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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Oct 15. 2020

인도 여행을 왜 자꾸 가냐고 물으신다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품은 남인도 케랄라 Kerala



인도 여행이 계획대로 흘러갈 확률은

"엄마, 나 보여? 손 흔들고 있는데. 지금 몇 번 게이트야?"

 하와이 여행과 같았다. 엄마와 딸은 같은 곳에서 출발하지 못했다.

 대신, 방콕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거기서 인도 남부에 있는 케랄라 Kerala 주로 갈 계획이었다.

방콕에서 만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인도에 떨어진 후가 걱정이었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이랬다.


1. 방콕에서 인도 가는 비행기가 연착될 것이다.

2. 공항 근처로 예약한 호텔에서 픽업을 나오기로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3. 비싼 돈(1박 10만 원. 인도 물가와 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엄청난 돈이다!) 주고 예약한 호텔에서 몇 시간 못 잘 것이다.

4. 다음 날 아침 일찍 기차역에 가봐야 열차는 코빼기도 안 보일 것이다.

5. 일찍 체크아웃하고 나온 보람이 없어 허탈할 것이다.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진 않겠지?" 하는 연약한 희망을 품고 인도 땅에 발을 디뎠다.

 이럴 수가. 그저 재미로 예상했을 뿐인데 1번에서 5번까지의 모든 항목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황당한데, 그 와중에 웃겼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예상 못 한 6, 7, 8번이 추가되지 않아서.


 인도에선 변수에 대한 대응책을 부랴부랴 만들어내도 거기서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

계획이 자꾸 틀어지면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경험을 안겨주는 것이 인도 여행의 장점이다. 변수 속에 싹을 틔우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우리의 목적지, 케랄라가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케랄라는 10년 전에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모습이 무척 고고하고 우아해서, 기억 속 장소를 현재 시점으로 소환하고 싶었다.

 재회. 다시 찾은 케랄라는 기억보다 더 찬란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오래 그리워하던 풍경 속으로 포옹하듯 안겨들었다.

 



인도 면적은 남한의 33배, 우리가 모르던 매력도 33배

 인도 서남부에 있는 케랄라는 수도와 아주 멀다. 델리에서 케랄라까지의 거리는 약 2,600km. 대한민국 서울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의 직선거리와 비슷하다. 인도 국토 면적이 남한의 33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땅만 큰 것이 아니다. 인도는 주(州)에 따라 민족과 언어가 다르다. 델리 사람과 케랄라 사람이 만나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역사, 종교, 문화뿐만 아니라 주정부(州政府)의 정책도 다르기에 같은 나라 안에서도 조금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인도를 한 단어로 정의하거나 성급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케랄라는 어떤 곳일까? 머릿속으로 대항해시대를 떠올리면 케랄라의 이미지를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1498년,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의 발길이 닿으면서 케랄라는 주요 무역항이 되었다. 후추를 가득 실은 배는 중동, 유럽까지 항로를 넓혔다. 다른 문화권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같은 외래문화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케랄라에는 그때 뿌리내린 교회와 유대교 회당이 아직도 건재하다. 야자수 아래 새하얗게 빛나는 십자가는 인도를 상징하는 바라나시 가트와 대조적이다. "여기 정말 인도 맞아? TV에서 보던 거랑 다르네."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도 다르다. 밀로 만든 난 Naan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이들리Idly'나 '도사 Dosa', '뿌뚜 Puttu', '아빰Appam'을 먹는다. 모두 쌀로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추와 마늘을 듬뿍 넣은 음식이 많고, 크리스천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기도 한다.


 대항해시대를 살았던 말라바 후손들은 여전히 열린 마음으로 숨 쉬고 있었다. 이들은 해외로 이주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외국인을 접하는 것에도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여행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한결 여유가 있었다. 폐쇄성이라곤 콩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케랄라는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여행자를 맞이했다.




케랄라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아서

 이런 케랄라를 찾은 여행자 열명 중 아홉 명은 서양 사람들이었다. 보고도 믿기 어려웠던 것은 가족 여행자. 어린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는 아빠, 엄마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도를 유모차 끌며 여행하다니! 이런 가족이 한둘이 아니라서 두 번 놀랐다.

하지만 날이 더해질수록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불안함보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아라비아해를 마주한 바르깔라 해변에서는 아빠와 아기가 모래성을 쌓고, 엄마는 태닝을 했다. 낮에는 요가나 요리 수업을 듣고, 해 질 녘엔 석양을 보며 해산물을 즐겼다. 모두가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대다수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최소 한 달, 최대 몇 년간 이어지는 긴 휴식을 즐긴다고 했다.


