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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Dec 20. 2023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불안감

아이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는 법

대한민국 부모들은 불안하다.

자녀에게 증여할만한 대단한 재산을 소유하지 않은 이상 교육이라도 잘 시켜야 하고, 자식 농사 잘 지은 부모에게는 부러움과 찬사가 쏟아진다. 꼭 사회적 압박이 아니더라도 예쁘고 귀한 내 새끼가 기왕이면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으로 자라는 게 행복으로 느껴지기에 누구든 아이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투자한다.


또래 아이가 한글을 깨쳤는데 내 아이는 문자에는 관심도 없으면 불안하고, 초등학교 1학년이 치르는 받아쓰기에 100점을 맞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서울 강남이나 대치동에서 유행하는 학원이나 사교육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시작부터 뒤쳐지는 느낌에 괴롭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시대에 내 자식만은 커서 자기 앞가림이라도 하고 살기를 바라기에 부모들은 유아기부터 각종 학습지와 예체능 학원으로 사교육을 시작하는 게 당연시 여겨진다. 형편이 허락된다면 영어유치원도 보내고, 값비싼 프랜차이즈 어학원도 보낸다.


이런 과잉 교육의 시대에 살면서, 내 아이가 유치원도 입학하지 않은 서너 살에 발달 장애 판정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아직 학령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아직 국가적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 발을 내딛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발달이 또래보다 느리다는 걸, 병원 진단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달장애 영역 진단명까지 받게 되면 부모는 무너진다. 그 사실을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으로 부모는 고통받겠지만, 그중에서 부모를 가장 괴롭히는 감정은 단언컨대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 것이다.


아이가 정상 발달이고 보통 또래와 비슷한 발달을 밟고 있다고 해도 이 저성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밥벌이는 하고 살게 될지, 남에게 내놓을만한 제대로 된 직장은 잡아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게 될지 항상 걱정이고 불안한 게 부모의 마음인데, 아직 제대로 그 경쟁 대열에 서보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또래보다 느리다고 하면 그때 느끼는 불안감이란 상상 이상이다.


아이가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들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했다.

멋모르고 처음에는 이 모든 원인을 환경적 차원에서만 생각하고 내가 몇 년간 아이를 양육하면서 저질렀던 과오와 실수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곱씹었다. 임신 기간에 스트레스 관리 좀 잘할걸, 분만 과정에서 무통 주사 맞지 말걸, 독박 육아라고 불평하지 말고 아이랑 더 적극적으로 놀아줄걸, 3살 때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걸, 매일 산과 들로 나가 자연을 많이 접해줄걸.. 내가 잘못한 리스트를 뽑다 보면 끝도 없었다. 그러다가 남편의 저조했던 육아 참여에 대해 분노하고 양가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티브이 보여주고 유튜브 영상 보여줬던 일들까지도 다 끄집어내서 남 탓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양육 측면에서 엄마로서 나는 백 점짜리는 아니어도 감히 85점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열성적인 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 3년은 휴직 기간이었고 아이에게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었기에 내가 아는 선에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한 걸 찾자면 끝도 없다는 게 늘 맞닿뜨리는 모순이지만.


영유아기 때부터 또래보다 뒤처지기 시작한 아이 발달이 언제 따라잡힐 것이며, 따라잡는 사이에 시작되는 학교 생활과 학습적인 면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또 먼 미래에 내 아이가 대학교는 갈 수 있을지, 군대는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마음을 터놓을만한 친한 친구 한 명이라도 사귈 수 있을지,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아이에 대해 걱정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걱정할 게 끝없이 쏟아졌다. 이래서 무자식이 상팔자구나. 옛말 틀린 거 없다고 되새기면서.


어느 날 우연히 어느 분야의 책이 든 간에 20권 이상 읽으면 전공이 아니더라도 그 분야에 자신감이 생기고 관련 일을 시작해도 된다는 어느 자기계발계 인플루언서의 글을 읽었다. 그가 추천한 방식은 카페를 차리고 싶으면 커피숍 창업과 경영에 관한 책을 20권 이상 읽기, 상담에 관심이 있으면 심리 상담 관련 책을 20권 이상 읽는 식이다.


