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을지로라는 들에 뿌리내린 17개 줄기, 24 송이 꽃이 감사합니다. 그들은 건조한 도시에서 각자의 취향으로 피어났습니다. 그렇게 핀 꽃의 향이 어떠하셨을지요. 딱딱했고, 씁쓸했고, 부드러웠고, 뜨거웠고, 새콤했을까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떤 이는 들에 뿌리를 더 깊게 내렸고, 어떤 이는 이곳에서의 결실을 통해 다른 곳으로 새로운 여정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묵묵한 땅 위로 각자의 경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들의 존재 전 후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눈으로 보이는 도시 구조의 변화보다 도시를 보는 감정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들과 시간을 공유했던 이들에게 어떤 마음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기억 속 과거의 을지로가 달라졌고 이제 그 기억의 힘으로 오늘이 달라집니다.
애석합니다. 도시를 사유화하고 싶은 욕망은 몇 년 전부터 실현되고 있습니다. 날카롭게 낡고 작은 도시를 파냅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이주했고, 낡은 건물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롭게 땅의 주인이 된 신축 빌딩엔 공실이 가득합니다. 그 욕망이 만든 공허함을 보고 있자니 지난 추억과 눈물들이 허망해지기도 합니다.
현실을 마주합니다. 허망함은 잠시 서랍 속에 넣어 두고. 여전히 도심에 터를 잡고 활동하는 예술가을 향해 머리를 돌려봅니다. 한동안은 그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도시의 모습은 변하겠지만 이들이 만들었던 이야기는 어디선가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의 활동이 만들어낸 거대한 의의를 다 정의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 과정 어느 지점에 있어보려 합니다.
어디선가 피어난 들꽃에 감사한 마음을 쌓으며.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