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Mar 11. 2024

멜론의 배신

쿠팡의 배신 아니고요

이번 생에 주식과 부동산으로 부자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재테크 방식은 절약이다. 절약은 흔한 말이고 좀 고급진 표현으로 있어 보이게 지출 통제라고 해야 하나.


하루 8시간 이상 성실하게 노동하며 매 달 들어오던 월급이 끊긴 지 n연차라, 나도 모르게 줄줄 새는 푼돈도 아깝다. 월급통장에 여유가 있을 때는 그깟 청소이모님 쓰는 돈이며 공과금이며 별로 아깝다는 생각을 안 했다.


남편의 벌이로만 생활하다 보니 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아쉽기도 하고 가끔은 서럽기까지 하다. 남편에게 이런 내 마음을 토로해 봐도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자기는 아내가 돈 잘 벌어오면 감사해하면서 편히 쉴 거 같은데 나더러 참 이상한 사람이랜다. 더 말해봤자 언쟁만 될 것 같아서 그 이상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아무리 부부라도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한참 전부터 신경 쓰이던 고정지출비가 있었으니, 바로 온라인 음악 서비스앱인 멜론이다. 언제부터 이용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대학 때부터였던 것 같다. 1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매달 오천오백 원인가를 내면 멜론에 실린 모든 음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고 다운로드하여서 소장할 수도 있다. 따로 테이프나 CD를 사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멜론이 음악을 즐기기에 가장 편했다. 잘 찾아보면 멜론 이외에도 더 저렴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앱도 있겠으나 지독한 귀차니즘에 변화를 싫어하는 나는 카드 자동이체를 해놓고 이 돈이 나가는지 아닌지도 모르며 살았다.


음악뿐 아니라 멜론 서비스 중에 애용하던 기능 중 하나는 어학 서비스다. EBS 외국어 라디오 프로그램인 파워잉글리시나 모닝스페셜이 거의 매일 업데이트가 되어서 언제나 들을 수 있었다. 매번 부지런히 챙겨 듣지는 않지만 영어 흘려듣기로 편히 틀어놓고 싶을 때 다른 앱 찾을 필요 없이 가장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EBS 외국어 라디오가 차츰 멜론에서 발을 빼는 듯하더니 아예 업데이트가 끊겨버렸다. 몇 가지 어학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다 너무 기초 수준이거나 예전 거였다. EBS 영어 프로그램은 이제 아예 어학당이라는 앱에서 배타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 된 것 같았다.


노래만 듣자고 멜론에 매달 오천 원 넘는 돈을 지불하는 게 작은 돈인가 큰돈인가 잠깐 고민을 했다. 친구는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용하면서 원하는 음악도 거의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유튜브 프리미엄은 결제할 마음이 없다. 크지 않은 돈으로 가입만 해두면 광고도 안 봐도 되고 그만큼 편하기는 하겠지만, 그 편해진 만큼 더더욱 유튜브에 빠지게 될까 봐 두려운 게 가장 큰 이유다.


어차피 최신노래를 즐겨 듣지도 않고 집에서 클래식을 즐겨 듣지도 않는데 이번 기회에 끊어버릴까 싶었다. 끊으면 한 달에 오천 원을 아낄 수 있다. 멜론을 즐겨 이용할 때라고는 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할 때뿐인데, 그 시간 좀 참으면 어때.. 생각해 보면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니까, 큰돈은 아닌데 왠지 한 번 아깝다는 생각이 드니 멈출 수가 없다.


늘 자동 로그인 상태라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가물가물한데, 억지로 기억을 되살려서 PC에서 로그인을 했다. 나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카드사 사이트나 보험회사 사이트도 그렇지만 보상이나 결제 메뉴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멜론 사이트에서도 한참을 헤매다가 검색창에 물어 물어 겨우 결제 및 해지 메뉴를 찾아냈다.



약간의 머뭇거림 끝에 결제권 해지를 클릭하는 찰나, 이상한 화면이 뜬다.



"어라...? 20퍼센트 할인을 해준다고?"



해지한다고 하니까 대뜸 12개월 20퍼센트 할인을 해주겠단다. 그러면 한 달에 4천 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살짝 놀라기도 하고 반가웠는데,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다.


결제 해지를 찾아서 클릭하지 않았다면 이것들이 매달 자동으로 오천 원씩 떼갈 건데, 해지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할인 혜택을 준다고..? 그럼 진작 주던가. 십 년 이상 이용 고객이라고 괜히 VIP 이름만 갖다 붙이지 말고 진작에 이런 할인을 먼저 제공해 준다고 했으면 당연히 계속 이용했을 텐데. 갑자기 해지한다니까 밀당하는 거야 뭐야?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멈춘 채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래도 20퍼센트나 할인해 준다는데.. 그냥 계속 이용할까?


괘씸한 마음은 들지만 그래도 기간이 일 년이나 되기도 하고, 그동안 음악 듣고 싶을 때 편하게 이용하다가 새삼 못쓰게 되면 불편해질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으니까..



2,3분간의 심사숙고 끝에 그냥 깜짝 할인 혜택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잘한 결정인지는 모르겠다.


한 달에 오천 원 앞에서 너무 쩨쩨해진 것 같아서 나 자신에게 화도 나고, 나를 얄팍하게 간 보는 멜론 녀석도 괘씸하다.


나 참,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졌는지..


그나저나 EBS 외국어 라디오는 전용 사이트에서만 이용가능 하던데, 거기는 또 한 달 이용료가 얼마인가.. 찾아 나서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과 불면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