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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Sep 01. 2024

급식 먹으려고 일하러 나갑니다

한 끼를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의 의미

집에서 살림하면서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점심 급식이다.

아침, 저녁밥이야 가족들 챙겨주면서 옆에서 같이 남은 음식이라도 앉아 먹을 수 있는데 점심은 정말 챙겨 먹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오롯이 나 혼자만을 위해서, 나 혼자 먹자고 점심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이 안 그래도 널리고 널린 집안일에 큰 짐 하나가 추가되는 것 같았다. 라면을 하나 끓여도 냄비와 그릇을 설거지해야 하니 그것조차 싫었다. 대충 빵으로 때운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건강을 생각해야 할 나이라 매일 대충 빵쪼가리로 때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 귀찮고 번거롭더다도 야채샐러드나 채소찜이라도 간단히 만들어서 밥을 먹는 게 오후에 배도 덜 고프고 훨씬 몸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웬만하면 점심을 제대로 챙겨 먹었다. 밥 차려놓고 혼자 유튜브 영상 보며 먹는 시간도 나름대로 힐링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달이지 점점 물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이 몹시 그리워졌다. 일할 때는 급식이라도 먹을 수 있었는데. 나름 세 가지 이상 반찬에 국까지 제공되는 급식이 먹고 싶어졌다. 괜히 아이 학교 급식 메뉴를 보면서 허한 마음을 채우기도 했다.


동네에 매일같이 만나서 같이 밥을 먹을 만큼 친한 사람도 없었다. 가끔 만나는 동네엄마나 지인들은 있었지만 각자의 이유로 바쁘기도 했고, 상대방이 먼저 강하게 제안하지 않는 이상 따로 만나서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조금 남다른 아이를 키우는 탓에 평범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의 소통이 힘에 겨운 순간들이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과 일상의 에피소드와 사교육 세계 이야기를 듣는 게 불편했다.


그나마 마음 붙이고 있는 센터 엄마들도 일하거나 각자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점심을 만나서 먹으려면 아무래도 돈을 써야 하는데 그조차도 아깝기는 했다. 


돈도 못 벌고 집에 있는 주제에 점심밥을 사 먹는 데에 돈을 쓰다니, 하는 자기 비하적인 마음이 슬며시 찾아왔다. 내가 놀려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남편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데도 스스로가 그렇게 초라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내 점심은 최대한 돈을 쓰지 않는 범위에서,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히 차려 먹자는 게 신조였다. 복직을 신청해 두고 가슴 설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제 내 점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전에 일할 때는 왜 몰랐을까.

급식이 이토록 소중하다는 것을.

남이 차려준 밥 한 끼가 이렇게나 간절하다는 것을.


몇 년 만에 다시 점심 급식을 먹게 된 날, 나는 감개무량했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도 찍어서 아이에게 보냈다. 이거 오늘 엄마 점심 급식이야, 하면서.


전에는 그날 메뉴에 따라서 동료들과 투정도 부렸던 것 같은데, 이제는 뭐가 나오든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학생들은 무상급식인데 왜 우리는 점심값을 따로 지불해야 하냐고 억울해하기도 했는데 그런 마음도 싹 사라졌다.


누군가 해놓은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무척 행복하다. 점심 먹으려고 오전에 더 힘을 내서 일을 한다. 매일같이 조리실에서 밥 해주시는 조리사님들께도 존경의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매일 점심밥을 만들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매일 급식을 먹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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