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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T 게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by 다자녀 디자이너

블랙핑크의 로제가 월드 스타 브루노마스와 듀엣을 하여 화제가 었다. '아파트 아파트'라는 강렬한 훅크가 있는 곡으로 전 세계적인 히트를 하여 빌보드. Hot 100에 30주 이상 머물었을 뿐 아니라 그래미어워드 노미네이트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요즘 케데헌 신드롬을 보더라도 케이팝은 이젠 정말 국내 소비용 대중가요가 아닌 세계인의 Pop 음악이 됐다는 걸 실감한다. 유럽의 헤비메탈과 미국의 팝 음악을 신격화하며 자란 나의 세대의 입장에선 정말 격세지감을 넘어 감개무량하다.


그런데 나는 이 아파트 훅크 송이 젊은이들이 엠티에 가서 하는 술자리 게임 구호? 에서 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리듬과 멜로디는 우리 때의 '삼육구'와 같긴 한데 게임도 룰도 낯설다. 게임을 나중에 알아서 인지 몰라도 나는 우리의 MZ들이 '아파트 아파트'를 주문처럼 외우며 놀았다는 사실이 어쩐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이 아파트가 아이들 입에 붙게 되었을까? 마치 이 아파트로 멍든 자신들의 미래를 희화화하는 것처럼 들리는 건 나만의 선입관이겠지..


집 값 상승의 폐해

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강력하고 효율적인 대출 규제로 부동산 과열을 견재해 왔다. 지난 6월 주말에 기습적으로 발표된 6억 이하 대출 제한은 투기 혹은 수요자들이 미처 손 쓸 틈도 주지 않고 시행되어 꽤 실효를 거두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고 다시 과열 조짐이 보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자전거래로 혹은 계약 취소등으로 가격을 고의로 띄우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등 이 불안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는 정황과 의심은 있지만 마땅한 대비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10월에 또 대책이 나왔다. 더 강력한 대출 규제와 감시 기구 설치. 부동산 전문가들은 의견이 갈린다.


주가 부양책처럼 사전에 대책이 나와야지 왜 맨날 사후 대책만 나오는 것이냐? 왜 뚜렷한 공급 대책은 없는 것인가? 왜 보유세 정책은 안 하는 것이냐? 이 많고 많은 불만 중에 가장 와닿았던 것은 과연 이 정부 역시 정확한 시그널이 무엇인가였다. 집 값을 하락시키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눈치만 보는 것인가? 설마 더 띄우는 걸 바라는 건..


10억을 주고 집을 샀는데 한 번이라도 20억으로 오르면 내 자산은 이제 20억 인 것이다. 다시 10억으로 내려가면 나는 불로 소득으로 벌은 돈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돈을 뺏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인간의 심보인 모양이다. 게다가 20억으로 가격을 올려놓은 사람 그 돈을 빚까지 내서 산 사람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물으면 간단치 않은 이야기가 된다.


5억 빚을 내서 10억 아파트를 샀는데 그 아파트가 20억이 되면 10억을 벌어 성공한 거 같지만 그래도 삶은 팍팍하다. 왜? 앞으로 남은 5억 빚을 갚는 것이 중산층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담대 금리 4%대로 가정하면 매월 약 250씩 은행에 갖다 바쳐야 한다. 30년간 이자포함 9억 가까이 된다. 결국 14억짜리 아파트를 산 셈이다. 그리고 그동안 고생한 것은? 외벌이로 아이를 둘 키우는 나의 지인도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운 좋게도 얼마 되지 않아 10억을 벌었다는 착시로 만족감을 얻었지만 당장 낡은 차도 못 바꾸는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물론 부부가 모두 고임금을 받는 맞벌이 부부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어쩌면 둘이 합쳐 고소득인 이들이 부동산 상승의 견인차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집을 산 사람도 빚쟁이라 삶이 힘들고 집이 없는 사람은 박탈감에 더 힘든 게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아무리 게임과 케이팝으로 젊은이들의 놀잇감이 되고 국위 선양을 한들 멍든 젊은 이들의 미래를 보상해 줄 수 없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껏 손에 쥐는 돈으로는 평생 월세 걱정을 하다가 노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를 거라는 불안감을 조성할 수밖에 없고 이런 불안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얼마 전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캄보디아에 유독 한국인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어 잡혀있는 이유가 그곳 현지인들 혹은 중국인에 비해 한국인들이 '고급인력'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고학력에 어려서부터 IT기기에도 익숙하고 다양한 문화에 친숙해 사기 범죄 같은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기에도 적합하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인질로 잡아 부모에게 고액을 뜯어내기도 좋았다고..ㅜㅠ


한국에서 아픈 청춘으로 방황하던 우리 젊은이들이 알고 보니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고급인력이라는 사실이 웃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범죄집단의 유혹에 넘어가 경을 치르게 된 어리석음을 비난해야 할까?


영유아 시절부터 부모의 사교육비 투자를 온몸으로 받고 치열한 경쟁을 치뤄 대학교를 나와도 정당한 대우와 희망을 부여받지 못하는 우리 젊은이들은 내 주위에도 얼마든지 있다. 취직이 어렵거나 겨우 찾은 직장이 정규직이 아니거나 낮은 임금에 궁핍하고 희망을 갖기 어려운 수많은 젊은이들.


IMF, 밀레니엄 버블로 얼룩졌던 나의 사회 초년병 시기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그땐 좋은 일자리에 비해 형편없는 자질의 인간을 많이 보았던 거 같다. 그런데 그때와 비교하여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자질은 상대적으로 훌륭하다. 그런 이들이 낯선 불모의 땅이나 다름없는 캄보디아로 향했던 것은 월 800만 원이라는 한국에서는 꿈꾸기 힘든 급여 때문이었다. 그 정도는 돼야 대출 끼고 집도 마련하고 결혼을 꿈꾸거나 투자의 시드 머니를 모으던지 아니면 좋은 차를 사서 인생의 리즈시기를 즐길 수도 있는 희망의 숫자일터 젊은이라면 모험 혹은 도전해 볼 만 하다 하지 않았겠는가.


소득대비 집값이 이렇게 높은데도 대출을 조이는 새로운 정책이 내 집 마련의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다. 현금 부자만 집을 살 수 있는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현금 없는 사람에게 이들이 바라는 건 평생 갚을 빚을 지게 하여 빨대를 꽂겠다는 것인가? 마치 뒤통수에 끔찍한 침이 깊숙이 박혀있던 영화 메트릭스처럼. 더 끔찍한 건 그렇게 대출이 늘면 경쟁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끝도 없이 더 오를 것이고 결국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자본에 의한 신분제 사회가 더 견고 해질 것이란 예상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 들은 도대체 어떤 세상을 원하는 것인가?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나는 한국의 '저질인력'이 모여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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