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 그 장소를 기억하게 하는 목격자
‘아마추어 서울’의 지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름에 담긴 ‘아마추어’라는 명사는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그래도 된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주 어떤 것들의 정답을 요구받아왔습니다. ‘답’은 옳고 그름을 정해주기에 늘 위축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 ‘정답’이 존재한다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삶이 담기는 도시에 ‘정답’이 존재한다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거대한 정답이 아닌 각자가 찾은 작은 답이 모여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마추어 서울’은 작은 답이 모인 서울의 모습을 해석하고 기록해 왔습니다. 그들의 시선을 통해 삶의 이야기가 담긴 지도가 만들어집니다.
지난 5년간 을지로 3가 골목 3층엔 ‘아마추어 서울’의 일원이자 예술교육자인 유혜인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습니다. 복도 끝에 위치한 작업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4개의 창이 있는 길쭉한 사다리꼴의 작업실이 포근하게 환영합니다. 창엔 여름을 애정하는 작가님의 흔적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망루 같은 작업실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도에 기록해 온 유혜인 작가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목차
유혜인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유혜인 이야기
저는 《아마추어 서울 amateur seoul》의 멤버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오랩 Olab》을 운영하면서 ‘디자이너’이자 ‘예술 교육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유혜인이라고 합니다. 주로 일상 속에 있는 어떤 사물이나 장소,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수집해서 다양한 방식의 시각 매체로 기록하는 디자인 작업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대상 이면에 숨어있는 것을 발견한다거나 혹은 주목하지 않은 부분에 주목해서 평범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 그리고 경험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교육가로서의 정체성을 말씀해 주셔서 인상적이에요. ‘교육’이라는 영역과 뭔가를 발견해 의미 있는 것들로 만들어가는 ‘디자인’ 과정이 촉각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두 가지가 작업물들이 계속 따뜻하게 나올 수 있게끔 순환되는 연결고리가 형성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만들어졌어요.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 만나는 기회가 생겼었었는데, 한 번 경험하고 난 후 변화가 생겼어요. 아마 그때 예술교육에 대한 관심이 싹이 튼 것 같아요. 그 후 스스로 예술교육 영역의 일이나 그와 관련된 것들을 찾고 교육 기획도 해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테고리가 늘어난 느낌이에요. 한 사건이 발단이 된 거죠. 그 우연한 하나의 경험이 그때는 몰랐지만.
디자인 영역에서 《오랩》과 《아마추어 서울》 말씀해 주셨었는데, 두 정체성이 어떻게 다른 건지 궁금합니다.
《오랩》이라는 이름으로는 클라이언트가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들 해왔어요. 어떻게 보면 머니잡을 수행하는 영역이에요.
《아마추어 서울》은 디자이너로서 관심 있는 작업을 풀어내는 프로젝트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지도를 매개로 도시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 그룹이죠. 서울에서 나고 자랐던 대학 동기 4명이 2008년에 처음 시작을 했었고, 현재 저랑 조예진 씨 이렇게 두 명으로 구성된 멤버가 운영을 지속하고 있어요.
상황에 따라서 멤버 구성이 변해왔어요. 네 명이서 운영했던 시절도 프로젝트를 네 명 모두 작업할 때도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서 세 명, 두 명 때마다 다르게 유동적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첫 시작은 대학교 4학년 때쯤이었어요. 서울 동네를 걸어 다니고 관찰하는 것을 멤버 모두가 좋아했어요. 그것이 하나의 ‘노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한 목적 없이 궁금한 지역에 가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어요. 그곳에서 발견한 것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그게 좋아서 계속 걸어 다니면서 서울을 관찰했는데 그런 시간들을 지속하다 보니 관찰하는 즐거움을 여러 사람들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것을 계기로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었어요.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빠르게 변화하고 사라지는 도시의 모습을 기록해야겠다는 작은 사명감 같은 것들도 생겼고요.
‘서울’은 멤버 모두가 태어나 자란 장소였어요. 성장 과정에서 타 지역으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도시였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계속 시간을 보냈지만 낯선 동네에 가면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모습의 서울이 존재하고 있었어요. 어떤 시간 차로 인해서. 그렇게 큰 목적 없이 계속 동네 이곳저곳 찾아가서 오랜 시간 걷고 경험하는 거 좋아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아마추어 서울 작업'이 된 것 같아요.
