국 남자 두 명도 있었다. 유튜버 같아 보였다. 카메라를 보고 여행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이 들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을까, 비로소 타누키 호수를 알리는 안내말이 흘러나왔다.
버스 계단을 딛고 내려 땅에 발을 붙이자 희끄무레한 공기가 몸을 훅 감쌌다. 자욱한 안개였다. 원래대로라면 압도적인 규모의 후지산이 보여야 하는데, 실상은 호수 맞은편에 있는 언덕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아저씨를 황급히 붙들고 물었다.
"후지산 보러 왔는데 전혀 안 보이네요. 후지산이 어디 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팔을 뻗어 우리 머리 위를 가리켰다.
"후지산 말이죠? 바로 저기 있어요."
아저씨의 손끝에는 구름과 안개만이 보였다.
영상을 촬영하던 유튜버들도 사방을 두리번대며 허둥댔다. 사진에서 보던 장면, 생각했던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몰랐던 것은 아니다. 원래 후지산은 겨울에 선명하고, 여름에는 흐리게 보인다고 했다. 그렇지만 흐린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심할 줄이야! 설마설마했지만 진짜진짜 못 볼 줄은 몰랐다.
그 상황이 얼마나 당황스럽고도 우스웠던지. 놀라서 눈을 껌뻑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나도 그녀도 여행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후지산 잘 있겠지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피크닉이나 하자!"
축축하게 젖은 풀밭에 전단지인지 신문지인지를 깔고 자리 잡았다. 역 앞 편의점에서 산 요깃거리를 풀었다. 우리의 첫 소풍이었다.
사방은 고요했다. 소리가 없는 세상에 떨어진 느낌. 침묵과 정적의 시간이었다. 캠핑 나온 가족들, 산책하는 강아지, 낚시 나온 남학생이 없었더라면 이 몽환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호수를 마주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아졌다. 보고 싶은 것을 못 보았는데 화가 나지도, 짜증이 일지도 않았다.
후지산이 주연이라면, 타누키 호수는 '주연급 조연'이었다. 그것도 아주 매력 넘치고 흡인력 있는.
비록 주연 배우를 실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주연급 조연'을 우리끼리 마음껏 독차지한 기분이었다. 안개는 조연을 빛내주는 멋진 스포트라이트처럼 느껴졌다.
이런 서사도, 나쁘지 않다.
후지산 보기를 포기한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동전만 한 꽃이 눈에 들어왔다.
"이 꽃 봐봐. 니가 옛날에 이 꽃 보고 계란 프라이 꽃이라고 했잖아. 나도 그때부터 이거 보면 계란 프라이 꽃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그런 것도 기억하냐며 놀라워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도 핸드폰 어딨냐고 난리 치는 애가 난데.
우리는 계란 프라이 꽃 하나로 과거의 일화들을 되새기며 깔깔거렸다.
어느새 대화는 미래로 옮겨갔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할머니 돼도 머리 염색 안 하고, 예쁘게 숏컷한 은발 해야지. 클래식한 옷 입고, 핸드드립 커피 내려 마시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돌이켜보니 나는 노년의 내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열 살이 되면, 스무 살이 되면." 하는 막연한 상상은 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했다.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까' 하는 기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내 노년에 나는 무엇이 될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아름다운 할머니로 성장해야겠다. 은발의 그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시즈오카 안개 여행>을 도란도란 추억하는 할머니로.
짧은 여행 끝에 나고야로 돌아왔을 때. 맨션 입구에서 405호 이토 할아버지를 만났다.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계셔서 오며 가며 친구가 된 할아버지다.
"민지상, 후지산 보러 시즈오카 간다더니, 봤어요?"
"아니요, 안개랑 친구 얼굴만 봤어요!"
"에에? 아쉬워라. 여름이니까요.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우리 나이가 되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게 친구 얼굴이에요. 후지산은 계속 그 자리에 있어도, 친구는 하나둘씩 가더라고."
할아버지는 말 끝을 흐렸다.
맞다. 언젠가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될 얼굴이다. 그 날이 와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좋은 풍경을 눈에 담고 좋은 사람을 마음에 담으며 살아가야지.
오래도록 기억될, 아주 멋진 안갯속 피크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