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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27. 2023

그 엄마, 스타일 좋고 예쁘잖아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

작년에 옆반에 서준이라는 남자아이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반 친구인 아이가 서준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는데, 선생님이 안 볼 때 뒤에서 은근히 놀리는 스타일이라서 그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했다. 놀림당하는 쪽의 아이 엄마와 나는 친분이 있었기에 당연히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


서준이랑 내 아이는 같은 반도 아니고 부딪힐 일도 없기에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다만 내 아이가 만약 그런 성향의 아이랑 같은 반이라면 스트레스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눈에 띄어서 대놓고 친구들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스타일이라면 선생님의 눈에 자주 띄어서 주의라도 받을 텐데, 그렇게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건드리는 아이라면 내 아이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게 틀림없었다. 서준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했던 같은 반 아이도 굉장히 자기표현도 잘하고 논리적이고 야무진데도 그렇게 느꼈을 정도면 사회성과 상황대처능력이 떨어지는 내 아이는 말도 못 하게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 서준이는 영어유치원을 나와서 영어도 잘하고 똑똑하다고 했다. 속으로 그냥 그렇게 똑똑한 녀석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내 아이도 우연찮게 학원에서 서준이라는 아이랑 몇 번 마주치게 되었는데 기분 나빴다고 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한 상황 설명은 못했지만 아무튼 어떤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제대로 보지 못했고 자기는 기분이 안 좋았다고 했다. "정말 서준이라는 아이, 못 말리는 녀석인가 보군." 속으로 생각했다. 학교에서 매일 마주칠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스트레스받았다는 아이의 엄마에게 물어보니, "걔 정말 사람 지능적으로 놀리는 스타일이에요. 애가 똑똑해서 선생님한테 들키지도 않고 또 선생님한테는 잘 보이려고 해서 이쁨 받고 여자애들한테는 젠틀한가 봐요."라고 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 같았다. 생긴 것도 호감형이라 여자애들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이렇게 약은 녀석들이 한 명씩 있긴 하지. 참 궁금하네. 그렇지만 이런 유형의 아이들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도 없는 스타일이다.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볼 줄도 알고 자신의 이익에 유리하게 행동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약을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약간 부럽기도 했다. 사회성도 없고 눈치도 없고 상황 파악도 잘 안 되는 내 아이에게는 몇 년을 훈련시킨다 해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성향이라고나 할까. 이런 성향의 남자아이들이 인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운동까지 잘한다고 하니. 나중에 고학년 되면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 좀 끌 것 같다. 조금 부럽긴 하다.


한참 후에 그 서준이 이야기가 또 나오게 되었다. 이번에 학원을 다른 데로 옮겼다는 들으면서 언급되었는데, 나만 빼고 다른 엄마들이 모두 서준이 엄마를 단지에서 봤다고 했다.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엄마 되게 잘 꾸미고 예쁘던데요. 스타일도 좋고요."


서준이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데, 서준이 엄마에 대해서는 다들 좋게 이야기했다. 다들 첫마디가 "예쁘다"는 것이었다. 사뭇 궁금해졌다. 나는 한 번도 만나 볼 기회가 없었기에 왜 여태 한 번도 못 만났을까 아쉬운 생각까지 들었다.


운 좋게도? 학교에서 하는 학부모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드디어 서준이 엄마라는 분을 만나 뵙게 되었다. 사실 가기 전부터 그 엄마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긴 했다. 그래서 더 빠지지 않고 참석할 일말의 이유도 있었다는걸 인정한다.


과연 사람들이 말한 대로 서준이 엄마는 예뻤다. 굽이 낮은 스니커즈를 신었음에도 키도 크고, 약간 눈에 띄면서도 튀지 않은 패션으로 적당히 꾸민 느낌이 나서스타일이 좋았으며, 화장기 없는 얼굴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단아하고 청순한 미인이라기보다 시원시원하고 서구적인 이미지였다. 머리는 꾸미려는 노력 없이 한 묶음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묶고 있었는데, 그것조차 예뻐보였다. 스타일에 맞춰 적당히 눈에 띄는 목걸이와 팔찌를 하고 있었는데, 참 잘 어울렸다. 그 엄마가 하고 있던 팔찌는 내 위시리스트에 있던 건데 예전에 가격 오르기 전에 나도 살걸 그랬나 싶었다. 지금은 물가상승 탓인지 명품도 너무 많이 올라버렸다.


그런데 그녀에게 반하게 된 건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조금 이야기를 해보니 성격도 얼굴만큼 굉장히 시원시원했다. 처음 만난 나에게도 순수하게 궁금한듯한 질문을 몇 가지 했고 웃는 얼굴로 들어주었다. 사람들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적절히 리액션할 줄 아는 여자였다. 웃음을 아끼지 않는 성격 같았다. 크고 호탕하게 웃는데도 밉지 않은 얼굴이었다.


갑자기 서준이 때문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스트레스받았다며 호소했던 엄마가 떠올랐다. 그 아이 엄마는 서준이를 완전 비호감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 덕분에 나도 잘 모르는 아이임에도 서준이에 대해서 좀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접 서준이 엄마를 만나보니, 그리고 그 친구 말고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노는 서준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다.


내가 너무 한쪽 이야기만 듣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서준이가 정말 영악하고 자기 유리할 때만 친구를 이용해 먹는, 순수한 친구 머리 위에서 노는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나보니 아이 양육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고, 무엇보다 성격이 매우 좋았다. 예쁘장한 외모와는 안 맞게 약간 푼수과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 잘 웃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나에게 없는 면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 예쁜 얼굴, 호감 가는 성격. (게다가 나보다 어리다) 이렇게 예쁘니까 다른 엄마들도 모두 서준이 엄마가 예쁘다고 할 때 두 말 않고 동의했구나 싶었다.


여자가 예쁜 여자를 더 좋아한다고 했던가. 서준엄마의 맑고 큰 눈과 시원하게 웃는 얼굴이 봐도 또 보고 싶다. 아. 아름다운 외모는 이렇게나 큰 무기가 될 수 있구나. 문득 손석희 아나운서가 강동원을 보고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했다던 말이 생각난다.


나란 사람은 처음 만났고, 내 아이도 전혀 알지 못했던 서준이 엄마에게 약간은 미안해지는 마음이 든다. 나는 미리 어디서 들어서 약간은 알고 있는 상태로 나만의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그 엄마를 처음 접했는데, 뭐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고 말을 많이 섞지는 않았지만 그냥 좀 미안했다.


서준이에 대해서, 그리고 그 엄마에 대해서 내가 좀 미리 판단하지는 않았나 반성했다. 이래서 사람은 정말 자기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남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서준엄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계속 서준을 "나쁜 아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바라봤을 것 같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그것이 진실인양 믿어버리면 그렇게 아둔해지고 마는 것이다. 아니면, 서준이 엄마의 예쁜 외모에 홀딱 반해서 서준이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지는 마법에 걸린 걸 지도 모르겠다. 역시 사람은 예쁘고 봐야 하나 보다.



*서준이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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