멤버들이 동네 친구들 있었던 걸까요?
아니에요. 모두 대학교 동기들이니까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던 친구들이었죠. 같이 사진도 많이 찍고 다니면서 길에서 맥주도 마시고 구경도 하고 궁금한 것들에 관해서 동네분들 마주치면 이야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서울 탐험대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는 그런 코드가 맞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다녔었는데. 친구들이랑 그렇게 동네 구경하고 다니면 재밌었을 것 같아요.
재밌었어요. 근데 좀 웃기지 않아요? 그렇게 논다는 것이요.(웃음)
상상만 해도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고향은 서울 어느 지역이었나요?
저는 강동구에서 태어났어요.
본가는 아직도 그쪽에 있죠. 부모님이 거점을 잡으신 곳이다 보니 그렇게 됐겠죠. 자연스럽게. 어머니는 부산 분이셨고, 아버지는 서울 분이셨어요. 두 분이 강동구에 터를 잡은 이후로는 그 지역이 안에서 저는 유년 시절부터 초, 중, 고 다 나오고 대학교도 그렇게 멀지 않았으니 그 지역이 자연스럽게 고향이 되었네요.
저에게도 서울이 고향이에요. 하지만 고향이었던 서울이 계속 바뀌어서 추억 속 고향이 오늘의 서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래서 앞에서 말씀하신 것 중에 ‘어떤 시간 차로 인해서’라는 게 지역을 보고 기록하는데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서울이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계속 바뀌며 달라져 가잖아요.
맞아요. 개발이 계속 이루어지니까.
지역과 지역 사이에 교집합이 안 된 부분 혹은 그렇게 된 다른 부분들에서 계속 변화가 이루어지니까 어떤 곳에 가면 그냥 도시가 아닌 것 같은 곳들이 있기도 하고, 어디를 가면 정말 최고의 도시인 것처럼 꾸며놓은 곳이 있기도 하고.
오히려 서울 안에 그런 것들이 같이 존재하는 지점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첫 작업실이 익선동에 있었는데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주변은 굉장히 발전되고 번화한 곳이지만 그 동네는 ‘여기가 시골인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낮은 지붕의 집들과 빨랫줄에 이불을 널어놓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죠.
작업이야기
이게 꼬집어 말하기가 좀 애매한 것 같아요. 《오랩》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로서는 굉장히 다양한 일을 했었거든요. 클라이언트 일들이 주로 많기는 하지만 범위나 종류가 사실 굉장히 다양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작업들은 어떤 니즈를 맞추는 일들이기는 하니까 무언가 ‘작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마추어 서울》이 발행했던 지도, 책 작업들이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진행해 왔기에 대표적인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지도는 총 11개를 발행했었는데 그 중간중간에 전시, 그리고 그와 관련된 워크숍들 같은 것들도 계속 해왔었어요.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19년에 DDP에서 ‘오픈 큐레이팅’으로 참여 작가이자 기획자로 『아마추어 서울』이라는 이름 자체를 가지고 했던 전시가 있었어요. 그게 의미 있는 전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역하고 관련해서 떠올려보면 『프로젝트 을』도 지도 제작 과정이나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의 경험들이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보니 중요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험들의 이야기를 모아 웹사이트 형식의 작업으로 선보이기도 했구요.
아이들하고 만나서 했던 것들 중 ‘예술교육가’로 의미 있었던 것으로는 우연한 계기로 베트남에서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정부 개발 원조) 했었던 경험이 있어요. 당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동남아시아 ODA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 사업에 참여를 하게 되었죠. 베트남 박하(Bắc Hà) 지역의 소수민족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수업도 하고 결과물 가지고 전시도 했던 프로젝트도 의미 있게 남아 있는 작업이에요.
최근 2년 동안은 서울문화재단 서서울예술교육센터 TA(Teaching Artist)로 활동하면서 아이들하고 수업하였던 결과물로 전시를 하기도 했어요. 팬데믹 때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날 순 없었지만 아이들한테 택배로 무언가 미션을 보내주고 아이들이 결과물을 저한테 다시 보내줬었죠. 제가 받은 아이들의 작업들과 이야기를 기록해서 다시 아이들에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아카이빙해서 책으로 만들어 아이들한테 선물로 보내주었어요. 그런 작업들은 품이 많이 들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의 작업들이기도 했구요.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 ‘프로젝트의 멤버’, ‘예술 교육가’ 이 세 가지 포지션에 따라 작업 결과물과 성향이 다르기도 한데 전체적인 관점으로 멀리서 커다랗게 보면 하나의 연결고리가 느껴지기도 해요.
