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워킹맘이 된 사연
'직장 동료'라는 말은 다양한 어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브런치를 포함한 여타 다른 책이나 글들을 보면 보통은 좀 더 부정적인 뉘앙스에 가깝다고 느낀다. 직장 동료라 함은 기본적으로 서로 경쟁관계에 있을 수도 있고, 상하관계에 있을 수도 있고 사내정치를 발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관계일 수도 있고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냥 서로 비호감이고 안 맞아서 힘들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직장동료를 주제로 한 썰도 많고 글도 넘쳐나는 것 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몇 년간 애 때문에 반강제로 휴직하고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어 보니, 이런 직장동료조차도 그리워질 때가 있더군요.
생각보다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딱히 취미도 아닌 나는 직장생활을 멈추고 집에 있다 보니 철저히 고립되어 혼자 있는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다. 처음에는 이 자유를 만끽했다. 보기 싫은 얼굴 안 봐도 되고, 눈치 안 봐도 되고, 재미없는 농담에 웃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비위 맞추지 않아도 되니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쾌감 비슷한 감정도 들었다.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차츰 흐르니 결국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귀결되는 것을 느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보면 "사람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절히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내 편이 되어주면서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서로에게 치대는 사이가 아니 관계를 맺고 싶다는 그 말이 마음속에 깊이 와닿았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면 좋듯 싫듯 여러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게 싫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은근히 그런 관계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전에는 같은 연구실에 근무하면서 친해진 사람들도 참 많은데 오랜 시간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서서히 멀어졌다. 솔직히 현직에 있지 않으면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아무리 친했던 사이라고 해도 따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직장 동료가 직장 이야기 아니고 만나서 할 말이 뭐 얼마나 있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같은 직장에 몸을 담고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다들 각자 추구하는 삶의 형태도 다르고 개성도 제각각이라서 조금은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 와중에 느끼는 점도 많다. 저렇게 살고 싶다, 본받고 싶다,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네, 하는 생각도 들고 절대 나이 먹어서도 저런 사람은 되지 말자, 저 사람은 최대한 피해야지,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경계하고 조심하게 만드는 동료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직장동료라는 사람들을 접하고 만나서 함께 힘을 합쳐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일을 하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고 때론 상처받을 때도 있다.
너무 오랫동안 집에 있다 보니 직장동료와의 부정적인 경험조차 그리워졌다. 그 사람 진짜 또라이 아니냐며 뒷담화도 해보고 싶고, 같이 상급자 욕도 실컷 하면서 전우애를 다져보고 싶어졌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니 그 어느 것도 할 수 있는 환경도 상황도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관계가 매우 단조로워진다고나 할까.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적극적으로 바깥활동을 하면서 취미든 특기든 살려 동호회도 들고 각종 모임에도 나서야 하는데 나는 태생이 수동적이라 그런지 그럴 의지도 에너지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만 새삼 알게 됐다.
문득 사람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면 정기적으로 만날 친구도 지인도 현저히 줄어든다는 걸 몸소 체감했다. 그래서 더 일하고 싶어졌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이렇게나 큰 안정감을 주는 건지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이렇게 또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