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싫어
나는 글 쓰기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취미가 있지만 그중 어디 가서 굳이 자랑하고 싶지 않은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골프이다. 얼마 전 회사 본부 내에 각자 취미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지도 않는 인라인은 아내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다루었으나 골프는 내용에 넣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골프라는 운동이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운동의 효과는 적고 비용은 많이 드는 비싼 놀이에 가까워 보이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이유 그리고 좀 더 대중 운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생각과 경험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한참 그림을 그릴 때 함께 올렸던 글이다. https://brunch.co.kr/@tallguy/90
위 사진처럼 사우디 '사막'에서 골프를 시작하게 된 나는 동기부터가 남 다르긴 했다. 그러나 본국으로 무사 귀환한 이후에도 끊을 수 없던 이 골프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비싼 그린피뿐 아니라 승부와 내기가 난무하는 골프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꾸준한 연습과 실전 감각을 계속 유지해야 하지만 용돈을 모아 한 달에 한번 겨우 나갈까 말까 하는 필드 경험으로는 뚜렷한 실력향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100돌이로 평생 사느니 안 하고 말지..
그런데 한국에 오니 스크린 골프라는 게 있었다. 필드 라운딩에는 한참 부족해도 그럭저럭 게임 감각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여름엔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니 골프를 할 줄 모르는 아이들과 아내까지 우르르 데리고 가서 피서를 하기에도 좋았다.
그리고 하늘의 뜻이었는지 곧 제주도에 2년이나 파견을 나가게 되는 행운?을 맞았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 비싼 취미를 이어가는 대신 처절한 헝그리 골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당시 제주도는 골프장 그린피와 연습장 비용 모두 저렴하여 골퍼들의 천국이라고 할만했다. 제주도민이 되어야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기에 나는 아예 호적을 파서 제주도 주소로 옮기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더 큰 불이익이 될 줄은...ㅜㅠ 퇴근 후 가족도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는 잘 됐다 싶어 거의 매일 골프 연습을 했는데 레슨은커녕 1회에 만원 하는 인도어 골프연습장 비용도 아끼기 위해 나는 다른 연습 방법도 생각해 냈다.
당시 머물던 복층 오피스텔의 높은 천장고를 활용 원룸 바닥에 저런 인조 매트를 하나 깔고는 매일 빈 스윙 연습을 했다. 눈앞에는 TV를 켜놓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스윙 연습을 하면 시간이 정말 잘 갔다. 그때 열심히 보던 프로그램 중에 '냉장고를 부탁해'와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기억이 난다.
골프를 알뜰하게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비싼 골프채를 중고로 구입해서 쓰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언을 당시 내 실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급자용으로 구했는데 선택의 기준을 무조건 가격으로 하다 보니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중고 시장에선 쉬운 채 일 수록 수요가 많다 보니 유명브랜드의 예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머슬백 아이언이 저렴하게 거래되었던 것.
심지어 드라이버는 살짝 하자가 있는 제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비싼 골프를 하는 사람 중에 누가 저런 모양 빠지는 골프채를 들고 다니겠냐 하겠지만 나 같은 애가 그랬다. 아니 그럼 조금 상처가 났다고 저걸 버린단 말이야?
슬슬 나의 병이 골프에도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아래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버리기 싫어' 시리즈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렇게 까지 했던 건 꼭 돈 때문만 만은 아니다. 그러나 골프 가죽 장갑은 꼭 저 한 군데만 구멍이 나서 마음을 아프게 하곤 했다. 어떻게 저 구멍 하나 때문에 멀쩡한 장갑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저렇게 한 부위만 계속 구멍이 나는 건 일단 골프 그립을 제대로 못 쥐어서 그렇다.. 고 한다. ㅜㅠ
무엇보다 제주도 파견시절 천혜의 환경에서 누릴 수 있던 최고의 혜택은 평일 새벽 퍼블릭 코스에서 즐길 수 있던 라운딩이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ㄴ 골프장에는 6홀짜리 퍼블릭 코스가 있는데 당시 10장 묶음 쿠폰을 10만 원에 구입하면 6홀 라운딩을 회당 1만 원에 도는 셈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차를 몰고 나서서 7시 전에 티오프를 하면 한 시간 반 정도 천천히 걸으며 6홀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샤워를 해도 10분 거리의 현장 사무실에 넉넉히 도착할 수 있던 정말 나이스! 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앞에 링크했던 포스팅이 2015년에 올린 것인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골프라는 운동은 특정 부류 그러니까 최소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정도는 돼야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던 거 같다. 그러나 이후 코로나를 거치며 요즘은 젊은 MZ 세대까지 즐기는 대중 운동의 이미지가 생겨난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의 선견 지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흠흠..
하지만 우리나라에 여전히 만연한 기업의 접대 문화와 그로 인해 특히 주말엔 엄두도 안나는 비싼 그린피. 또 그만큼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연습과 하루가 꼬박 소요되는 라운딩 시간 등으로 커져가는 부담을 여전히 떨쳐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 즐거움도 점점 반감되어 가는 거 같아서 나도 회사를 그만두게 될 즈음에는 결국 이 취미는 폐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기도 한다. 뭐 안 해도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