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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an 31. 2024

앤티가 바부다를 아세요?

나라, 국기에 꽂힌 아이

아침부터 일어나자마자 아이가 향하는 곳은 세계지도가 붙여진 벽 앞. 거기에 서서 한참동안 세계지도를 바라본다. 3주쯤 되었나. 아이가 나라와 지도에 꽂힌 것은. 정말 끈질기게 오래 지속되고 있다.


한창 지도를 바라보더니 이제 나라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나와있는 페이지를 펴서 빈 종이에 정성스레 따라 쓰고 있다. 누가 보면 무슨 엄청 중요한 과제라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눈빛이 너무 진지하다.


아이가 요즘 나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마치 "그쪽도 홍박사님을 아세요오~?" 그 말투를 똑같이 따라하면서 "그쪽도 기니비사우를 아세요오~?" 하고 물어본다. 그리고는 끝없이 나라 이름이 이어진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한한 나라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사실을 이 녀석 덕분에 알아간다.


"니카라과를 아세요오~?"

"리히텐슈타인을 아세요오~?"

"몬테네그로를 아세요오~?"



베냉, 벨라루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모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시에라리온, 아제르바이잔, 앤티가 바부다, 엘살바도르, 짐바브웨, 쿡제도, 트리니다드 토바고 처럼 이름이 매우 낯선 나라들을 특히 좋아하고 그 나라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바부다라는 말이 웃긴지 그 중에서도 앤티가 바부다라는 나라를 가장 좋아한다.


나라 이름 암기도 모자라서 이제 각 나라의 수도와 국기 모양까지 탐닉하려고 한다. 이제 좀 그만하라고 해도 멈출줄 모른다.


언제나 그랬듯, 아이의 끈질긴 관심과 집착은 두 세달 정도 가다가 어느새 모르게 사라지긴 한다. 아무리 뜯어 말려도 멈출 수 없다는걸 알기에 이제는 남편도 나도 반포기 상태로 적당히 장단만 맞춰준다.


국가와 지도에만 꽂혀있는건 아니다. 국가와 지도가 메인 관심사이고 나머지 마이너한 것들도 있는데, 호갱노노앱으로 동네 아파트별 시세 확인하기, 당근마켓 중고 물품들 살펴보기, 독박투어라는 예능 프로그램 등이다.


한가지 관심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영어 공부할 때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영어 학원을 다니지 않는 대신 리틀팍스 사이트에서 영상 노출이라도 시켜주고 있는데, 여기서도 자기가 마음에 드는 영상 한 두개만 골라서 집요하게 그것만 반복해서 본다. 좀 다양하게 여러가지 내용으로 구성된 영상이 많으니 이것 저것 봤으면 좋겠는데 여지없이 보던 것만 골라서 보고 있다. 정말 못 말린다.


어떤 주제를 깊이있게 알아보고 학습해간다는건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막상 독서는 싫어하고 책읽기에 전혀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다. 이번 겨울방학은 오로지 국가 이름 습득만 하다가 끝날 것 같은 기분이다. 3학년부터 과목도 늘어나서 사회, 과학 같은 언어 이해 능력이 요구되는 과목을 배우게 될텐데 그런 영역 책은 읽히려고 해도 거부하기만 하고 책 읽자고하면 13층 나무집만 매번 붙잡고 본다.


굳이 알 필요 없을 것 같은 희한한 나라 이름 알아가기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니 걱정이다. 솔직히 이런 관심사 집착은 약물로도 조절이 안 되는 영역인 것 같다. 덕분에 평생 몰랐던 나라들을 나까지 학습하고 있으니 감사해야할 일인지 난감하다.


항상 그랬듯 이 또한 몇 달 지나면 지나가리라. 또래보다 좀 더 기다림이 필요한 아이라는거 인지하고 있으니까, 좀 참고 인내해서 계속되는 국기 타령에도 적당히 장단 맞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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