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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r 30. 2023

1학년 담임은 나를 망쳐놨다

민감한 학교 선생님 이야기

아이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훌륭한 분이셨다.

1학기 첫 상담 때에도 느꼈지만, 평소 학급 밴드에 그날 수업 활동을 사진과 글로 정리해서 매번 올려주시는 걸 확인하면서 더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갔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라면 모두 다 이렇게 학급 밴드에 학부모를 위해서 그날의 활동 사진과 배운 내용을 올려주는 줄 알았다. 다른 학교에 보내는 엄마가 자기네 담임선생님은 사진 같은 거 아예 안 올려준다고 할 때에도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첫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에도 아이들 관광버스에 안전하게 탑승해서 앉아있는 모습을 일일이 다 찍어서 출발 전에 보내주시고, 체험 중에도 수시로 즐겁게 체험하는 아이들의 모습, 모여 앉아 도시락 먹는 모습들을 올려주셨다. 사진 못지않게 영상도 자주 찍어서 예쁘게 영상편집까지 하셔서 올려주시곤 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노래 부르고 만들기에 집중하고, 모둠활동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에 보내놓고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매일 오후 하교 후에 선생님께서 학급밴드에 업데이트해 주시는 그날의 활동 자료들을 보는 게 낙이었다. 단체 사진 속, 모둠 사진 속에 껴있는 내 아이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내는 게 하루의 즐거움 중 큰 자리를 차지했다.


담임선생님은 이미 그전에 맡았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소문이 나서 칭찬이 자자했고, 소위 평판이 매우 좋으신 분이셨다. 나는 일 년 내내 선생님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몸소 확인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교실에서 심한 장난을 치거나 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은 아이들 앞에서 혼내지 않고 따로 복도에 나와서 일대일로 지도해 주시는 분이었다. 비록 전화상담이었지만 선생님에 대해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아이가 잘하는 것과 장점을 보시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였다. 여러모로 초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대안학교와 사립학교를 두고 심히 고민했던 나에게 "집 앞에 이 좋은 천국을 두고 어디 멀리로 보내려고 그랬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1학년 담임선생님께 제대로 반하게 된 계기는 공개수업을 보고 나서였다. 아이들의 흥미와 수준에 맞추고 적당히 동기부여 해가면서 학습내용과 모둠활동을 적절하게 조합해서 이끌어가는 수업은 정말 흠잡을게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도 더 하고 싶다며 성화일 정도였다. 공개수업을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다는 사실이 같은 초등은 아니지만 교사인 내 눈에 더 확실히 들어왔다. 다른 엄마들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니 다 이 정도는 하는 줄 알았다고 평범한 수업방식인 줄 알았다는 말에 나는 정말 잘하시는 거라고 목소리 높여 선생님의 수업을 칭송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나라면 학부모 공개수업을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잘 준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자기반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1년을 별 탈 없이 보냈고 학기말이 되어 선생님과 헤어질 날을 며칠 앞두고서부터 아이는 매일밤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다며 울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내년에 또 만날 수도 있어, 내년엔 더 좋은 선생님 만날 거야,라고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말들로 달래 보았다.


얼마나 아이를 사랑해 주었으면 아이가 이토록 선생님을 따르고 좋아할까 싶었다. 사실 유치원 선생님도 정말 좋은 분이셨는데 졸업할 때 이 정도로 아쉬워하지는 않았고 당연히 울지도 않았다.


겨울방학 내내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1학년에 너무 좋으신 분을 만나서, 이보다 더 좋은 분을 만날 확률은 희박할 거라고 짐작했다. 이미 최고의 것을 경험해 버려서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은 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동네 엄마들이 모두 아이들의 새로운 반과 담임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나누느라 단톡방이 불이 났다. 학교 생활 똑 부러지게 잘하는 아이 엄마들도 이 정도로 관심이 많았으니, 나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2학년 담임선생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 너무 궁금해서 아이 등교시켜 놓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새 학기 첫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꼬치꼬치 캐물어도 그냥 선생님 좋아 보인다는 응답뿐 별달리 알 수 있는 게 없었고 그저 첫 주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새 학기에 쏟아지는 각종 가정통신문과 준비물들을 챙겨주며 첫 주를 정신없이 보냈다. 1학년만큼이나 2학년도 학기 초에는 준비할게 많았다.


학급밴드에 가입하라기에 해뒀는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공지사항이 올라오지 않았다. 사실 공지사항보다 내가 궁금한 건 학교에서 아이의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었다. 옆반은 밴드에 그날 활동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왔다고 하는데 우리 반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너무 답답했다. 학기 초라서 바빠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궁금해서 비슷한 또래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님마다 특성이 달라서 사진이나 수업활동자료 매번 올려주시는 분도 있지만 아예 올려주지 않는 분도 있다고 했다. 내가 너무 과한 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한창 에너지 넘치는 9살 아이들 데리고 수업하다 보면 사진 찍을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학급밴드용으로 사진 찍느니 차라리 수업에 더 집중하고 아이들 지도에 신경 쓰자는 성향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2주가 지나도 학급밴드에 공지사항 말고는 아무것도 올려주지 않아서 사진은 올려주지 않는 분이구나 싶어서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는 말 안 하고 별 탈 없이 다니고 있으니 그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학교교육설명회 때 드디어 담임선생님을 뵙게 되었는데 굉장히 차분하시고 인상도 좋으셨다. 학급 활동 방향과 중점 지도 부분을 설명해 주시는데 꼼꼼한 분이신 것 같았다. 교실 환경 정리한걸 보니 수업 때 여러 가지 활동도 꽤 다양하게 한 듯했다.


