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워킹맘이 된 사연
삶이 존엄해지려면 꼭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돈과 철학이다.
돈이 없으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 아무리 나만의 고귀한 철학이 있어도 지켜낼 수가 없다.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고, 돈을 가진 사람에 의해 내 삶이 결정된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굉장히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낸 나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돈으로 어느 정도의 행복은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본다. 백퍼센트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행복의 크기가 백이라고 한다면 돈은 80퍼센트 이상 정도의 행복감은 가져다준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뿐이다.
타고난 금수저도 아니고, 불로소득이 어디서 뚝딱 떨어지는 건물주나 견실한 사업체 집안도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따지고 보면 철저히 내 노동을 투입해서 돈을 벌어야하는 평범하고 전형적인 노동자계층이다.
불로소득 따위 없기도 하고, 요즘 보면 유튜브나 인터넷에 부동산이나 주식에 재테크 잘해서 노동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흔한 것 같은데 나에게는 먼 이야기다.
부동산 공부 좀 해보겠다고 책도 몇 권 읽었지만 도저히 나의 영역이 아니었고, 재테크에 오롯이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도 없거니와 중요한건 관심과 흥미가 도통 생겨나지 않았따. 이번 생에서는 재테크로 성공하기는 영힘들 것 같다.
몇 달간의 치열한 고민 끝에 복직을 했다. 첫 몇 주간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다.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한 줄기 빛처럼 최근 몇 년간 빈털터리같이 느껴지던 통장에 '월급'이란게 찍혔다.
전에는 월급이 들어와도 당연한거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번만큼은 참 남다르게 느껴졌다. 감회가 새로웠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능력으로 온전히 내 힘으로 스스로 일해서 작지만 소중한 월급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고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집에서 아픈 아이를 돌보고 남편 내조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뻥 뚫린듯 허전하고 늘 나를 괴롭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한 감정이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없다는 무능감 아니었을까 싶다.
경제적 자유를 주창하는 인플루언서들은 하루 빨리 노예를 벗어나야 한다고 외쳐댄다. 일을 하지 않고도 근로소득 없이도 풍족하게 살 수 있을만큼 투자를 하고 또 재투자를 해서 자기네들처럼 멋지게 살아야한다고 주창한다. 한 때는 그런 외침에 조금 흔들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주제 파악을 했다. 나는 그럴 능력도 없고 그 분야에 재능도 없으며 그래서 기꺼이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받는 월급에 만족하면서 살아야겠다는걸 깨달았다.
월급이 없어도, 내가 일하지 않아도 살아질줄 알았다. 남편에게 의지하면서 아이 치료에 매진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일하게 된걸 정말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고된 업무로 인해 체력의 한계도 느끼고 적응하느라 힘이 들지만, 우선 내게 일을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내가 해결해야할 일, 내가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만 하는 공식적인 업무가 있다는 사실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유능감과 만족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정말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동네 사람들 말고 만날 직장 동료가 있다는게, 매일 아침 출근해야할 직장이 있다는게 이토록 삶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는건지 잘 몰랐다. 이제 알아간다. 그 무엇보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감사하다.
복직 후 첫 월급을 받고 나는 감격했다. 몇 년만에 받아보는 월급에 눈물이 앞을 가릴뻔했다. 돈이 좋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격한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둘 다 해당되는것 같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월급노예로 기꺼이 이 한 몸 바쳐 노동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