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워킹맘이 된 사연
분명히 남편은 내가 다시 워킹맘이 되는 것을 반대했었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내가 일해봤자 받는 월급은 뻔히 박봉일 것이고 그로 인해 아이가 제대로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아 방치된다는 둥 온갖 말로 나를 설득도 했다가 협박 비슷하게 하기도 했던 남편이다.
이야기 꺼내봤자 매일 같은 말만 반복되고 평행선으로 귀결되는 논쟁이 되고 마니 나중에는 아예 말조차 꺼내지도 않았다. 대신 모든 복직 준비를 나 혼자서 몰래 조용히 하고 다녔다. 업무 인수인계받으러 갈 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나 출근 날짜와 아이 방학이 겹쳐 아이를 맡길 곳을 고민하고 알아볼 때에도 남편에게 일절 말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책을 찾아내서 부탁하고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했다.
복직 직전까지도 내 출근 이야기만 나오면 남편은 한숨부터 쉬면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처음에는 화도 나고 답답했는데 이상하게 나중에는 내가 눈치가 보여서 비위를 맞춰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럼 이번에 한 번 해보고 애가 힘들어하고 적응 못 하면 바로 그만둬."
본인이 내 거취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라도 되는냥 나에게 엄명을 내렸다. 자기가 백번 양보해서 일하는 걸 허할 테니 한 번 해보고 정 힘들면 그만두어도 된다는 식의 배려 아닌 배려를 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복직 이후로 반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의외로 아이는 나 없이도 잘 적응했다. 가장 걱정했던 건 혼자 준비해야 하는 아침 등교 시간이었는데, 의외로 혼자서도 담담히 잘 해냈다. 몇 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큰 일은 아니었고 하교 후에도 별 어려움 없이 할 일을 해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어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또래관계는 힘들고, 쉬는 시간에는 혼자 그림 그리는 시간이 대부분인 것 같고, 혼자 꽂힌 것에 과하게 몰입해서 계속 그 이야기만 한다. 아이의 증상은 거의 그대로지만, 그것과 별개로 엄마인 나의 도움 없이도 등교를 하고, 학원을 가고, 한 시간 정도는 혼자 집에 있는 정도의 일상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몰랐다. 매 순간 내가 매니저가 되어 전담케어 했기 때문에, 사실은 애가 스스로 독립적으로 이런 일상의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상황과 환경이 변하니 아이도 그냥 그것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듯하다.
이렇게 의외로 아이도 잘 해내주고 있고, 나는 나대로 남편에게 최대한 일이 힘들다는 티도 내지 않고 묵묵하게 직장일과 살림을 해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생각보다 우리 가족의 일상은 별 일 없이 굴러가게 되었다. 애가 힘들까 봐 걱정된다고 예민하게 굴던 남편도 별로 할 말이 없어졌는지 점점 내가 워킹맘 생활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낌새였다.
그 와중에 복직 후 첫 월급이 나온 날,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드디어 월급이 나왔다고, 금액도 정확히 덧붙여서 말해주었다.
박봉이어도 그전에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상태니 아주 적은 돈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내 월급이 많았다고 느꼈던지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돈 잘 버는 능력 있는 아내였네?" 하는 것이다.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일하지 말라고, 네가 버는 돈 필요 없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갑자기 돈 앞에서 약해진 모습이었달까. 그러면서 이번 달에 나가야 할 지출 중 일부를 내가 좀 부담하는 게 어떻냐고 한다. 명절이 겹쳐서 생각보다 출혈이 큰 달이었다. 첫 월급 받자마자 큼지막한 지출 항목을 정해주는 남편에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 남자가 하는 말만 그대로 믿고, 그냥 남편의 말에 동의하고 설득당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보나마나 평생 후회했겠지.
남편의 태도가 이렇게 180도 달라질 줄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역시 사람은 남의 말을 들으면 안 되고, 의지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남편이나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게 가장 우선이다. 내 뜻대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워킹맘의 삶은 꿈꿔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뭐가 됐든 다 그냥 내 뜻대로 결정하고 살아야겠다.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했다면 내 일은 내가 결정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옳은 길이라는 걸, 이번 복직 과정에서 깊이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