 "역시 내가 기우였구나. 그냥 학급밴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이신 거야.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괜한 걱정하지 말자."


학교를 다녀오니 훨씬 안심이 되었다. 교실에서 수업하는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꼭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크긴 하지만 사실 그날의 활동모습이나 수업 내용 사진을 올려주면서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코멘트 남기는 글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크다. 그 짧은 설명글들을 통해 선생님이 아이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예뻐하는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를 첨부하면서 "우리 아이들 오늘은 어떠한 활동을 했는데 즐거워했고, 실수도 있었지만 떨지 않고 잘 해내준 우리 반 아이들, 집에서 칭찬해 주세요."라는 식의 멘트를 달아주셨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예뻐하고 정성으로 지도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달리 생각하면, 그것이 설령 학부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이라고 해도 그런 가식에도 노력이 드는 법이다. 왜냐하면 학급 밴드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교사 업무에 있어서 의무 사항도 아니라서 하지 않아도 별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아이들 학교 생활을 궁금해할 학부모들을 위해서 올려주시는 선생님의 배려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수업 준비 말고도 자질구레한 공문처리나 그날 그날 끝내야 하는 업무가 적지 않기에 학급밴드까지 신경 써주시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인 것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주변 엄마들에게 토로하면 1학년 선생님이 정말 특이하게 잘하시는 거였다고 보통은 학급밴드에 그렇게 정성스레 다 올려주지 않는다고, 학년이 올라가면 더 심해지니 적응하라고 충고해 주었다. 나도 그 말에 십분 동의하면서 새로운 선생님의 스타일에 내가 빨리 적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갑자기 학교가 재미없어서 다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태껏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아이라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었냐고 자세히 물어보았지만 별다른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냥 재미없어서 싫다고만 했다. 여차저차해서 나중에 알고 보니 반친구와 간단한 게임을 하다가 실랑이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얼굴 볼과 이마를 좀 세게 맞아서 선생님께 가서 일렀는데, 되려 이런 사소한 일을 선생님한테 이르냐고 혼이 났다고 한다. 아이도 한 대 맞은 후에 똑같이 때리긴 했지만 더 많이 맞았고, 그게 너무 아프고 선생님께 혼까지 나니 억울해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많이 화가 났고, 좀 더 아이의 마음을 살펴주지 않고 대뜸 혼부터 낸 선생님이 미웠지만 사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도 아니니 뭐라 할 말은 없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정말 사소한 일일수도 있고, 그 상황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아이가 억울할 수도 있었음을 인지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남편에게 말하니 "그래도 아이가 친구랑 같이 게임하면서 논 게 어디냐"며 되려 아무랑도 못 놀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반응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보면 똑같은 상황을 두고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친구랑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같이 놀다가 갈등이 생긴 거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가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법과 자신이 처한 억울한 상황을 좀 더 논리 있게 설명하지 못해서 더 속상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가정에서 내가 많이 신경 써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니 같은 반 다른 엄마들에게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똑똑하고 야무져서 학교 생활 잘 해내는 아이들인데도 선생님께서 좀 말을 아이가 무안함을 느끼게 한다거나 비난조로 혼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급기야 교육열 높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모이는 사립초등학교 전학까지 알아보았다. 이미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중간에 들어가기도 하늘에 별따기라는 사실만 씁쓸히 확인했지만.


아이 스스로도 다양한 선생님을 겪어보고 적응도 해봐야지, 담임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럴 때마다 전학을 가고 회피해 버리면 그것도 올바른 방향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았다던가, 왕따를 당했다던가, 학교폭력에 휘말린 것도 아니니 굳이 전학까지 고려해 볼 상황도 아니다. 작년과는 너무 다른 선생님의 스타일에 내가 맞추는 것 말고는 방안이 없다.


처음부터 너무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도 이런 폐해가 있구나.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여러모로 훌륭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훌륭하게 잘해주신 탓이 아닌가. 호의와 배려로 해주셨던 모든 일들을 당연하게 매번 떠먹고 있었으니 지난 1년간 나는 그 안온함에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신 차리고 벗어날 때가 되었다. 작년 담임선생님이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지만 이제 나도, 아이도 강해져야만 하는 때가 되었다.


문득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 마리의 새가 새로서 태어나려면, 먼저 그 알의 딱딱한 껍질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




초등학생은 내 아이인데, 나도 같이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성장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건 뭐일까.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에 적응하면서 아이는 한 뼘 더 자라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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