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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Oct 02. 2023

한밤중 집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파출소 가서 실종신고할 뻔

연휴 첫날 할머니 댁에 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잠이 들었다. 네 살 이후로 낮잠을 자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피곤하면 제발 낮잠 한 번씩 자라고 애원해도 아이 사전에 낮잠이란 처음부터 없는듯했다. 그런 녀석이 차에서 꿀잠을 삼십 분 이상 개운하게 잤으니 그날 밤잠은 다 자버렸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서야 인지했다.


가족들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시안게임 경기 좀 보고 나니 금세 피곤해졌다. 음식 차리고 명절 준비하느라 또 운전하느라 열 시쯤 되니 어른들은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낮잠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한 아이는 전혀 잠이 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니 말거나 일단 씻기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등을 대기가 무섭게 모두가 조용히 잠이 드는 분위기였다.


아이는 나에게 잠이 오지 않는다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여러 번 속삭였다. 평소 약물 부작용으로 수면장애를 겪어왔지만 몇 달 전 약을 바꾸면서 조금 줄어든 추세였다. 보통 아이들은 누우면 잠드는데 십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내 아이는 기본 삼십 분, 길면 한 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 날은 낮잠을 잔 탓인지 더 잠드는데 힘들어했다. 처음엔 어르고 달래 보려 했는데 나도 피곤함을 못 이기고 “이제 그만 좀 자”라고 정색하며 잠들어버렸다.


자다가 눈을 떠보니 옆에 아이가 안보였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보니 어두운 베란다에서 혼자 밖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라서 거기서 뭐 하냐고 얼른 들어오라고 다그쳤다. 아이는 웃으면서 잠이 안 와서 바깥구경하고 있었노라고 대답했다. 다시 한번 잠을 재워보려고 이차 시도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또 먼저 잠들고 말았다. 잠결에 아이가 나에게 “잠이 안 와서 할머니 방에 가겠다”라고 한 기억이 났다. 알았다고, 가보라고 하고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내 몸을 맡겨버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남편이 불을 켜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애가 안 보여. 어디 갔지? 화장실에도 거실에도 없어.”


“아까 할머니방 간다고 그랬어 가봐.”


“어머니 방에도 없는 거 같은데?!”


“뭐라고?!! “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할머니 방에 있겠거니 했던 내 안일함이 갑자기 긴장감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번쩍 일어나서 온 집에 불을 켜고 아이 이름을 불렀다. 우리 목소리에 어른들도 다 일어났다. 할머니방에도 거실에도 부엌에도 아이는 없었다. 집의 모든 공간을 샅샅이 뒤지며 아이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아까 베란다에 서있었던걸 기억하며 베란다에 나가보았다. 안 보였다. 현관을 나가보았다. 아이 신발이 그대로 가지런히 놓여있다.


온 가족이 패닉상태에 휩싸였다.


“아까 계속 잠이 안 온다고 했어. 잠이 안 와서 힘들다고 그랬는데 그냥 계속 자라고만 하고 나도 대책 없이 자버렸어. 어떡해 어떡해 어디 가버렸나 봐..”


친정엄마는 너무 놀란 나머지 곧 쓰러질듯했다. 일단 밖에 나가 본다고 무작정 어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 쪽으로 내려갔다.


내가 미쳤나 봐. 잠이 안 온다고 심심하다고 힘들어하면 억지로 재우지 말고 티브이라도 틀어줄걸, 아이패드로 게임이라도 하라고 해줄걸, 힘들어서 같이 못 놀아주면 다른 거라도 편하게 하라고 해주면 될 것을 잠이 안 온다는 애를 억지로 재우기만 하다 보니 이 사달이 났구나. 아이가 외로웠을까. 자기 빼고 모두가 잠들어버린 깜깜한 밤에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로 가버린 걸까.