자연스럽게 ‘예술 교육’에 관심을 두고 하다 보니 『오랩』 쪽으로 예술 교육과 관련된 곳에서 디자인 작업 일이 들어오기도 하고, 또 『아마추어 서울』을 통해 계속 기록이나 수집 아카이빙들을 해나가다 보니 그런 방향하고 연관된 작업들이 들어오기도 해요.
작가님 말씀을 듣다 보니 디자인, 교육, 프로젝트가 각자의 위치에 쌓여가는 과정에서 중첩되는 지점들이 자연스럽게 정체성을 만들어주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히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 나의 포지션이 또 경계가 약간 모호하고 불분명하고 몇 개의 캐릭터가 있는 것처럼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좋기도 해요. 그게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말씀에 동질감이 많이 들어요. 저도 교육이 관심이 많은 부분이라 조금 더 여쭤 보고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 한 작업을 보면 애정이 느껴져요. 아이들 보면 어떤 점이 좋으세요?
아이들하고 수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들려주는 게 너무 놀랍고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 상황이 좋아서, 그렇게 아이들과 만남을 하면서 나누는 시간이 작업의 원동력 같은 에너지를 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계속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아이가 좋다 이런 성향은 아니었거든요. 사실 아이가 너무 예쁘고 좋으니까라고 시작됐던 건 아니었어요. 그 친구들에게 어떠한 것을 질문하거나 혹은 어떤 거에 대해서 얘기할 때 내가 생각지 못했던 생각을 이야기를 나눠주는 게 즐겁고 좋았어요.
그 방향성을 가지고 몇 년 하다 보니 새로운 고민들이 생기기는 해요. 단어로 표현하기 애매한데 아이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교육의 기술(?)은 늘고 운영하는 과정은 안정적이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조금 더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어떤 얘기를 할 건지 어떤 질문을 다뤄야 되는지 방향성은 어떻게 잡을지. 예술교육을 해온 시간이 쌓이다 보니 이런 고민이 옛날에 비해서 점점 많아지기도 했어요. 고민의 답을 찾아야 될 텐데.
지도안이 정해지고 안정을 찾게 되면 같은 수업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음에도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해 주시는 것만 봐도 좋은 교육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교육에 대해서도 전공하시거나 공부를 하신 걸까요?
교육을 전공하고 교육에 관련된 내용을 꼭 알아야만 좋은 교육가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한편에 내가 너무 교육에 대해 모르고 있으면 아이들한테 뭔가 가르칠 때 자격적인 소양을 가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쯤 문화예술 교육사를 땄어요. 그때는 그 생각 때문에 그걸 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여전히 교육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생각이 한편에 남겨져 있긴 하지만요.
거점을 두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을 관찰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지역 안에 오랜 시간 계셔온 다른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그 내용을 중심으로 지도 만들었던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지동 지역에서는 시계 고치시는 장인분들 하고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어요.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개인사를 들려주시기도 하셨죠. 저희가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을 때, 낯선 사람들이 그 얘기를 하면 의문을 가질 만한데도 전화 한 통에 흔쾌히 공간을 열어주시고 인연을 맺어주신 세운기술서적 사장님도 계시고요. 이렇게 지도를 기록하면서 인연이 된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또 자연스럽게 연결된 게 지역 내에 예술 공간 거점 중 을지예술센터하고, 외부 예술가들이랑 함께 했던 『프로젝트 을』(을지로에서 활동해 온 선배 디자이너, 예술가가 멘토가 되어 멘티들이 지역의 산업을 잘 활용해 작업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 땡땡은 대학 한준 총괄로 이루어진 사업)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 지역 안에 거점을 두신 분들이 새롭게 유입되기도 하고. 이곳에 저희 같은 또 다른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도 기억에 남아요.
인쇄소 사장님(청산 인쇄 백태종 사장님)은 심지어 『프로젝트 을』 운영 때, 저희 취지도 알아주셔서 인쇄 투어도 주간을 같이 해주셨어요. 사장님은 《아마추어서울》이 발행하는 지도들 외에도 제가 하는 다양한 디자인 작업 인쇄물도 책임져주시다 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기억에 남는 분이기도 해요. 그분 중심의 지도도 만들었었죠. 심지어 DDP에서 『아마추어 서울』 전시를 할 때 와주시기도 했구요. 감동이었죠.
