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질반질, 세월과 공간을 매만지는 마음
"그거 알아? 도쿄에는 노리 토스트를 파는 킷사텐이 있대."
"무슨 토스트?"
"노리 토스트! 김 토스트 말이야."
몇 년 전, 동네 친구와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도쿄에는 김이 들어간 토스트를 파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 참 일본에는 별 희한한 토스트도 많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김 토스트, 일본에서도 흔하지 않아. 일본인이 듣기에도 특이한 메뉴야." 하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시간이 흘러 올봄. 도쿄 취재길에서 바로 그 별 희한한 토스트를 파는 집 앞에 섰다.
1971년 도쿄 간다 역 앞에 문을 열었다는 작은 킷사텐은 머리 위에 빨간 줄무늬 차양막을 이고 '커피전문점 에이스(エース)'라는 이름을 새긴 채 서있었는데, 현관문 옆에 빼곡하게 쓰인 커피 메뉴판이 커피에 대한 이 킷사텐의 촘촘한 애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 여기가 노리 토스트만 있는 곳은 아니로구나. 정말로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를 만들어 온 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지는 첫인상이었다.
50년 동안 수없이 많은 단골손님이 드나들었을 킷사텐의 문을 나도 열었다. 내부는 일본 가정집 주방처럼 아담했고, 그 속에서 70년대를 그대로 간직한 듯한 빨간 의자가 경쾌한 인사를 건넸다. 벽면 한쪽에는 밖에서 본 것과 같은, 마스터의 필체로 하나하나 쓰인 메뉴판이 질서 정연한 존재감을 뽐냈다.
킷사텐 안에는 평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꽤 많은 손님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나 역시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짜고짜 노리 토스트를 주문하고서 커피를 내리는 카운터를 지켜보았다.
킷사텐 에이스는 아버지와 두 아들이 만든 곳이라고 했던가. 5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형제만 남았는데, 에이스가 처음 문을 열던 시절에는 나보다 더 어린 청년이었을 것이 분명한 두 사람은 어느새 백발이 새하얀 어르신이 되어 있었다. 세월을 머금은 노포는 누군가의 삶 바로 그 자체였던 것이다.
잠시 후 드립커피와 함께 내 몫의 노리 토스트가 식탁 위에 놓였고, 얇고 바삭하게 구운 두 장의 식빵 사이에 끼인 김과 간장 소스를 한 입에 배어 물었다.
빵 사이에 김과 간장이라니. 겉보기엔 너무나도 이상하지만 생각보다 멀쩡한 그 맛에 "어, 이거 맛있는데요? 간장 바르고 김 붙여서 구운 센베 같아요!" 하니 "노리 토스트 처음이세요? 아, 나중에 집에 갈 때 선물 챙겨드려야겠네." 하는 마스터의 대답이 너털웃음에 섞여 들어왔다.
내가 짭조름한 토스트를 연달아 베어 먹는 동안 손님 몇몇은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며 가게를 나섰고, 마스터의 아내는 손님이 떠난 자리에 놓인 그릇을 주방으로 부지런히 날랐다.
그런데 마스터의 아내인 할머니 손끝이 보통 야문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행주로 식탁 위를 닦고, 그다음엔 의자 전용인 듯한 청소포를 가져와 손님이 앉을자리와 의자 옆면을 닦고, 마지막으로는 바닥용 걸레를 가져와 손님 발이 놓여 있던 바닥을 윤이 나게 닦았다.
보통은 식탁만 쓱 한번 닦고 말 텐데. 의자며 바닥까지 닦는 모습이 신기해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문득 이 50년 된 공간이 너무나도 티 없이 깨끗하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눈치채고 말았다.
테이블이며 의자 모두 긴 세월을 지나왔기에 새 물건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무엇 하나 묵은 때 없이 반질반질 윤이 나게 관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구로서도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새 가구보다는, 누군가가 애정을 갖고 매만져주는 헌 가구가 훨씬 행복할지도.
잠시 후 나도 "잘 먹었습니다" 하고 계산대 앞에 서니 마스터가 약속했던 선물을 쥐여준다. 이곳에서 노리 토스트를 처음으로 먹는 모든 손님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란다. 손님이 없을 땐 이 선물을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며, 노리 토스트와의 첫 만남을 오래오래 기억해 달라는 인사. 참 소박하고 정겨웠다.
빨간 차양막을 지나 다시 킷사텐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이 킷사텐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마스터가 추천하는 커피를 골고루 맛본 다음엔 내 책에도 꼭 이 킷사텐을 실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한 달 후인 5월 말. 의외의 소식이 들려왔다. 에이스가 마지막 인사만을 남기고 폐업을 했다는 것이다. 많은 킷사텐이 그러하듯 마스터가 고령화되고, 뒤를 이을 사람 없이는 운영도 힘에 부치기 때문이리라.
내가 에이스에 간 것은 폐업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 이제는 더 이상 영업하지 않을 킷사텐을 그토록 윤기 나게 닦고, 킷사텐을 처음으로 찾아온 손님에게도 예외 없이 선물을 건넨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작디작은 공간을 정성 들여 돌보기를 매일매일. 그런 해와 날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졌을 노포의 어떤 하루를 나는 만나고 온 것이겠지.
이미 사라진 킷사텐에 대해 쓰는 일은 정보로서의 효력이 없는 메시지를 전하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렇지만 곧 문을 닫을 킷사텐의 바닥까지 힘주어 닦던 그 손길까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른 킷사텐을 이야기하다가도 자꾸만 에이스가 떠오르고 만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 킷사텐에 대해 털어놓을 수 밖에.
한때는 좋아했지만 이제는 사라져간 공간들이 이 노포 킷사에 겹쳐 보이며, 단골도 아닌 뜨내기의 마음이 괜히 시리다.
2024년 11월
존 레넌부터 하루키까지 예술가들의 문화 살롱
<도쿄 킷사텐 여행>을 펴냈습니다
우리의 도쿄 여행을 넓고 깊고 향기롭게 만들어주는 책이 되길 바라며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9733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