 엄마와 나도 인도에서 휴식을 했을까? 그럴 수 없었다. 여기도 저기도 보고 싶은 것이 지천이라 하루 만 보를 걸어도 모자랐다.

'코코넛의 땅'이라 불리는 케랄라에는 자연을 영감 삼아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가 많다. 특히, 포트 코치 Fort Kochi 항구 주변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갤러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갤러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불쑥 들어가기 망설여지지만, 대부분이 카페나 식당, 숙소를 겸하고 있어 문턱이 높지 않았다.

 회화와 조각, 건축, 디자인 소품까지 갈래도 가지가지. 아침을 먹으며 그림을 보고, 점심을 먹으며 조각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마침 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이라 도시 전체가 아티스트의 무대였다.


 그 가운데서도 케랄라 사람들의 언어, '말라얄람 Malayalam'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마음을 울렸다. 말라얄람은 마그넷이 되기도, 쿠션이 되기도, 옷과 가방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지역 언어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가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과 결이 같았다.

 실제로 케랄라는 인도에서 식자율이 가장 높다. 케랄라주 정부의 중요한 미션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라 했다.

 케랄라 특유의 철학과 감수성이 담긴 <하리타 케랄람 Haritha Keralam> 프로젝트도 흥미로웠다. 지역과 지구를 위해 유기농법을 고민하고, 환경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 못지않게 고민하는 모습에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교육과 복지, 예술로 지역사회를 가꾸는 케랄라를 보며 생각했다. 인도는 더럽고 위험하기만 한 곳이 아니며, 거지와 소똥만 득실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인도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천만 가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 여행이었다.




어느 나라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유럽이나 미국에 다녀온 후 좋았다 말하면, "유럽 여행이 인생의 꿈이야." "죽기 전에 미국 한 번 가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오간다.

 반면 인도가 좋았다 말하면 "거기 가면 큰 일 난다던데?" 혹은, "여자는 인도 가면 안 돼." 같은 우려를 한다.


 얼굴과 이름을 감춘 온라인상에서는 혐오를 눌러 담은 악플도 많이 받는다.  

 내 블로그에는 "당하려고 갔냐? 당해도 울지 마라" "여행기 보고 인도 가는 사람 있으면 니가 책임질 거냐" "여행기 지워라" 같은 댓글이 주기적으로 달린다.

 좋았던 곳을 좋았다고 말할  없도록 입을 틀어막는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된 기분이다.

 

 이번 인도 여행도 다르지 않았다. 가기 전에도, 다녀와서도 엄마와 나는 "왜 인도에 가냐."는 물음에 시달렸다.

걱정해서 해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그 걱정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안다.


 우리가 인도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안타깝게도, 가십거리로 소비될 만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인도 범죄 소식만 골라 모아 보도하는 언론사도 있다. 시민들은 자연히 인도를 범죄의 나라로만 인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인도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이 자극적인 사건사고 뿐일까?

케랄라가 그러하듯, 인도는 인권을 비롯한 사회 전 분야에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성범죄가 일어나면 피해자를 도우려는 대규모 집회도 열린다. 인도의 변화에 참여하는 거대한 물결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의 범죄 뉴스만 소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더하고 힘을 보태되, 인도의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하면 어떨까. 

 

 인도를 미화하고자 함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함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인도로 가는 짐을 꾸리려 한다.

 엄마와 함께여도, 남편과 아이와 함께여도 좋다. 자신의 자리에서 진보를 거듭하고 있는 인도의 현실을 바로 보고, 치우침 없이 이해하고 싶다.

 다시 인도를 여행하는 날이 온다면 길 위에서 내가 관찰한 것들을 진솔한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다.

이 여행기에 담은 케랄라의 모습도 누군가에게 올곧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인도 서남부에 자리한 코코넛의 땅, 케랄라 Kerala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토속문화를 잘 보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케랄라 바르깔라. 유모차를 끌고, 아기띠를 한 가족 여행자가 흔하다.


갤러리를 겸한 카페와 숙소가 가득한 포트 코치.


커리와 난은 인도 중에서도 펀자브 지방의 요리다. 남인도 음식은 보기엔 생소하지만 우리 입맛에 딱이다.


우물을 중앙에 둔 ㅁ자 모양 건물도 매력적


포트 코치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축제다.


케랄라에 대한 애정을 담은 지역 디자이너들의 작품. 신문을 재활용한 종이가방에 정감이 간다.


마무리는 고양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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