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지 Oct 12. 2020

다문화 엄마가 하와이에서 꾼 무지개 꿈

모두에겐 각자의 색깔로 빛날 권리가 있다




일본 사는 딸, 한국 사는 엄마가 여행하는 법

 하와이에 가본 적은 없어도 이야기는 와이키키 해변 모래알만큼 많이 들었다. 잠시라도 발도장을 찍어 본 이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상 낙원이자 살고 싶은 곳이라고.

 도대체 하와이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 한 저비용항공사가 프로모션을 열었다. 

명절 연휴임에도 오사카-하와이를 왕복 20만 원에 오갈 수 있는 기회였다! 당장 잡았다. 하와이 여행엔 내가 아닌 LCC가 효도한 셈이다.  


 마침내 다가온 여행의 날. 엄마는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나는 나고야에서 열차를 타고 오사카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럴 땐 멀리 사는 것이 못내 아쉽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장거리 연애에 종지부를 찍으면 누구 하나는 가족과 멀어져야 하는 것이 국제결혼의 숙명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공항에서 엄마 못 찾으면 어떡하지?"

 어린아이도 아닌데 엄마를 잃어버릴까 봐 초조했다. 입국장에 밀려드는 인파 사이에서 까치발을 하고 목을 쭈욱 뺐다. 보이는 모든 얼굴을 재빠르게 후루룩 훑었다.


"어, 우리 엄마다!"

 엄마 얼굴을 발견하자 안도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상봉한 모녀는 손을 꼭 잡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와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줄까. 무사히 엄마를 만났다는 기쁨,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기내를 가득 채웠다.




하와이의 다채로움 속을 헤엄치다

아홉 시간 후 도착한 하와이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그동안 내가 다녀온 바다가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수줍게 웃던 소녀라면, 와이키키 해변을 둘러싼 상점가와 인공 라군은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도시 여자였다. 한눈에 말쑥함이 느껴졌다.


 반전 매력도 있었다. 중심가를 벗어나 외곽으로 가면 갈수록 수수하고 편안한 자연 그대로의 얼굴이 드러났다. 특히, 이웃한 카우아이 섬에는 원시적 야생미가 있었다.

 대지가 파도처럼 굽이치는 협곡, 그 사이로 내려 꽂히는 폭포, 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평원. 대자연은 인간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고층 호텔과 대형 쇼핑센터가 들어서기 전의 하와이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우리는 오아후와 이웃 섬을 돌며 하와이의 면면을 보았다. 하와이에는 휴양과 쇼핑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문화였다. 미국 본토도 그러하지만 하와이에서 여러 문화가 융합되는 것은 흔한 일. 태고적부터 하와이를 지켜 온 폴리네시아계 주민들의 문화에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필리핀, 포르투갈 이주민들의 문화가 융합되어 지금의 하와이가 탄생했다.

 복합적인 뿌리가 한 데 얽혀 꽃 피우는 음식과 언어, 춤, 축제는 특별했다. 각자의 태생적 특징을 온전하게 간직하면서도 다양성을 무리 없이 수용하고, 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하와이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다채로움'이 아닐까?

 하와이를 거니는 동안 다양한 색깔이 모여 무지개 입자를 이루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와이를 무지개의 땅이라 일컫는 것은 단지 기상현상에 대한 묘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넓은 의미를 품은 말이었다.




우리의 진짜 색깔은 무엇일까요?

 내가 자란 세계는 무지개라기보다는 1도 인쇄에 가까웠다. 누구 하나라도 다른 색을 띠면 혼자 튀었다.

 학교는 아이들 각각의 색깔을 살리기보다는 모두가 하나의 색깔에 동화되도록 유도했다. 무지개가 될 수 있었던 아이들은 카멜레온이 되어 사회가 원하는 색으로 스스로를 갈아입었다.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좀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제자리걸음과 걸음마 사이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다.

 

 다문화를 예로 들면, 공익 캠페인마저도 "엄마가 외국인인 아이가 이렇게 김치를 잘 먹어요. 한국 친구들보다 김치를 더 많이 먹으니까 한국인이에요."라는 내용으로 기획됐다. 

다양성보다 획일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 메시지다.