불현듯 나 어릴 적 어느 날밤이 떠올랐다. 내 아이 나이쯤이었던 것 같다. 낮잠을 달콤하게 잤던 날 밤이었을까. 보통 밤 아홉 시면 정신없이 곯아떨어지던 나였는데 그날따라 잠이 전혀 오질 않았다. 가족들은 모두 자이 들었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너무 무섭고, 외롭고, 두려웠다. 부모님을 깨우면 화내실게 뻔했다. 혼자 불을 켜고 뭔가를 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잠이 안 온다면 혼자 일어나 다른 방으로 조용히 가서 넷플릭스를 보든 책을 읽든 할 텐데 어렸던 나는 혼자 불을 켜고 무언가를 해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조용한 밤에 시계 초침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오고, 깜깜한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점점 방안의 모든 사물이 선명하게 눈앞에 들어왔다. 너무 무서워서 혼자 겁을 먹고 울었던가. 그렇게 괴로움에 신음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지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린아이였던 내가 잠들지 않는 밤에 대한 기억은 썩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종류의 것이었다.


내 아이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그때의 나처럼 두렵고 낯설고 무서워서 차라리 이 무서움을 벗어나고자 신발도 안 신고 어디론가 나가버린 걸까.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너 하고 싶은 게임이라도 하게 해 줄걸.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아이의 신발을 보니 마음이 시큰하게 조여왔다. 경황이 없었다. 이럴 땐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남편이 베란다 쪽에 한 번 더 나가보았다. 베란다 끝에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문 쪽으로는 나도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온 집안을 구석구석 살피던 남편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가보는 듯했다.


거기에 아이가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 옆에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OO아!! 왜 여기 있어? 왜? 엄마 아빠가 너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


반갑기도 하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아이를 다그쳐다. 아이는 우는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재미있어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잠이 안 와서 거기에 있었다고 했다. 밖에서 아이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찾고 다니던 식구들을 다 불러들였다.


모두 얼마나 놀랬는지 애가 떨어져서 피곤함도 잠도 다 달아나버린 상태였다. 주차장과 놀이터 쪽을 몇 바퀴 돌고도 아이가 안 보이면 그 걸음에 바로 가까운 파출소로 가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집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도 자꾸 의문이 들었다. 그 깜깜하고 어두운 밤에 베란다 구석진 곳에서 왜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엎드려 있었던 걸까. 우리가 하도 채근해서 따져 물으니 엄마, 아빠 놀라게 해주려고 그런 거라고 했는데 뭔가 그 대답에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그 밤에 잠이 안 와 괴로웠던 아이는 마음속으로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아직도 미스테리다.


결론적으로는 아무 일 없이 무사하게 있어주어서 다행이고, 단순히 한밤중 해프닝으로 여겨버릴 수도 있다.


불면증은 사람을 굉장히 궁지로 몰아갈 수 있다고 들었다. 성인도 잠을 자고 싶은데 못 자는 불면증에 시달리면 우울감까지 동반되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돼버릴 위험성이 있다. 그런 수면장애를 어린아이가 겪고 있으니, 자기가 왜 이렇게 잠드는 게 힘이 들고 자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인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게 당연하다. 그로 인해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자꾸 아이를 자꾸 괴롭힐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어렸을 적 잠이 오지 않아 힘들었던 어느 날 밤을 기억하고 있는데, 아이는 거의 매일 밤 자고 싶어도 쉬이 자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내고 있으니 결코 편치 못할 것이다.


다른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아이가 숨바꼭질 놀이하듯 모두를 놀라게 하려고 그런 것 같다고 그 날밤 일은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잠이 오지 않아 괴로웠을 아이가 내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한다. 수면장애를 동반하는 약물 복용을 과연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이 여정이 언제 끝날건지도 알고 싶다. ADHD 증상 완화도 좋지만 그에 따라 감수해야 하는 부작용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쉽게 간과할만한 수준을 넘어선다.


아이에게 "또 잠 안 오면 베란다도 숨어버릴 거야?" 웃으며 농담조로 이야기했지만 마음이 아프다. 이제 나는 아이를 먼저 재우지 않고는 쉽사리 잠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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