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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07. 2024

애가 혼자 있는걸 더 좋아하네?

그동안 왜 걱정한 거니

내가 없으면 집이 안 돌아갈 거라는 걱정 때문에, 내가 없으면 아이가 집에 혼자 방치될 거라는 걱정 때문에, 아이는 불안증세로 약복용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이유를 들자면 정말 수 만 가지가 될 만큼 여러 가지로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기가 너무 부담되었다.


아무리 골머리를 쓰면서 스케줄을 촘촘하게 짜봐도 결국 아이는 하루에 3-40분 정도 한 두 번 정도는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발생했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아이를 단 한 번도 혼자 집에 둔 적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아이가 혼자 있어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복직을 더 망설였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아침 등교 시간은 내가 먼저 출근해야 해서 아이 혼자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챙겨서 나가야만 했다. 이럴 땐 정말 가까운 지역에 양가 부모님 중 한쪽이라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이 들긴 한다. 아이 어릴 적에는 워낙 어리기도 했고 등원을 꼭 도와줘야 했기 때문에 이모님이 오시긴 했지만 그때보다는 부쩍 커버린 지금은 아침에 30분만 혼자 챙기면 되는데 그 시간에 이모님을 오라 가라 하기도 애매했다. 이모님은 하교 후에 몇 시간 정도 와주기로 한 상태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냥 아이 혼자 등교 준비해서 학교를 가게 하기로 결심했다. 남편이 기를 쓰고 반대할까 봐 직전까지 제대로 말도 안 해주고 그 주제를 그냥 회피했다. 애를 방치한다고 화를 낼게 뻔했다. 지금껏 몇 년 동안 등교 준비를 옆에서 매니저처럼 도와줬으니 이제는 혼자 할 때도 됐다고 판단했다. 여러 가지 증상으로 아직 학교 생활이 힘든 아이지만, 그래도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어차피 언젠가는 독립해야 하니까 이 정도는 시켜볼 수 있을 거라고 나 스스로 합리화했고 아이에게도 끊임없이 주지 시켰다.


처음 하루 이틀은 아침에 아이를 내버려 두고 혼자 나가는 게 세상 무너질 듯 힘들었다. 내가 차려놓은 밥을 한 술 두 술 떠먹는 아이와 작별 인사를 하고, 혼자 등교 잘하라고 파이팅 하고 나오는데 애도 울먹이고 나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날 입을 옷과 양말을 다 세팅해 두고, 이런저런 확인을 두 번 세 번 해놓고서도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이도 눈치챘는지 불안해하며 자꾸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였다. 그나마 애가 좀 일찍 일어나서 밥도 미리 다 먹이고 옷까지 입혀둔 상태에서 먼저 나오면 좀 나은데 피곤해서 늦게 일어난 날은 잠옷 바람으로 멍하게 앉아있는 애를 두고 먼저 나와야만 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라는 걸 알게 됐다. 처음 며칠만 힘들었지 삼일 사일 지나가니 아이도 나도 이런 아침 시간에 그럭저럭 적응하게 되었고, 신기한 건 처음처럼 애가 불쌍하고 짠하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이제 저도 차차 적응해야지, 언제까지 엄마 품에 있을 수는 없지 하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아이도 이제 슬슬 이 생활에 적응이 되었는지 아침에 내가 나갈 시간이 되면 엄마 이제 출근할 시간 아니냐고 걱정하듯 물어보는 것이었다. 새삼 놀라서, 엄마가 빨리 나갔으면 좋겠냐고 하니 그건 아니고 엄마 출근 늦을까 봐 하는 말이라고 했다. 이건 뭐지, 이렇게까지 성장했나 싶어서 새삼 놀라웠다.


그런데 아이의 질문 속에는 새까만 속셈이 따로 있었다. 그동안 엄마 없이 혼자 집에 있어본 적이 없는 아이는 집에 아무도 없이 혼자 뭘 해본 적도 없어서 처음에는 좀 당황한 듯했다. 그런데 며칠 혼자 있어보니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집에 엄마가 없으면 잔소리할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게임을 해도, 핸드폰을 봐도 아무도 터치를 하지 않으니 아이는 그야말로 꿀 같은 자유(?)를 맛보게 된 것이다.


혼자 아침 등교 준비를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는 아침마다 엄마 빨리 출근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고, 나는 눈치챘다. 내가 나가면 조용히 노트북을 켜서 하고 싶었던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게임, 미디어 중독이 걱정돼서 지금껏 늘 시간을 제한하고 옆에 끼고 있으면서 통제할 수 있었는데 내가 출근을 하게 되니 사실상 내 손을 벗어나는 틈이 발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게 못 견디게 힘들고 이러다 게임 중독으로 이어지면 어쩌지 너무 걱정이 됐는데 이제는 걱정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가 등교 시간을 어기면서까지 하지는 않고 있고 내가 허락한 게임 이외에 다른 걸 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내가 집에 있으면서 이 또한 다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내가 통제할 수 있을 시간에는 철저히 관리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제 시간 되면 가방 메고 집에 불 다 꺼졌는지 확인하고, 비 예보가 있는 날이면 혼자 우산까지 챙겨서 등교하는 아이를 보니 새삼 감개무량하다. 언제까지나 내가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다 챙겨줘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아주 조금은 안심을 해도 될 단계가 된 것 같아서 말이다.


나 없으면 도저히 안 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가 없기를 바라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이 또한 성장의 한 단계로 봐도 무방하지 싶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직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게 어쩌면 딱 알맞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도 스스로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내가 과하게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아이를 더 의존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약물복용 부작용과 심리정서 불안정으로 엄마의 손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였고, 지금도 눈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언제 돌발적인 문제가 터져 나올지 모르는 현실이다. 이제는 그런 것조차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지금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면 되는 것이다. 아이의 문제로 인해 내 일까지 포기하면서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 일은 가족만큼이나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중요한 삶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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