 그런 흔적은 곳곳에서 보인다. 아직도 결혼이주여성 정착 지원 정책엔 김장교실이 빠지지 않고, 김치 회사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다문화 가정을 초청해 공장 견학을 시키는 것에 머물러 있다. 

김치에 담긴 상징성을 짚어본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내는 의미가 더욱 명료해진다. 아이들이 지녀야 할 빛깔은 한국의 색, 하나뿐일까?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은 일본에서 이중국적 아이를 낳았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를 '하프 Half'라고 불렀다. 채 하나가 되지 못한 반쪽이라는 의미로, 어딘가 순혈주의적인 냄새가 풍기는 단어였다. 

굳이 무어라고 지칭하고 싶다면 차라리 '더블 Double'이 나았다. 두 가지 배경 모두를 인정한다는 뜻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나와 처지가 같은 엄마들 중 몇몇은 아이의 정체성을 1도 인쇄에 맞추고자 했다. 따돌림이라도 당할까 두렵다는 것이었다. 혼자 다른 색깔을 갖고 있으면 튀어 보이니 '한국 물을 빼고' 키운다고 했다.

 일본어로 해 나갈 학업에 방해가 될까 봐 한국어를 일절 들려주지 않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몸에 한국 냄새가 배어날 수 있으니 한국 음식은 먹이지 않는다는 엄마도 있었다.


 무채색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국에 갓 이주한 외국 새댁들이 김치를 통해 시어머니의 주방을 계승하려 하고, 모국 동화보다 한국 동화를 더 많이 읽어주는 마음도 같은 것이 아닐까.




아이 색깔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 되기

 그러나 나는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아이가 갖고 태어난 색깔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다.

 자신이 지닌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길 바랐다. 삶의 무게중심이 내가 아닌 '남'에 쏠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 대세를 따르기 위해 남의 색깔을 무턱대고 덧입히다 보면 탁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가족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남편과 시부모님은 한국 피가 흐르고, 한국어를 하는 아이를 존재 자체만으로 대견하게 여겼다. 

거리에서 한국 노래를 당당하게 부르게 하고, 한국 요리를 함께 먹었다. "이건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 거야?"하고 묻고, 아이가 답을 하면 크게 칭찬하며 자랑스러움을 표했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두 언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것을 지지했고, 생일엔 '축하합니다'라고 쓴 한글 카드와 함께 "미역국 먹었니?"하고 인사해 주었다. 

 아이는 어른들의 단단한 보호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지켜 나갔다.


 이중국적 아이들이 이렇게 산다고 해서 일본 사회가 한국화 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국적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고 해서 한국 고유의 정체성이 흐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계시민교육이 강조되는 시대에 멀리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나라 문화를 접할 수 있으니 득이 된다.


 꼭 다문화 가정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은 1도 인쇄의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로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무채색으로 꾸며진 세상을 새롭게 채색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여행에서 돌아온 후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어 졌다. 너의 색깔을 바꾸려 하지 말라고. 

타고난 대로, 있는 그대로 성장해서 우리 사는 곳을 천연색으로 물들여 달라고 말이다.




여행은 살아있는 엄마 수업

 하와이가 인상 깊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어느 나라든 깊이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 삶에 적용할만한 가치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하와이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은 하와이에서 엄마로서의 중심을 잡게 되었다. 

생활 속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일도 소중하나, 가끔은 일상적 육아에서 벗어나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여행이었다.

 

 내가 만약 일본에만, 나고야에만, 우리 동네에만 집중하는 엄마였다면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내용은 무지개 어쩌고가 아니었으리라.

 여행을 가고, 다른 나라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크고 있는지를 보고, 각각의 사회가 중점을 두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관찰했기에 아이를 전형적인 일본인으로는 키우지 않겠다는 방향을 찾았다. 엄마로서 큰 소득이었다.


 하와이로 떠난 여행은 살아 있는 엄마 수업이었다.

그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가 넓힌 시야는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의 모든 경험과 체험과 시각은, 아이의 소유이기도 하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하와이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하와이의 말쑥함. 정작 나는 다양성에 감동받았다.


여전히 살아 숨쉬는, 경이로운 자연


음식에도 하와이를 이루는 사람들의 특색이 반영되어 있다




이전 17화 여행지에서 왜 한국인을 피하냐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