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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빗 Feb 28. 2020

꼰대의 세계를 그대로 존중할 것

<90년대생이 온다> 라는 책을 상사가 꽤나 감명 깊게 읽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회사 식구들 모두가 모여있는 자리에서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이 많다며 말문을 열었다. 90년대생들은 ‘회사에 헌신하다가는 헌신짝 된다’고 생각한다는데, 그렇게 일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앞으로 이 회사와 이 나라는 미래가 없는 것 아니냐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오랜 시간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자신에 대한 충성’이라고 믿고 살아온 분께는 같은 책도 180도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한 번은 마흔을 앞둔 여자 상사, 그리고 50대 부장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같이한 적이 있었다. 한 시간이 넘는 식사 시간 동안 부장님 말씀의 시작과 끝은 한결같았다. 그 놈의 ‘결혼 좀 해라’, 옆에서 듣다가 그만 좀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상사 분이 너무도 유쾌하게 받아주시는 바람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상사 분이 넌지시 장난스레 물었다. ‘저 결혼식 하면 와서 축의금 주시는 거죠?’하고. 그리고 끝내 부장님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날 식당에서 나오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역시, 나이는 무시할 수 없구나.’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지만, 사람이 그 변화의 속도를 다 따라잡지 못해서 일까?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정녕 21세기에 살고 있는 게 맞는건지 의문이 들 때가 참 많다. 요즘 시대에 부모도 아닌 상사가 결혼을 강요하다니, 언제부터 회사에 대한 충성이 이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 했던가, 한 마디 한 마디에 토를 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구시대적이다’ ‘구한말에서 온 것 같다’ 등 어른들을 디스하는 표현들도 가지각색이지만 뒷담화를 하면 내 입만 아프고, 듣기 싫다고 그들을 아예 생판 무시하기엔 이 사회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 전 만난 여자 상사의 노련하면서도 유연한 대화법이 참 대단해 보였다. 


- ‘그래,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니다’ 

세대 차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세대 차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도 넘게 일찍 와서는 온종일 인터넷 기사만 보면서, 그걸 회사에 대한 열정이라고 착각하고 지내는 가까운 어른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이날 이때껏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직장에서 보낸 분께는 ‘워라밸’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결국 본인 스스로일 테니, 저 분의 눈엔 칼같이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젊은 사원들이 얼마나 이해 불가일까 싶더라. 어느 누가 옳고 그름을 가리기가 참 어려운 게 세대간의 차이인 것 같다. 


한동안 젊은 사원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고 다니는 어른들이 참 싫었다. 정말 이러다 귀에 피가 나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가도, 인사발령 시즌이 지나고서 그 마음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최근 대대적인 인사 변동이 생기면서 젊은 과장급 직원들이 팀장으로 승진을 하고, 비교적 연세가 있던 분들이 주요 보직에서 밀려나자 은근히 심적인 타격을 받은 분들이 꽤 많은 듯 했다. 본인보다 나이 어린 직원들이 상사가 되는 걸 보면서 급격히 말이 없어지신 어른들을 보면서, 우리네 부모님을 떠올렸다. 조직 생활이 더럽고 치사하고 답답해도 꿋꿋이 버텨내면서 밥벌이를 해오신 우리의 아버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어서. 어른들의 얼굴에서 자녀를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엿보면서부터 난 그들을 꼰대라 욕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들의 이야기를 트렌디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대표적인 작품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가 있다.

꼰대들의 이야기를 트렌디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대표적인 작품으로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가 있다. 자식한테 미안하다 말하는 법을 모르는 아버지, 자식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 요양 병원 행을 고집하는 어머니 등, 시대의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내어 많은 공감을 얻었던 작품이다. 그래, 그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지식한 면들이 많고, 시대에 걸맞지 않은 고리타분한 잔소리를 하는 어른들이 ‘꼰대’라 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런데 우리는 과연 꼰대들의 세계와 그들이 살아온 세월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했던 적이 있던가?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가정환경이 다르듯, 무시할 수 없는 게 세월의 흐름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꼰대’ 마인드를 가진 어른들도 태생부터 ‘꼰대’는 아니었을 거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과 환경이 녹록치 않았기에, 팍팍한 현실 속에서 잡초처럼 버텨오며 살아왔기에 지금의 모습이 빚어진 것일 테니. 그러니 우리는 꼰대들을 욕하면서도 내가 저 사람들 나이가 되면 꼰대가 되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원래 ‘욕하면서 배운다’고, 자신은 예외일 거라 생각하는 게 가장 위험한 발상이라 더라. 


꼰대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주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남을 욕하고 비난하기는 참 쉽고,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봐주기는 참 어렵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해주는 것보단 무시하는 게 편하다는 이유로 등지고 사는 이기적인 개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꼰대들의 세계를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을 반면교사 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만 하는 건 ‘교만’으로 치닫는 길 일 수 있으니. 차츰차츰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다 보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날도 언젠간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또 한번 세월의 흐름을 절감할 것 같다. 

- ‘아, 나도 나이를 먹는 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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