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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표식

팔자주름

by 다자녀 디자이너

수염을 기른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중간중간 사정이 생겨 면도를 하고 지낸 적도 있었으나 청년의 시기를 지나 중년에 다다랐을 무렵부터 나는 수염을 기르며 살았다. 콧수염뿐 아니라 턱에서 구레나룻까지 이어지는 그 시절 한국 남성들에게 보기 드문 털족이 되었었다.


계기는 중동 파견이었다. 6개월 남짓 생활하며 그들과 섞여 지내다가 어느 날 수염이 더부룩한 로칼 직원의 나이가 어이없이 젊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제 겨우 20살이 넘은 그 친구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나보다 더 원숙하고 중후한 이미지라니 그러고 보니 그 동네 성인 남성들은 모두 수염을 기르는데 외국인이었던 나에겐 그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수염이었다.


나도 한번 해볼까?

나의 조상중에 분명 서쪽 어디선가 오신 분이 계셨는지 나 역시 그들 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수북하게 턱수염이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머물렀던 컴파운드 (저층 형의 여러 복지 시설을 갖춘 레지던스 호텔 같은 곳) 내에는 인도 혹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직원들이 많았는데 그 들이 운영하는 바버샵 Barber shop에 가면 이발사가 능숙하게 수염까지 다듬어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사우디 이발소에서 다듬은 수염의 모습(좌)와 복귀후(우) 박친호 아님 ㅋ 휴일이나 주말엔 더 수북..


수염을 기른 나의 모습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는데 식구들은 그 까칠함에 움찔하면서도 재미있어하는 거 같았고 친구나 동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 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스스로 만족스러웠었다. 문제는 직장생활로 대표되는 한국의 서열 문화였었는데 요즘과 달리 그런 털보 행색이 익숙지 않은 윗사람들 중엔 불편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있어 두 번 정도 기른 수염을 싹 밀어버려야 했다.


처음은 바로 직장 상사 때문이었다. 중동 파견생활에서 돌아와 2년 해외 영업팀에 있었는데 너는 영업을 하겠다는 놈이 그런 수염을 기르냐며 한 소릴 듣고 밀게 되었다. 딱 마흔이 됐을 때였다. 그땐 수염을 기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수염이 사라져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실무팀으로 복귀했는데 이번엔 오히려 왜 그 부러운 수염을 없앴냐는 친한 입사 동기의 권유로 나의 탐스럽던 수염도 다시 회사 생활에 복귀하게 되었다.


잠깐 맨얼굴로 돌아갔을때의 모습. 연예인 친구덕에 한 예능에 출연했었다.


두 번째는 약 2~3년 전 발주처의 수장인 조합장 때문이었다.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초면에 '당신은 여기 다 70이 넘은 어른들만 있는 자리에 수염을 기르고 오냐'며 노골적으로 컴플레인을 하는 바람에 혹시라도 회사에 불익이 갈까 봐 바로 면도를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약속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면도의 결과가 달랐다. 지난 15년 가까이 얼굴의 주요 특징이던 수염을 밀자 드러난 건 낯선 얼굴이었다. 이미 중년을 지나고 있는 그렇다고 노년이라고는 할 순 없지만. 무엇보다 수염이 없어지자 인중의 가장자리에 깊게 패어 있던 팔자 주름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그런 내 얼굴을 아내도 낯설어했고 무슨 요즘도 권위를 이용해 남의 용모를 단속하냐며 꼰대를 어이없어했다. 면도의 결과가 달랐다면 그분에게 감사.. 하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그분은 얼마 가지 않아 퇴임을 하게 됐고 나는 바로 다시 본래? 의 얼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턱수염 특히 콧수염을 기르니 팔자 주름이 눈에 덜 띄는 효과가 있다는 걸 그때 확실히 알게 됐다. 그렇지만 이미 한번 눈에 거슬린 팔자 주름은 계속 눈에 들어왔고 이제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컴플렉스가 되어가고 있다.


팔자주름 네 글자를 검색창에 넣는 것 만으로 떠오르는 연관어가 엄청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시술을 받거나 약이나 영양제를 바르는 짓까지 해야 하나.. 그런 것엔 아직 관심이 가지 않았다. 우선 원인부터 파악해 보니 노화로 인해 느슨해진 근육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쳐지는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그것을 의료의 도움 없이 극복하려면 역시 물리적인 마사지나 운동인데 그 운동방법이란 게 뭔가 하고 보니 입을 옆으로 최대한 찢는 그러니까 '이..' 하는 소리를 내듯 하며 광대를 승천시키는 것. 몇 번 따라 하다 보니 어.. 이러다 주름이 더 깊어지는 건 아닌가? 유튜브 영상의 한 의사가 나와서 그렇지 않다며 나의 우려를 씻어준다.


안심하고 몇 번을 더 따라 해 본다. 그리고 이건 결국 웃는 표정을 억지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 얼마 전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팔자 주름이 깊게 파인 이가 나와 너무도 힘없고 초췌한 모습으로 불러 더 가슴에 와닿던 노래가 떠 올랐다. 이건.. 팔자 주름은 요즘 웃을 일 없는 사람들의 '일종의 표식'이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기는 듯했다.


자신을 '일종의 가수'라고 소개했다. 그가 부른 '일종의 고백'은 너무 좋았다.

물론 피부의 노화가 더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지난 15년 동안 나는 그 처짐을 극복할 만큼 웃을 일도 없었나 보다 하는 자성이 뒤따랐다. 아니다. 극복할 수 없는 것을 자성이라고 하면 너무 슬픈가? 나이가 들 수록 웃을 일이 줄어드는 것이 무슨 반성할 일이라고.. 자성이란 말도 쓰지 말자.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노화도 팔자주름도 반성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히마리 하나 없던 가수의 팔자 주름은 뭔가 사연이 있는 듯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세월의 흔적인 주름은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같은 시간을 보낸 그 주름의 깊이는 다를 수 있을 것이니.. 웃을 수 있는 삶에 우린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대충 웃어넘기는 것도.. 결국 나를 위해 좋은 일일 것이다.




사우디 파견시절 국내 출장을 온 수염난 아빠를 낯설어 하는 큰아이와 피쳐폰으로 한 컷. 아래는 리무진버스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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