그전까지는 독서의 필요성은 알고 있었고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뭔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내 하루 스케줄에서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해본 적이 없었다. 책이란 그저 머리 식히기 위해서, 직장의 바쁜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을 때, 나에게 여유 시간이 허락될 때 즐기는 취미 같은 것이었다. 아이가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받았을 때에도 언어발달에 관련된 책 몇 권을 급하게 주문해서 밑줄 치면서 읽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해서 아동 발달 분야 책을 찾아서 읽지는 않았다.


"미라클 모닝"이라고 칭할 정도로 이른 새벽 기상도 아니고, 거창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침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되도록 아이 발달에 관한 책을 위주로 읽어보기로 했다.


ADHD 진단을 받기 전에는 주로 언어 발달과 자폐스펙트럼 관련 책을 읽었다. 이런 책들을 읽는 과정에서 새로 알게 되는 사실들도 많아서 유익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내 아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증상과 양상들을 마주할 때마다 괴로움도 자주 느꼈다. 아이는 자폐가 정말 맞는 걸까 고민하면서..


7세에 예기치 않게 ADHD 진단을 받고 난 뒤에는 관련 책을 몽땅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ADHD를 의심해 본 적이 없는데 이게 왠 날벼락이냐 싶은 마음에, 그리고 도대체 ADHD라는 게 뭔지, 어떤 질환인지 궁금했다. 두꺼운 전공 서적 같은 책들 빼고 시중에 나온 ADHD에 관한 책은 거의 다 구매해서 읽으려고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아이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지금껏 아이를 힘들게 했던 그 원인이 무엇인지 뇌 발달의 불균형이 발달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음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줄어드는 걸 느꼈다. 아이가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고, 약물 복용까지 시작한 후로는 약 부작용으로 식욕 부진과 수면장애까지 겪게 되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어릴 때 치료받지 못한 ADHD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괴롭힐 수 있지만, 어려서 적절한 치료를 받고 가족의 도움과 지지가 있다면 커가면서 충분히 그 증상들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글들을 접했다. 그것도 ADHD에 대해 장기적으로 연구한 우리나라 의학 전문가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소아정신과 의사들 같은 대단하신 분들이 쓴 글이니 공신력이 있는 말이라고 굳게 믿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ADHD 증상을 지니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의대를 나와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소아정신과 의사가 된 지나영 교수가 쓴 책은 더 감명 깊게 와닿았다. 발달적 어려움을 겪었고, 가지고 있음에도 그걸 이겨내고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는 가장 좋았고, 몽땅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었다. 내 아이도 그렇게 잘 될 수 있고, 내가 이 사례들을 체화시켜서 내 아이에게도 모두 다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근거 없는 무한 긍정론이나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적으로 잘 된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자기기만이다. 그저 부모로서 지금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일들을 해가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서, 또래들과 비슷한 정상 발달의 그 평균 어디 언저리에라도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발달 관력 책들을 읽으면서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이고, 독특한 사고와 행동을 할 때, 또래보다 서투른 모습을 보일 때 그저 막막하고 답답하다는 감정보다는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책에서 읽은 문구들이 떠오르면서, 아이가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 이런 말과 행동이 나오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행동양상을 인지적으로 이해하게 되니 마음도 따라갔다. 물론 완벽한 엄마는 못되는지라 책에서 조언한 대로 백 퍼센트 이상적인 양육 방식들을 일일이 실천하기란 쉽지 않고 매번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아직도 더 공부해야 하고 읽어야 할 ADHD 및 아동 발달 관련 책자들이 산적해 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대학원 가서 전공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냐 싶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대학원에 입학해서 마음먹고 공부할 만한 시간과 여유가 허락되지 않기에 꾸준히 책을 읽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꼭 발달 장애 관련 책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아이들을 위한 육아서나 오은영 박사님의 책들도 많은 도움이 됐다. 엄마로서 내가 더 노력하고 가다듬어야 할 부분들을 계속 되새기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게 해 주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안할수록 그 영역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계속 방향키를 조정하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찾아 나아가고, 책에서 주는 각종 데이터를 내 안에 쌓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극복해 낸 선험자의 글을 누적시킨다. 그러면 내 불안감이 누그러지고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던 자신감이 개미 눈물만큼씩 커지는 기분이 든다. 이것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불안감을 잠재우는 방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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