뜻하지 않게, 또 어떤 계기로 인연이 된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새롭게 들어온 예술가분들하고의 접점이 많다기보다는 지역 안에 기존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관계가 더 많았던 것 같기는 해요. 지도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었겠죠. 아무래도.
을지로 공장의 분주함과 사장님들 특유의 쑥스러움을 알기에 우리 사장님이 전시 와주셨다는 건 진짜 감동입니다.
심지어 오프닝에 와주셨어요. 계속 친분이 많이 쌓이다 보니 전시 때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초대했었는데 아무래도 바쁘시니까 진짜 오실 수 있으실까 했었거든요. 그런데 파주에서 일을 마치시고 DDP까지 와주셨어요. 쑥스러우시니까 오셔가지고 또 인사하고 얼른 가셨지만요.
사장님하고 일을 계속하게 됐던 이유는 단순히 일반적인 인쇄소나 기획사 입장에서 들어온 일을 한다기보다 본인의 작업으로 대해주셨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면 디자이너들이 굉장히 어렵거나 혹은 시도하고 싶은 다양한 방식의 인쇄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혹은 좋은 해외 사례를 구현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공정 과정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을 어떻게든 인쇄물로 만들고 싶다거나.
일반적인 인쇄소나 기획사의 입장에선 단가도 안 맞고 수고스러운 일이라 선호하지 않는 일들이죠. 근데 그분은 그게 재밌으신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하면 구현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하면 완성할 수 있을지, 이런 것들에 본인이 또 흥미가 많으셔서 약간 미션들을 해결하는 또 다른 방향의 디자이너 같은 분이었죠.
그래서 아마 본인이 더 힘드시긴 하셨을 거예요. 일을 더 하시는 스타일이니까. 그렇다 보니까 저희 일을 많이 부탁드리기도 하고 주변에 많은 디자인 스튜디오 일을 많이 하시기도 하세요.
《프로젝트 을》에서 저희는 지역 인쇄 기술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그때 인쇄 공정별로 멘티 친구들하고 같이 투어 하면서 직접적으로 현장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기도 하셨구요.
지도를 만든다는 게 되게 많은 의미가 담기는 것 같아요.
그렇죠. 막연히 종이 한 장의 지도가 아닌 것 같긴 해요. 저희가 하는 작업의 지도가 그게 아니기도 하니까 그렇겠지만.
'정'이라는 말이 적절해 보여요. 골목골목 '정'이 많이 쌓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인연이 되니까 세운기술서적 사장님도 가게를 정리하실 때 저희를 불러주셨어요. 그 덕분에 오랜 시간 서점이었던 공간과 마지막 인사를 같이 할 수 있었죠. 지도에 담았던 기록들 중 책을 비롯해서 가지고 계신 소품들 중에 저희가 보관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셔서 조금 챙겨 오기도 했네요.
공간이야기
맞아요. 그전에 아주 잠깐 동교동에 있었어요. 동교동은 작가들이 작업실을 공유하는 시스템의 주택이었는데 한 2, 3개월도 안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갔던 익선동 작업실이 첫 작업실이라고 볼 수 있죠.
익선동과 을지로, 서울에 남아 있는 원래 모습을 간직한 곳에서 계셨었네요.
그렇죠. 의도하지 않게 찾은 지역들이 그렇게 돼버렸네요. 익선동엔 2012년도부터 있었고, 제가 을지로에 온건 2017년이거든요. 익선동에서도 5년 정도 있었고 여기도 이제 6년이 되었네요.
익선동 작업실은 조금 개량된 한옥이었어요. 앞 골목 쪽에 딸린 두 칸 공간 중 한 칸이었거든요. 원래 둘 다 작업실로 사용되었던 공간이었어요. 옆 칸은 다른 분이 사용하셨어요. 어느 순간 옆 작업실이 아이스크림 가게로 바뀌면서 작업실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죠. 주변이 너무 많이 바뀌다 보니 이제는 좀 이동을 해야 될 시기가 왔구나 싶은 타이밍이 되었구요.
