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타박타박 걸어왔습니다
세월을 굽이 굽이 돌아서
한 보따리의 등짐을 메고
거친 수풀길을 헤치며 걸어왔습니다
누구는 곧게 뻗은 신작로 위에서 꽃구경을 하고 왔겠지만
나는 풀 속에서
가랑이가 다 젖어서 헤어지고
거친 숨을 내뿜으면서 걸어왔습니다
누가 이 길을 가야 만 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것 도 아닌데
그러나
나는 이 길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현달 저무는 산 모퉁이를 돌면서
어머님 봇짐을 한 움큼을 내려놓고
벼 익은 들판 길 위에서
짝을 찾아서 떠나는 아이들에게
남아 있는 짐을 다 던져 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굽어진 허리는 다시 일어설 줄 모르고 있습니다
서산 너머로 해는 저물어가고
가야 할 길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림자만 홀로 남아서 길게 늘어져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