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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Oct 19. 2020

이타적 개인주의 vs 이기적 집단주의

입사한지 갓 몇 달이 되었을 무렵, 팀원들 목소리만 들어도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졌었다. 사람에게 확 질렸던 것일까.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져볼까 싶어 서점에 간 날 그 이유를 찾았다. 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문유석 판사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에서.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 <개인주의자 선언> 中   



방송국에 입사한 이후 가장 크게 놀랐던 건 식사를 각자 자유롭게 하는 거였다. 팀원들이 모두 모이는 건 어쩌다 점심 회식을 하는 날 뿐이었고, 구내식당에 다 같이 가는 일 또한 생각 외로 흔치 않았다. 식사 때만큼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는 뜻인가, 개인 시간을 존중해주는 점이 고맙긴 했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해도 되는 걸까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팀 선배는 중요한 업무 연락이 아니면 팀원들의 메신저도 잘 확인을 하지 않아 카톡 창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300개씩 쌓여 있었다. 점심시간에 연락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업무 외적인 수다를 떠는 일도 잘 없었다. 이상했다. 이쯤이면 서로에게 원수진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개인주의적인 게 편하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닐까 싶었다. 함께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과 대단한 친목이나 동지애를 바랐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최소한의 인간미는 보여줄 수 있지 않나. 뭔가 분명 잘못됐다 생각하며 몇 달을 보내다가. 정반대의 성향인 선임을 보며 사수 선배의 태도가 얼마나 이타적이었는지를 절감했다.       


- ‘눈치 보고 선배가 바쁘면 퇴근을 말았어야지’      

- '쟤네는 왜 둘이 같이 퇴근을 해? 세트야?'


전날 임원 보고용 데이터 작업과 술자리로 분주했다며 선임이 훈수를 놓았다. 그는 바빠도 다 같이 바쁘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식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본인의 친목 도모 자리에 젊은 후배 하나 정도는 소개하는 것이 도리이며, 술 못한다고 빼는 후배의 투정은 웃어넘기며 부어라 마셔라 다 같이 즐기는 게 덕목이라 생각하는 아주 이기적인 집단주의자. 뭐든 다 같이 하려드는 것이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선배와 단둘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덕담이랍시고 주고받은 말이 있다. 그게 정말 서로를 위한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      


- ‘되게 무난한 거 같아요.’      


무난한 사람, 어디에 갖다놔도 튀지 않는 사람.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성격. 다 겉보기엔 좋은 말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집단과 조직에 어울리는 성향을 가진 건 분명 큰 장점이다. 하지만 내가 속한 집단에 충실한 것이 누군가에게 강요나 억압으로 다가온다면, 그건 집단주의적인 걸 넘어서 이기적인 거다. 차라리 무미건조하고 냉정해 보이는 <미생>의 오 대리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최고의 선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한때는 개인주의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노력했다. ‘개인주의’라는 말 자체가 당신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만 같아서. 사람들과 융화되고 조직에 잘 적응하려면 개인주의적인 습성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주의자가 얼마나 이타적일 수 있는지를 느낀다. 


남이 하기 싫어하는 걸 같이 하자고 하지 않는 것, 그것도 일종의 배려이니까.      


그러니 무난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애쓰지 말자. 

무난하기 위해 무리하는 건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다. 

이기적인 집단주의자들을 맞춰주려다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이기심을 발휘하게 될지 모른다.      

집단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개인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법을 익혀 보자. 

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에서부터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끼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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