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 엄마는 일할 자격도 없을까?
몇 년 전 담임교사를 맡았을 적 이야기다. 당시 우리 반에는 조금 ‘성향’이 있는 아이가 있었다. 이건 발달문제가 느린 맘들 사이에서 통하는 표현인데 한마디로 자폐스펙트럼 선상에 있으면서 병원에서 진단만 안 받았지, 자폐적 성향을 지녀서 무언가에 몰입하는 경향이 심하고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좀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
지호(가명)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무언가 질문을 하면 바로 대답하기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얘는 뭐지? 싶었다. 아무리 쉬운 말로 이야기해도 뭔가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대화를 하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네, 아니오 정도였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라며 뭔가 겉도는듯한 대화가 이어졌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상호작용이 안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이러한 성향을 아는 같은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은 쟤 원래 좀 저래, 특이한 애야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등교시간은 철저히 지키는 편이고 모범생활 사나이였다. 나름 학원도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성적은 나빴다. 연산이나 영단어 암기 정도는 그런대로 해냈지만 국어는 형편없었고 사회, 과학도 힘들어했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조용히 있는 편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성향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하는 편이었다. 가끔 지호의 약점을 알고 악의적으로 놀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워낙 반응이 뜨뜻미지근하고 별 재미가 없으니 다행히 일회성에 그치곤 했다.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지호는 경증의 자폐스펙트럼이 아닐까 하고. 당시에 내 아이도 이제 막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받고 감통, 언어치료를 받는터라 나도 어설픈 감은 있었다.
학부모 상담기간이 되었다. 중1 부모님들은 아이가 상급학교에서 잘 적응하는지, 학습은 어떠한지 궁금해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대면상담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당연히 지호 어머님도 대면상담을 신청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전화상담이 신청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호 어머님이시죠. 지호 어렸을 적 성장이 어떠했는지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지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적은 있는지, 진단을 받았다면 진단명은 무엇인지, 발달치료는 어떻게 받아왔는지 등 담임에게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지호 어머님은 전화통화에 별로 집중을 못하시는 것 같았다. 이유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통화하느라 뭔가 자꾸 동료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주변이 시끌시끌해서 나와의 상담은 뒷전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근무 중이라 정신이 없네요..”
뭔가 지호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오갈 거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원래 좀 강박적인 성격이라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도 성실히 다니고 아무리 아파도 학원도 빠지지 않는 등 착하니까 잘 부탁드린다는 피상적인 이야기로 상담은 끝나고 말았다.
‘뭐지? 아들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없나?’
더 놀라운 건 어려서부터 따로 발달치료를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일시적으로 센터를 다닌 것 같긴 했지만 지속적인 치료가 이루어진 것 같지도 않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도 않아 보이는데 왜 이렇게 애 치료에는 무관심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지호 어머니는 지역에서 꽤 규모가 큰 병원 수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몇 번의 통화를 할 때마다 늘 어수선하고 정신없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와의 통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 병원은 평판도 좋고 그만큼 환자도 많아서 늘 북새통이라고 알고 있었다.
지호와 다른 형제까지 두 자녀를 키우면서 한 번도 쉬지 않고 근무한 듯했고 수간호사까지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좀 반감이 들었다. 본인도 의료인이면 아이에게 좀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 치료에 좀 집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호는 사춘기가 겹쳐오면서 감정 조절을 힘들어했고 학교에서 작은 사고도 있어서 아버님까지 불러서 특별 상담까지도 하게 되었다.
부모님 두 분 다 인상도 좋으셨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시는 것 같았다. 지호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괴로웠다며 어머니는 약간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같은 병원에 데려가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것에는 큰 의지가 없어 보였다.
모든 정보를 노출하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이미 어려서 상당한 치료를 받아서 이 정도 진전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호가 학교 생활을 잘할지에 대한 약간의 걱정, 불안과 함께 어느덧 일 년은 금세 지나갔다. 지호 말고도 더 심각한 문제로 신경 써야 할 학생들도 많았고 정신없이 지나간 한 해였다.
2년 후에 중3이 되어 만난 지호는 1학년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성장해 있었다. 개별상담을 할 때는 뭔가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앞으로 진로를 어느 쪽으로 가고 싶냐는 내 질문에는 “뭐든 상관없어요. 돈만 잘 벌는 게 최고죠 뭐.”라며 평범한 사춘기 남학생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지호를 보며 언제 이렇게 컸나 싶고 기특하기도 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2년 동안 언제 또 성장했는지 지호의 의사소통 능력도 부쩍 좋아졌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한두 명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인식 능력도 생겨서 자기가 잘하는 과목과 노력해도 잘 안 되는 부족한 과목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일반고등학교에 가도 어렵지 않게 적응할 것 같았다.
따로 치료를 받지 않아도 학교, 학원 다니면서 또래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아질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3학년이 되고 우연히 만나게 된 지호 엄마는 여전히 일로 바빠 보이셨다.
지호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가 좀 남다르다는 것을 몰랐을 것도 아니고 자식은 자식대로 신경 쓰면서 육아, 살림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참 고생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쉬고 있는 요즘 한 번씩 지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아마 지호엄마에게는 직장이 도피처이자 쉼터가 아니었을까. 왜 아이에 대한 걱정이 없었을까. 알고 있지만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육아를 하고 일을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 분을 내가 함부로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다. 지호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부모의 더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데 좀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웠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판단을 했나 싶다.
내 생각대로 지호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아이만 바라보고 치료에만 열렬히 매진했다면 아이가 굉장히 달라져있었을까?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지만, 타고난 성향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좋아질 가능성, 예후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지호 엄마에게는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 일을 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새삼 존경스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요즘 부쩍 지호엄마 생각이 자꾸 난다.
내가 이렇게 아이에게 붙어있으면서 밀착케어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한 번씩 밀려온다. 내 노력과 헌신, 그리고 희생으로 아이가 엄청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보잘것 없을지라도 사회에서의 인정받는 내 경력은 이대로 단절되어서 결국 나는 죽도 박도 아닌 인생으로 마감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온다.
불안하고 걱정이 많을 때는 때로 아무 생각 없이 매진할 수 있는 고된 노동, 일이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여유 시간에 생각이 많아지는 만큼 비례해서 걱정도 늘어나는게 사실이다. 결혼하고 애 딸린 여자로서 직장생활을 한다는게 보통일이 아닌건 알지만 그럴수록 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은 힘들지언정 정신 건강에는 더 유익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선택을 하든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지호엄마의 선택을 이제는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