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래 신혼도 아니면서
전에 <파친코>를 보고 이민호보다는 백이삭 목사 역할을 한 노상현이라는 배우에게 반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파친코> 시즌2가 나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언제일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쉽기만 했다. 노상현 배우가 다른 작품에도 출연한 건 알았지만 그 작품 속 캐릭터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무조건 백이삭 역할을 하는 모습만이 나의 감성을 자극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나만 알면 좋겠는데 파친코 이후로 점점 인지도도 높아지고 인기도 많아지는지 예능에도 심심찮게 출연하는 것 같았다. 티브이를 잘 챙겨보지 않으니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이랑 앉아서 티브이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오아 이게 누구야! 노상현이잖아..! 했다. 아이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배우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기 싫어했지만, 엄마 좀 보자고 꼬셔서 계속 보고 있었다.
티브이를 향한 내 표정이 어떤지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티브이를 보려고 합류하는 남편이 티브이보다 내 얼굴을 먼저 보았다.
"뭘 보는데 그렇게 흐뭇한 표정이야?!"
"어? 노상현 나와서...^^*"
파친코도 보지 않았고 노상현도 누군지 잘 모르는 남편은 내 표정이 아주 가관이라면서 혀를 끌끌 찬다.
쟤가 누구냐며, 자기는 듣도 보도 못한 연예인이라고 일갈한다. 요즘 연예인들은 정말 뛰어난 외모만큼이나 스펙도 어쩜 완벽한지, 노상현은 미국의 명문 대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이 정도면 사기 캐릭터라며 패널들이 한창 그를 띄어주고 있었다.
그의 평소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이 나오면서 점점 재미있어지고 있는 찰나, 남편이 자꾸 짜증을 낸다.
"애가 재미없어하잖아. 너 욕심 챙기자고 왜 자꾸 쟤만 보는데?"
"너 저런 스타일 좋아했냐?"
"저런 애는 너 쳐다도 안 봐요."
듣자 듣자 하니 점점 선을 넘는 모양새다. 본인도 최근 인기 있는 여아이돌들 줄줄이 꿰차고 있으면서 왜 내가 좋아하는 배우 좀 보겠다는데 참견인지 어이가 없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시청하려는데 아이도 다른 거 보자고 성화고, 남편도 그만 좀 보라며 잔소리하기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그래, 내가 포기한다고.
좋아하는 배우 좀 보는 게 그리도 싫더냐. 나도 잘생긴 남자 보면서 안구정화도 좀 하고 힐링도 하고 그러면 안 되냐고.. 결국 다른 채널로 돌리고 말았다. 기분이 살짝 상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남편도 한창 조용하다. 먼저 말을 걸었다.
"설마 노상현한테 질투한 거야?"
"....."
별 말이 없는 거 보니 질투한 거 진짜 맞네. 왜 이래 이 남자가 같이 산지 십 년 넘었으면서 아마추어같이 연예인을 보고 질투를 다 하다니. 지난번에 에스파 보고 침 질질 흘리는 거 다 봤는데,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말이야.
게다가 아이 데리러 같이 갔다가, 이제 갓 대학 졸업한듯한 아이 학원 선생님이 예쁘다고 했더니, 아래위로 슬쩍 훑는 그 눈빛도 내가 다 캐치했는데도 모른 척해줬더니.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남자도 아니고 티브이 화면 너머의 저세상 사람 보는 것도 꼴 보기 싫은 건지.
잘생긴 노상현 님은 그냥 아들, 남편 없을 때 속 편하게 나 혼자 영상 찾아서 보기로 했다. 그게 나도 마음 편하다.
이상하게 그날 밤엔 연예인도 남편도 아닌 제3의 남자랑 해괴망측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연애하는 꿈을 꿨다. 다음 날 꿈을 떠오르니 입에 담기도 민망해서 괜히 혼자 부끄러워했는데, 괜스레 들뜨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설레는 연애란 이제 꿈꿀일도 없고 꿈꾸어서도 안 되는 법적인 관계 안에 묶여있지만, 가끔은 이 정도 일탈은 즐겁다. 그러니까 이 정도 한눈팔기는 서로 눈감아 주자고.. 응? 이 남자야!
<사진출처: JTBC 배우반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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