옮길 당시엔 임대료도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어요. 건물주가 몇 년 동안 임대료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은 없었어요. 계속 그냥 그대로였죠. 5년 차 되니까 이제는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이런저런 이유로 굳이 그렇다면 나도 이 변화된 공간에 더 돈을 내면서 있고 싶지는 않은 느낌이 있어서 이제 좀 이사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을지로로 오게 된 거죠.
골목이 보이는 1층에서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3층으로 이사 오신 게 되었네요.
을지로는 지역의 특성상 1층에 공장이 많아서 작업실을 얻는 건 쉽지 않기도 하죠. 어쩌다 보니 이곳으로 발길이 왔네요. 익선동에 있을 때도 디자인 작업들을 하면 인쇄소 혹은 관련된 재료들 때문에도 을지로 지역을 많이 걸어서 왔다 갔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익숙한 지역이었어요.
을지로에 거점을 두려고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편한 곳이기도 했구요. 어쨌든 계속 작업이나 일과 연관된 지역이기도 했으니까. 실제로 을지로에 있으면서 되게 좋았어요. 인쇄소들도 가깝고 원하는 종이나 재료 보기에도 다 도보권으로 가능하니 되게 편하더라구요. 실제로 일할 때.
공간은 어떻게 찾게 되신 거예요? 작업실마다 방문하면 느낌이 다 다른데 작가님 작업실은 되게 개방감이 좋으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가까운 작업 동료(지금은 남편이 된)와 함께 찾은 공간이에요. 새로이 작업실을 보러 다니면서 여기가 좋겠다 했었는데 전 처음에 의심했죠(웃음).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다른 곳들을 둘러보았지만 여기가 계속 기억에 남고 좋더라구요.
중요한 일을 해 주셨네요.
이제 곧 을지로 작업실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신다고 들었어요. 공간이 정리되고 나면 이후 이 공간은 어떻게 쓰이게 될까요?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작가님께서 이사를 오셔서 쓰실 예정이에요. 아마 잘 사용해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소유한 공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있으면서 잘 쓰고 애정이 담겨있던 곳이다 보니 누군가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와서 써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마침 작업하시는 분이 오신다니 좋아요. 일반 사무실보다 작업하는 공간으로 이어지는 것이요. 저는 떠나지만 그 온도도 유지될 수 있을 것 같구요.
공간에서 가장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이 질문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긴 했어요. 작업실 공간이라는 것 자체는 개인적인 공간이잖아요. 그동안 여기 머무르고 지나간 사람들도 생각나고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변형됐던 공간의 모습들이 그려지고 지나갔던 것 같아요.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건 어쨌든 거점을 두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냥 일상의 생활 반경이 그 주변으로 자리 잡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을지로에서 6년가량 지내다 보니 집, 동네가 아닌 어쩌면 사실 집 동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내와서 의식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 모습을 기억하고 관찰해 왔었죠. 그래서 이 공간 안에 쌓여온 이야기나 모습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주변에서 제가 계속 보고 이루어졌던 일들이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인 것 같아요.
《아마추어 서울》에서 발행한 지도들 중 이 주변 지역에 대한 것들이 꽤 많은 편이에요. 이렇게 보여지게 된 영향도 같은 이유들이겠죠. 그렇다 보니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의 일부가 지도라는 결과물로 나오게 된 것 같구요. 자연스럽게 지도의 주제가 이 공간 주변에서 계속 지속적으로 제가 관심을 가졌거나 관찰하면서 알게 된 것들에서 시작된 것일 테니까요.
좀 다른 얘기지만 좋아하는 책 서문에 이런 글이 있어요. “우리 시대와 장소의 정직한 목격자이고자 한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걸 처음 읽었을 때 내용이 너무 좋았거든요. 이 문장을 보면 공간을 운영하던 거점을 어디에 두든 그곳을 경험하고 그때 그 시간에 내가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목격자면 좋겠다 하는 생각들을 하곤 해요.
이 말씀을 들으니까 이 공간이 망루같이 다가와요. 이 앞에 풍경들이나 지나는 사람들이 다 작가님이 남기고 가는 이야기들 같아요.
맞아요. 계절에 따라 변화되는 것.
이 주변을 내려다보면 다른 공간의 일상들도 보이잖아요. 패턴들도 보이는 것 같아요. 뭔가 딱 하나가 특별히 남기고 싶다기보다는 그런 방향들을 남기고 싶어요.
