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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May 07. 2024

잔소리가 왜 죽을만큼 싫지

제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남한테 잔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잔소리'라는 게 하는 사람은 그게 잔소리인 줄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잔소리란 자고로 그걸 받는 사람만이 잔소리라고 인식했을 때 생겨나는 개념이지, 가하는 사람은 흔히 '이게 다 너 잘되라고, 너를 위해서, 너 생각해서'라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해주는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잘 몰랐는데 잔소리를 내가 죽을 만큼 싫어한다는 것은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다. 내가 극도로 예민해지고, 화가 나며,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순간들의 공통분모를 따지고 보니 나에게 누군가 이건 이러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면서 지시 혹은 명령 혹은 조언, 혹은 충고를 남발할 때이다.


그 사안이란 게 내가 전혀 문외한이라거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거라면 그나마 이해가능하다. 예를 들어 직장 생활을 할 때 관리자가 업무에 대해 그랬다면 반발심이 덜 올라온다. 때로는 그마저도 잔소리로 여겨질 때도 있긴 하지만, 월급을 번다는 경제적 목적이 분명히 있는 상황이고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게 내 의무이기도 하니까 큰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동료들에게 한탄 좀 하고 나면 쉽게 풀리기도 하고 더러워도 참는다는 마인드로 금방 잊힐 때가 많았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가까운 사람들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때는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화만 나는 게 아니라, 온갖 부정적 감정이 나를 휘감아서 미치고 팔짝 뛰면서 환장할 정도로 분노가 솟구친다.


특히 내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지금 현재 나보다 더 아이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나보다 더 아이의 증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와 24시간 함께 하면서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학교 가고 없을 때는 발달장애 공부를 하거나 육아서를 읽으며 조금이라도 아이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왜 이게 낫다, 저게 낫다면서 훈수를 두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듯, 누구의 말이 백 퍼센트 진리도 아니고 꼭 따라야만 하는 의무도 아닌데 왜 그걸 자꾸 강요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도 부족한 엄마라서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고 있으며 매일 패배감을 느끼면서도 또 좌절하고 또 일어서면서 겨우 견뎌내고 있는데, 이런 나한테 제발 이래라저래라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도 제발.


가하는 사람은 좀 그게 잔소리라는 걸 인지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데, 스스로 인지가 안되니 그게 참 문제다. 그게 바로 꼰대인데 스스로는 전혀 꼰대라는 생각을 못한다는 게 참 아쉬울 뿐이다.


아니면 반대로 내가 점점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건가? 다 나를 위해서, 내 자식 잘되라고, 내 앞가림을 위해서 해주는 충고와 조언들인데 나만 이렇게 아니꼽게 들리고 듣기 싫고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외치며 달려들고 싶은 건가? 남이 원하지 않는 조언을 퍼붓는 것도 꼰대지만 진심 어린 조언조차 거부하고 싶은 것도 변화하고 더 나아지려는 의지가 박탈된 내 현상태를 반증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게 논리적으로 맞든, 나를 위한 것이든, 정말로 그 조언대로 실천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다 듣기 싫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 이거 하나뿐.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 말을 하는 순간 어떤 불상사가 펼쳐질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져서, 전에 한 번 비슷하게 내뱉었다가 고구마 백개 먹는듯한 상황만 펼쳐졌던 게 생각나서 그냥 거두고 만다.


더불어 나도 조심해야겠다. 남편을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한다는 소리가 받는 사람은 '듣기 싫은 잔소리'로 느껴진다면 서로에게 참담한 일이라, 내 입밖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아이가 클수록, 나이 먹을수록 더욱더 온몸으로 와닿는 진리다. 말은 줄일수록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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