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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지 Oct 25. 2020

'엄마 다움'의 새 말뜻, 함께 쓰지 않으실래요?

<엄마 여행 다녀올게>를 마무리하며




요리 싫어하는 엄마들을 볼 때 드는 생각

 나는 88년생 엄마. 여행 말고도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요리다. 한식도 하고, 인도 음식도 하고, 캐릭터 도시락도 한다.

 나에게 요리는 자기표현의 일종이다. 빈 그릇은 도화지요, 식재료는 크레파스이자 물감이다. 홀로 자취하던 때부터 좋은 재료를 다듬어 음식을 하고, 예쁘게 담아 먹는 것이 좋았다. 담음새 고운 음식을 먹는 것은 밥상 앞에 쓸쓸히 앉은 나를 위로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그저 나 좋자고 한 '요리'라는 행위는, 엄마가 되자 칭찬받아 마땅한 덕목으로 지위가 상승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면 모두가 "남편이 복 받았네" "아이가 너무 좋아하겠어요" "너무 멋진 엄마네요"하며 칭찬해 준다.

 내가 요리하는 동기는 그게 전부가 아닌데. 어쨌든 엄마에게 요리란 아무리 과해도 욕먹지 않는 훌륭한 취미였다.


 반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들은 무거운 속내를 표현했다.

 "남편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아이 도시락을 아기자기하게 못 싸서 친구랑 비교될까 봐 미안해요."

 "제 손은 똥 손인가 봐요."


 사람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가지각색인데, 왜 요리를 즐기지 않는 엄마들이 미안함을 느껴야 할까? 요리 못 하는 아빠들도 그런 감정을 느낄까? '요리'와 '엄마'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요리 좋아하는 나는 요리 싫어하는 엄마들에게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그 묵직한 마음은, 내가 '여행'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과 같다.


 칠거지악의 시대는 갔지만 결혼한 이상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가정을 벗어나서는  되는 분위기만큼은 여전하다. 다시 말해, 엄마가  안에서 하는 무언가는 환영이지만  밖으로 나도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내를 '안사람', '집사람'이라 부르는 호칭 그대로다.

 요리하는 엄마가 칭송받는 것도, 여행하는 엄마가 눈총 받는 것도 깊이 파고들면 뿌리가 하나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출산'과 '육아' 이외의 것들이 폭넓게 허용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방 밖의 세계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질까?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요리를 좋아하라고도, 여행을 관두라고도 하지 않으면 어떨까. '이상적 어머니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는 것이다.




둥지를 떠나야 먹이를 잡아오는 어미새처럼

  결혼 후에도 여행을 지속하는 엄마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남편과 아이 없이 여행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혼자만의 여행에 대한 욕구가 없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가고는 싶지만 '엄마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못 가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나는 여행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나와 똑같은 것을 좋아하라고 강권하는 타입은 결코 아니다. <엄마 여행 다녀올게>는 후자에 속하는 분들을 위해 경험을 공유하고자 쓴 글이었다.


 처음 결혼을 했을 때, 나도 사회의 눈으로 스스로를 검열했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두고 여행을 가도 될까. 모성애가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정말 나쁜 엄마일까'를 생각하며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지금은 쇼와 시대(1926-1989)가 아니라고.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지금은 쌍팔년도가 아니잖아!" 하는 뉘앙스다. 남편의 요지는 이랬다.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것이 무엇이든,
엄마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어가는 건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야.

낚시하는 아빠들은 많은데, 여행하는 엄마들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쇼와 시대 엄마들에겐 우리 동네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중요했어.
하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계는 더욱 넓고, 복잡다단해질 거야.
동네를 잘 아는 것만으로는 아이에게 해 줄 이야기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니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도 좋아.
여행하는 엄마라서 좋은 엄마가 될 수도 있잖아.



 그의 말이 옳았다.

 둥지를 떠나야지만 먹이를 물어 올 수 있는 어미새처럼, 나는 둥지 밖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아이에게 부지런히 물어다 주었다.

 어미새는 타고난 모습 그대로 마음껏 날 수 있어 좋았고, 아기새는 엄마가 물어 온 이야기를 먹으며 성장해갔다.





엄마의 여행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되기를

  결혼을 거부하거나 비출산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기존의 결혼과 양육 문화에 대한 회의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답다'라는 고전적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은 개인적 의미를 넘어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엄마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해도 괜찮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이전 세대처럼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가정과 나 사이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나처럼 여행을 즐기던 사람이라면 여행을 지속해도 좋고, "난 원래 요리 안 좋아해."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도 좋다. 어떤 방식으로든, 경직된 기준으로 '엄마답다, 엄마답지 않다'를 정의하는 흐름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엄마 다움'의 말뜻을 새로 쓰는 세대라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비록 지금은 발이 묶인 신세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길 위에서 더 많은 엄마 여행자를 만나고 싶다.







실은 요리도 여행의 연장 일지 모른다. 집에서 인도 여행.


엄마의 이런 취미는 괜찮고,


이런 취미는 안 되는 걸까요?


일주일에 4일은 일을, 3일은 육아를 하며 정신없이 살지만


가끔은 사막이든


바다든


화산이든


정글이든


북극이든, 가고 싶은 곳에 가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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