어떤 공간이던 사실은 영원히 있는 곳은 없잖아요. 사실 익선동을 처음 떠날 때도 되게 많이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면 또 이렇게 하나씩 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별하는 기분이에요. 건강하게.
그래도 이번에는 (그때도 그렇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돼서 그래도 다행이에요.
애정이 가득했던 공간이 다음에 또 다른 작가님이 쓸 때 다시 온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궁금해져요. 그때 꼭 와봐야겠어요. 작가님과 작가님의 시선을 떠올리면서요.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정서적인 유대도 깊어지셨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을지로가 계속 변해갈 텐데 변화를 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어떠실지 듣고 싶어요.
사실 작업실 두기 전에 제가 회사 생활 잠깐 했을 때가 있었어요. 문구를 엄청 좋아해서 문구 회사를 다녔었어요. 2008년부터 한 3년 정도 일했었는데, 그때도 관련된 일들을 하니까 인쇄소를 오긴 했었거든요. 감리 보러 왔던 때가 아마 이 을지로에 온 게 기억으로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로 작업도 다양하게 하고 했는데 그래서 되게 다양한 장면들도 봤고 경험도 쌓였어요. 그동안 변화되는 모습을 오롯이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플 때도 있었구요.
사실 도시가 가진 숙명이니까. 변화한다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변화해야 되는 것이기에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하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이전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애정 어린 지역이 됐네요. 자연스럽게 작업이나 삶에도 그렇게 영향을 다 줬던 것 같아요.
내일 이야기
가끔 《아마추어서울》 멤버 예진 씨랑 웃으면서 우리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지도를 만들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실제로 아마 속도나 방식은 느리거나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처럼 주변 관찰을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계속 기록하고 지도를 만드는 작업은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또 동시에 다양한 장소에서 아이들을 만나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도 계속 멈추지 않을 것 같고요.
뭔가 좀 크고 대단한 무언가를 내가 10년 후에 이룬다기보다는 그냥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이나 이 방향성을 계속해서 좀 지키고 해 나갈 수 있는 게 가장 어렵지만 하고 싶고 그려보고 싶은 모습인 것 같아요. 지금 시점에서는 지나온 10년이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어 작업이든 프로젝트든 일이 하나의 방향으로 잘 흘러왔는데 또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어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지도를 만든다는 것과 아이들을 계속 만난다는 게 다 하나로 연결된 이야기로 들려요. 계속해서 그 안에 있는 이야기와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실 것 같고 또 아이들은 또 언제든지 만나도 나를 좀 새롭게 알려주고 즐겁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친구들이어서.
뭐랄까 스스로 뭔가를 해야 아이들을 만나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질문을 할 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니 결국에 그 두 개는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할머니가 되어 만든 지도는 어떨까. 그래도 어쨌든 목표는 그래요. 저희끼리 자주 그런 얘기를 나눠요.
그때 그 지도를 보고 어떤 얘기를 나누게 될지 궁금해요.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랑 같이 발견한 것들이 지도로 만들어지는 모습도 보고 싶어 집니다.
지금처럼과 비슷할 것 같아요. 출산 앞두고 있지만 상반기부터 연결되어하고 있던 일들이 있어서 하반기에는 이어서 디자인 작업들 할 예정이고, 아이들을 만나는 수업도 예정되어 있구요.
《아마추어서울》도 계속 다양한 방향의 관찰이나 주제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잘 준비하여 내년에는 새로운 발행 소식도 전하고 싶어요. 원래 저희가 좀 느리니까 천천히. 그래도 내년에 전하고 싶네요.
《아마추어 서울》의 2024년의 소식은 어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인스타그램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어요. (아무래도 sns가 제일 빠를 것 같아요!) 아주 부지런히 포스팅을 하지는 않지만,, 전할 소식들은 놓치지 않고 전하고 있구요.
그 시간, 그 장소를 기억하게 하는 목격자
작가님께서 지나오신 시간을 들으니 마음의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디자인, 프로젝트, 예술교육 세 축이 서로 독립적이지만 연동되면서 일상을 귀하게 만들고 아이들의 행위를 귀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정에서 포근함과 안정이 느껴집니다. 그 감각이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주고 길라잡이가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 역시 항상 마음에서 의지했었나 봅니다.
을지로 작업실에서의 장이 막을 내리지만 다른 환경에서 다른 폭으로 열어나가실 다음 장의 모습이 기대되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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