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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19. 2024

육백만 원짜리 건강검진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맛보다

시부모님께서 최고 대학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예약하셨다. 반년째 어머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식사도 잘 못하시고 잠도 못 주무셨다. 병원에 몇 군데 가서 검사를 해봐도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아픈 어머님을 간호하면서 옆에서 바라보는 아버님도 같이 입맛을 잃어가시는 듯했고, 이러다가 두 분 다 큰 병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봐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니 차라리 이 기회에 몸 전체를 구석구석 다 훑어주는 건강검진을 받아보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에 유명 병원에서 몇 백만 원을 주면 받을 수 있는 비싼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차라리 그걸 받아버리는 게 낫겠다고 했다. 세상에 그렇게 비싼 건강검진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나는 놀라기도 했고, 그 비싼 건강검진도 이미 예약이 가득 차서 몇 달 대기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컨디션도 좋지 않은 몸인데 몇 달 더 참아야 한다는 게 힘들었지만, 용케도 시간은 흘러갔고 시부모님은 드디어 VIP 건강검진을 받으시게 되었다. 그 건강검진은 수간호사가 환자당 한 명씩 배치되어서 전담으로 도와준다고 한다. KTX를 타고 가서 내린 역에 리무진 승용차가 와서 대기했고 시부모님은 자식들의 동행 없이도 편하게 낯선 서울길을 헤매지 않고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자식 입장에서도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다는 부담을 덜게 되어 마음이 편했다.


이틀간의 검사를 받는 기간 동안 여러 번 통화를 드렸는데 어머님은 시종일관 감동받은 듯 병원의 모든 서비스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의료진도 너무나 친절하고, 꼼꼼하고 아주 자세히 봐주시고, 뭐 하나 불평할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게 완벽하다고 하셨다. 돈 많은 사람들은 건강 관리도 이렇게 받나 싶어서 신기하시다면서. 검사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 금지라 죽이 식사로 나왔는데, 미음죽조차도 너무 맛있다고 하셨다.


병원에 다니면서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내본 적이 없는데 정말 황제 대접받으면서 있으니 돈 쓴 보람이 있다고 하신다. 젊은 시절부터 어머님은 항상 자린고비셨고 절약이 생활화되신 분이다. 쓸데없는 헛돈 쓰는 걸 싫어하시고 일단 돈이 들어오면 아끼고 아껴 은행에 저축하는 게 미덕으로 생각하는 분이라고 남편이 말해주었다.

아버님이 외벌이로 열심히 번 돈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양가 밑천으로 들어가기도 했단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이제 은퇴하시고 자식들 장가보내고 손주 보면서 편하게 지내실만하니 갑작스럽게 몸에 적신호가 오니 얼마나 무섭고 놀래셨을지.


시부모님이지만 나 역시 친정부모님 아플 때만큼이나 그간 정이 들어서 그런지 많이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어머님이 진짜로 심각하게 아프셔서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그간 살뜰히 살아오신 덕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필요할 때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당신들 능력으로 최고급 건강검진도 받으시니 정말 대단하시고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세부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바로 확인한 건강검진 결과는 두 분 다 가볍게 약 처방받을 증상 외에는 큰 이상이 없으셨다. 이틀간의 초 VIP 대접을 받은 것도 기분 좋으신 듯했고, 검진 결과도 걱정한 것과 달리 양호해서 더 만족하신 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두 분 다 습관처럼 자꾸 "돈이 좋긴 좋다.."는 말을 내뱉으신다. 직접 같이 병원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자세한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제는 눈에 그려질 정도다. 한편으론 얼마나 좋으셨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 환자 신분으로 병원에 가면 보통 우리는 을이고 약자다. 의료진이 시키는 대로 기다리라는 만큼 기다리고, 가라는 데로 가고, 하라는 검사를 받는다. 친절한 병원도 많다지만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 아니었을까. 늘 을의 입장이 되는 병원에서 그야말로 VIP 대우를 받으셔서 행복하셨던 것 같다. 이럴 때 보면, 정말로 돈이 좋긴 좋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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