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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Oct 16. 2020

여행 동행자, 찾지 않고 키웁니다

"내 취미는 헬로카봇이랑 여행이야"



아빠의 낚시 친구

외출 좋아하는 아들과 낚시 좋아하는 아빠의 궁합은 찰떡이었다.

태교를 <어류 백과사전>으로 했던 남편은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온갖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이는 참돔 감성돔 벵에돔 혹돔 돌돔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부자는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다음 아이를 데리고 강으로, 바다로 갔다. 수족관이나 마트 생선코너가 아닌, 자연에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통영 출신인데도 생선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소리부터 지르는 나와 달리, 아이는 갓 낚은 물고기를 만지고 싶어 안달복달했다. 

남편은 "기생충이 있으니 조심해야지." 하고 근엄하게 주의를 주면서도 속으로는 좋아 죽었다. 평생 함께 할 낚시 친구가 생겼다며, 그동안 육아를 한 보람이 있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엄마의 여행친구

그러나 나는 아이가 낚시보다 여행을 더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바, 근거는 아래와 같다.

아이에게 '취미'라는 단어에 대해 알려 준 날이었다. "취미는, 할 때마다 재밌고 신나는 걸 말하는 거야. 그래서 다음에 또 하고 싶어 지는 거야. 아빠 취미는 뭐라고 생각해?"

아이는 주저 없이 답했다. "아빠 취미는 낚시야!"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다.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엄마 취미는?"

"엄마 취미는 밥이랑 여행이야!"

밥을 먹는 것도, 하는 것도, 여행도 좋아하니 정답이었다.


"그럼 너는 취미가 뭐야?"

"내 취미는 헬로카봇이랑 여행이야!"

아, 낚시는 카봇에 밀리고 말았다.






여행자가 되기 위한 준비 운동

아이 입에서 "내 취미는 여행이야"라는 말이 나오자 세상이 밝아 보였다. 모든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에 아이가 싫어한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 어린것이 여행을 좋아한다니! 반가운 마음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어쩌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움텄다. 아이와 여행 동행자가 될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 가능성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아이는 '지구'와 '지도'에 유독 관심이 많다. 세계지도 사이에서 자신이 다녀온 몇몇 나라를 짚어 낼 수 있고, 다른 나라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가고 싶은 나라도 생겼다. 덴마크에 있는 레고 하우스, 그리고 아프리카 케냐란다. 가장 갖고 싶은 물건은 지구본이라 했다. 지구본 지구본 노래를 부르며 어른들을 몇 달이나 졸라 댔는지 모른다.


"사고 싶다고 해서 다 사는 거 아니야."라는 말로 아이 소비습관을 바로잡아야 했지만 실은 내가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지구본 사러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느라고. 2주 후에 다가올 아이 네 돌 생일엔 지구본을 짠 하고 내어놓을 생각이다.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니 엄마 마음은 활어처럼 펄떡인다.

 

지금까지는 아이가 어렸기에 함께 갈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해와 달을 거듭할수록 아이는 성장할 것이고 같이 걸을 수 있는 영토도 넓어질 것이다. 남편과 아이 없이 다니는 여행을 지속하되, 가족여행의 참맛도 느끼게 될 그 날을 기다려 본다. 

더불어, 남편에게 심심한 위로와 함께 힘내라는 말을 전한다. 카봇과 여행에 이어 낚시도 정식 취미로 등극할지도 모르니까!

  





일본 산부인과 입원실. 자연분만을 해도 일주일간 입원한다.


하루동안 제공되는 산모 식사.


육아(2016년생) 육묘(2004년생)의 시작. 고양이가 누나라는 사실.


현재 : 매 주말마다 가족 낚시


위) 물고기를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시뽀, 아래) 남편이 낚은 장어로 만든 덮밥


자라나라, 여행 동행자여! 지구본을 사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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