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셨었다. 서울 아차산 인근 골목길에서 차에 살짝 받혀서 넘어졌는데 찰과상만 입은 줄 알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 MRI를 찍어보니 미세 골절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토요일 아침마다 등산을 가시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사고의 경위를 듣다 보니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모여 등산이 아니라도 같이 점심도 먹고 카페에서 담소도 나누시고 동네 목욕탕에 단체로 사우나도 가시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 여든에 자식을 열을 낳아도 대신할 수 없는 친구의 소중함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버지는 고향인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상경하여 자리 잡은 친구들이 많아서 10년 전에는 매주 열명 넘게 모임에 나오셨다고 했다. 그러나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계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 얘길 처음 들었을 때 어르신들의 결속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절친했던 동기 한 둘을 제외하고는 교류가 거의 끊긴 상태였었다. 서울 서쪽의 끝 화곡동에서 분당으로 이주한 이후로 거리가 멀어진 것도 이유였지만 바쁜 젊은 시절을 보내며 새로운 인연들을 만드느라 그럴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 시대와 비교한다면 입시경쟁에 혈안이 되어 여러 친구들과 두루 우정을 다질 기회가 적었던 것도 이유일 수 있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 동기중 누군가가 나서서 다시 모임이 생겨나고 연락도 다시 닿게 되었는데 고맙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도 70이 되면 결국 모두 산으로 모이게 될까?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10년 혹은 20년, 30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80년대 중반에 중학교를 졸업을 했던 나는 15년이 지나 나이 서른이 되어 그때의 동창들과 다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세기가 바뀌고 인터넷이 열리면서 당시 유행했던 '아이러브 스쿨'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이었는데, 당시 나이 서른 즈음 사회 초년생으로 서툴고 불편하기만 했던 틀속에 갇혀있다가 편하게 말도 놓고 숨통을 터주는 소꿉친구들이 이렇게 잘 커서 나타나다니.. 감동이었다.
매주 누구는 매일 보다시피 하고 때마침 온 국민의 축제였던 2002년 월드컵을 같이 열광하면서 뜨거운 청춘을 지났었다. 성인이 되기 전 모습, 아직 미숙하기만 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다시 만났을 때의 그 신기함 대단함이 모두의 표정에 배어있던 사진들은 소중한 추억이 되어 아직 남아있다. 문득 그때 인터넷과 sns가 태동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사진들은 마치 백투 더 퓨처에서 과거의 변화로 현재의 사진이 사라지듯 없어지는.. 거겠지? 아... 싸이월드의 허망함이여..
문명의 발달로 우린 아버지 세대와 비한다면 친구들과의 교류가 더없이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늘 명문을 내세우는 끈끈하고도 집단적인 동창회의 활동은 과거보다 못할진 몰라도 개인 통신 수단을 넘어선 각종 sns, 단톡방 등등.. 뜻만 있다면 연결이 안 될 이유가 없다. 앞으로 20년 전 아이러브 스쿨에서 처럼 우리가 또 그럴 일이 있을까? 70년을 잇는 아버지의 모임이 더 대단해 보인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들들에게 자주 하는 잔소리 중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들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아들 셋이 매일 집에서 비글들처럼 뒹굴며 노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밖에 나가서 다른 애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늘 독려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이다. 요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모두 학원에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심심한 것이삶에서 제일 힘든 난관이었던 나는 외로움도 잘 타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성적인 데다가 고집도 센 바람에 절친 하나 없이 초등학교 시절이 다 지나갈 판이었는데 6학년 같은 반에서 만난 한 친구덕에 나는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겨우 배웠던 거 같다. 그 후로 늘 주위의 항상 단짝 같은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단짝친구가 시기마다 바뀌는 것은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인가?' 하고 고민해 본 적 있다. 물론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뀔 때마다 물리적으로 멀어져서 어쩔 수 없었기도 하겠지만 그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랑은 호르몬의 화학작용이라 유효기간이 있다고 하는데 우정도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만날 수록 사람의 관계가 점점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 것일까?
친한 사이란 과연무엇이었을까?
주기적으로 모여함께 즐기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더라도 용건 없이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나와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들 중엔 어린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고 만나서 어떤 이야기이든나누던 사이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 수록이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서인지 주위와 늘 비교하며 체면에 무게를 두어서인지특히 한국 남자들 사이엔 대화가 점점 줄어든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속을 털어놓는 것을 조금 줄였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갈등과 번민으로 점철된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공감의 방이 다 차버리면그다음부터는누구나 달갑지 않게 된다. 감정 노동이며 희생이 된다.아무리 공감력이 뛰어나다 해도 결국은 남의 일이다.친밀은 가까울수록 좋은 게 아니었다. 지속적인 관계를 원한다면 서로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현명하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이 세상에 공감받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어쩌면 그건 현명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타고난 이타적인 성품의 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 이타적이라는 것은 누굴 일방 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는행위라기 보단 스스로 보이는 태도에서 더 차이가 난다.
그저 내가 힘들다고 나의 슬픔과 스트레스를 일방적으로 남에게 털어놓지않는다는 것. 힘들어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할 수 있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이타적인 사람들의 면모이다.그러나 그들도 분명 한계가 있다.
좋은 사람과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시소가 오르내리듯이 상대와 공감의 균형을 맞추면서 지내야 한다.그것에 실패하여 주위에 친밀한 사이가 남아있지 않다면 당신은 돈을 내고 의사에게 겨우 속을 털어놔야 건강을유지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