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지 Oct 18. 2020

'아이 친구' 엄마 말고 '내 친구'를 만나는 시간

엄마에게도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다




결혼하면 친구 관계가 바뀐다더니

 "안녕하세요, 저는 시뽀 엄마입니다. 첫 아이라 유치원 생활을 잘 모르고, 아이도 단체 생활에 서툰 부분이 많겠지만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사는 곳은 지하철로 15분 거리입니다만, 조부모 댁이 유치원 근처입니다. 저희 동네에 용무가 있을 때 집에 놀러 오셔도 좋습니다. 3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했다. 첫 학부모회를 앞두고 소개말을 연습했다. 일본 유치원이 처음인 외국인 엄마는 야후 재팬에 '유치원 자기소개'를 검색해 나온 문장에 아이와 내 이름을 끼워 넣었다. 워킹맘 버전, 외동 버전, 다둥이 버전 등 검색 결과가 다양한 걸 보면 일본 엄마들도 같은 고민을 하는 듯했다.  

 학부모회 날. 인터넷에서 본 형식적인 자기소개, 고만고만한 인사가 오갔다. 그렇게 나는 부모의 세계로 한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엄마가 되어 보니 아이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재구성됐다. 유치원 학부모들을 비롯해 구청 육아 프로그램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알게 된 엄마들이 늘어 갔다.

 오가는 대화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단 정보 교류에 가까웠다. 개월 수에 따른 아이들 발달, 읽히는 책, 학원 정보, 할인 소식, 도시락 메뉴와 한국 음식 레시피에 대한 것들이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모임에 얼굴을 비추고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었지만, 아이 친구 엄마가 '내 친구'가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애 있는 기혼 친구와 미혼 친구가 만나면

 그러는 사이 정작 내 친구들은 멀어져 갔다. 두세 달에 한 번은 한국을 오갔기에, 그동안은 일본에 산다고 해서 친구관계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경보다 더 높은 벽은 따로 있었다. 출산이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 한국에 갔을 때였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아이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만날 장소를 정하기가 힘들었다.

 아이와의 이동은 젖병, 분유, 보온병, 물티슈, 손수건, 기저귀, 여벌 옷, 장난감, 비닐 뭉치와 담요를 대동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만나려는 장소에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지도 중요했다. 기저귀 교환대가 없으면 여자화장실 변기 위에 뚜껑을 덮고 아이를 눕혀야 했으니까.

 낮잠도 문제였다. "중간에 낮잠을 자고 싶어 하면 어디서 재워야 하지? 사람 많은 곳에서 졸린다고 칭얼대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친구가 내가 묵는 호텔방에 왔다.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안고 온 그녀는 선물을 내려놓자마자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애 좀 안아 본 사람의 솜씨였다. 나와 달리, 친구는 아이들을 예뻐하고 곧잘 다루는 쪽이었다.

 호텔에서 빌려준 아기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포장해 온 중국 음식을 먹었다. 밖에서 만나는 것보다 마음이 한결 편했다.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 대이동 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가 운다고 눈치 줄 사람도 없었다. 친구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와 한국에 갈 때마다 그녀가 내 쪽으로 와 주었다.

그렇게 먼 길을 와서도 집에서 만났다. 외식하는 날도 있었지만, 놀이방과 기저귀 교환대가 딸린 식당이어야 했다.

 식사는 쉽지 않았다. 밥 좀 먹어볼라 치면 아이는 식당 바닥을 뽈뽈 기어 다녔다. 음식물을 목구멍에 재빨리 밀어 넣고 아이를 잡으러 다녔다. 바둥대는 아이를 달래 무릎에 앉히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더라?"

 



아이만 보느라 친구를 보지 못했다

 분명히 밥을 먹었는데, 먹은 것 같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친구 근황도 듣긴 들었는데. 뭐라고 했더라?

 아이를 동반한 만남은 그런 풍경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최악이었던 건, "요즘 약을 먹는데, 한동안 고기나 인스턴트를 먹으면 안 된대."라고 말한 적이 있는 그녀에게 "애 데리고 식당 가기 힘든데, 차라리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 먹을까?"라고 한 날이었다.

 아무리 영혼이 빠져나갔어도 그렇지, 아이 돌보느라 친구를 돌보지 못한 것이었다. 지 새끼밖에 모르는 무심한 나를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희생하는 것은 언제나 친구 쪽이었다.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언제나 미안했다.

 "다음에 니가 애 낳으면 내가 꼭 보답할게."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현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딩크 결심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라도 애 낳기 싫어질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때로는 아이를 두고 만나 사람답게 밥을 먹고, 어른답게 대화를 해야 했다.




출산 후, 친구와의 시간 회복하기

 미혼 친구와 기혼 친구가 출산과 양육을 계기로 멀어져 가는 이야기는 흔하다.

 미혼은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배려'를 하고, 기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배려에 익숙해져 간다. 참다못한 미혼이 불만을 표하면, "니가 애를 안 낳았으니까 그러지. 너도 나중에 낳아 보면 알게 될 거야." 하는 무례한 말로 화를 돋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결혼도, 출산도, 배려도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 친구 관계가 원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네 엄마들과 어울리는 것만큼, 내 친구 관계를 원활하게 이어가는 것도 소중하다.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지치지 않도록.


 그 후로 나는 짧게라도 혼자 한국에 가는 시간을 만들었다. 동네 엄마들은 아이와 엄마가 떨어져도 되겠냐는 우려를 했지만, 아이와 떨어지지 않으려다 친구 떨어지면 누군가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었다.

 유모차 없이 둘이서 만나면 계단이 있는 식당에도, 영화관에도, 카페에도 갈 수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 곱창전골을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일 수도 있다. 아이를 동반해 만날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나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

 10년 넘게 쌓은 두터운 시간이 있기에 한두 마디 문장만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전할 수 있고, 나도 그녀가 하는 말을 누구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대화다운 대화였다.


 이제 우리는 부산에서, 서울에서, 교토에서, 도쿄에서, 시즈오카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가끔이라도 이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내 단짝, 바리스타 그녀를 만나게 될 다음 도시는 어디일까? 앞으로 함께 가게 될 나라가 어디일지 아직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엄마의 휴가는, 엄마의 친구관계를 지킨다.






호텔에서 빌려준 유모차, 아기 침대, 젖병 소독기, 아기 욕조. 이젠 아이가 다섯 살이라 한결 편하지만, 그땐 그랬다.


그녀와 시뽀의 역사적인 첫 만남


친구는 나를 만나러 왔다가 육아만 하다 간 적이 많았다


아이 없이 간 부산.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거리 풍경이 보였다.


커피와 꽃을 좋아하는 그녀. 함께하는 여행도 감성감성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