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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by 다자녀 디자이너

비가 온다.

앱으로 마을버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서둘러 나오는 길이었는데 젖은 옷으로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어 그냥 차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파킹을 하려는데 나도 모르게 차에서 나오는 음악을 같이 흥얼거리고 있었다.


'너와 잠이 들고 눈을 뜨고 와인 앞에 두고 함께 술에 취하고. 조금은 풀린 눈으로..' 그러다 여전히 가시지 않은 작곡가의 스캔들이 다시 떠올랐다. '혹시 이곡도 베낀 걸까?' 그리곤 다시 한심해졌다. 어둑하고 비까지 추적 오는 출근길을 함께하며 흥얼거리게 해 줬는데.. 좋았으면서 굳이..


좋아하던 그의 노래가 한 두곡이 아니었다. '스케치북'이라는 곡은 동기들과 연습해서 공연도 같이한 추억이 있다. 대체 그가 나한테 무슨 잘못을 그리 했다고 분노했었을까? 노래를 즐기며 받았던 감동과 공감 따위는 한방에 치워버리는 질투?.. 같은 단어는 감히 쓰고 싶지 않다. 난 그저 '별 볼일 없는 놈'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부질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자각. 그 처럼 '난 놈'들의 활약에 대한 감동보다는 부러움의 얕은 지층으로 덮여있던 바로 그 아래 '자각의 스트레스'라는 마그마가 분노가 되어 폭발했던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쿠키.. 말고 '뉴진스'를 만들어낸 민희진이라는 분 때문에 벌써 몇 년 전 한참 떠들썩했었다. 기자회견에서 쌍욕이 난무했다고 하고 그래도 별로 관심이 가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또래라고는 하나 어려서 만났어도 절대 안 친해졌을 거 같은 방시혁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까? 하도 논란이 되니까 당시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라도 저 여자를 한번 이해해 볼까?'


피프티피프티 사태에서 먼저 겪었던 '만든 자 vs 소유자'의 싸움에서 그때 나는 분명 소유권을 빼 돌리려 했던 외주사의 안 xx 프로듀서에 대해 공분했었다. 그리고 거기에 동조했던 아이돌 멤버들 까지도 결국 외면하게 됐는데 이번엔 조금 뭔가 느낌이 달랐다.


뉴진스의 탄생일화를 소개했던 한 예능프로에서 민희진의 차분한 얘길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의 직업과 성향이 소유자 쪽이 아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판단은 뉴진스라는 브랜딩으로 발현된 모든 성과물과 작품에서 느껴지는 제작자의 진정성이 나의 견해와 맞아떨어져서였을 것이다. 스웨덴이라는 먼 나라에 사는 학생이 만든 곡을 발굴해서 헐값에 사 왔다는 정보력과 '행운' 이외에는 상표권을 빼돌리고 저작권을 자신의 이름으로 몰래 등록하는 등의 수완(?)만이 돋보인 그런 인물들과는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런 프로듀서를 끝까지 어미새처럼 따른 멤버들(피프티피프티)은 정말..ㅜㅠ


뉴진스를 탄생시킨 그녀 역시 탐욕으로 순진한 아이들을 꼬인 악인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약을 무시하고 경영을 탐하고, 무당과 계략을 꾸미거나 풋옵션으로 받게 될 1000억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한다는.. 물론 나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가 조목조목 부정하는 사건들은 수사 혹은 재판으로 밝혀졌거나 더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큰들 만약 민희진의 애착 혹은 집착까지 이어졌을 재능과 노력들이 돈으로 쉽게 환산이 잘 안 되는 것이라면 어떻겠냐라는 상상을 나는 해보는 것이다.


예술을 돈으로 환산이 가능해진 것이 얼마나 됐을까? 그리고 제값을 받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미켈란젤로, 베토벤이 그 시절 저작권은 고사하고 형편도 녹록지 않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 그나마 더 비참하게 살다 간 고흐 같은 미술가에 비하면 낫다고 할까. 건축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발주처 담당에게 건축가는 '명예직'이 아니냐는 소릴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도 들었다. 아무리 큰 재능을 타고났어도 예술가들은 늘 가난하고 비루한 삶이 마치 훈장인 듯 재능을 부여받은 대가인 듯 그래서 하늘은 공평하다는 소릴 술안주로 삼던 폭력과 야만의 시절은 과연 끝이난 걸까?


만약 이 지구에 잇권과 계약서에는 정통하지만 재미는 없는 인간들로만 꽉 차 있다면 아무리 투자를 했던들 인류가 예술이나 기술, 문화를 이만큼 발전시켰을 리가 없다. 고흐가 살던 시대보다는 예술가의 대우가 나아지긴 했겠지만 여전히 세상은 재미없는 저들 개저씨? 같은 인간들이 칼자루를 쥐고 순수한 예술가들의 영혼을 거래를 하며 영원한 갑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걸 당연시한다는 소릴 그녀는 까발린 게 아닐까? 들여다보지 않고 그냥 하는 소리다.


온 세상이 사랑할 수 있는 노래 한곡만 작곡할 수 만 있다면 악마에게 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거 같던 시절, 공부는 왜 하는 것인지 나중에 뭐가 될지 내 집 마련 같은 건 꿈 측에 들지도 못하던 시절.. 만약 그 시절 작곡가의 꿈을 이루었었다면 그래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예술에 청춘을 바쳤더라면 지금쯤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영광은 잠시뿐 결국 한물간 대중음악 딴따라로 늙어 좋은 직장에서 좋은 차 좋은 집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인생은 생각보다 길구나.. 하며.. 후회를 했을까?


민희진의 광기가 드러난 인터뷰 영상에선 돈과 같은 숫자가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고 보이진 않았다.. 고 가정을 해본다. 그녀가 그 공개된 장소에서 조차 막말을 하며 내 작품 내 아이들 뉴진스에만 집착했다면 그녀는 기업을 책임지는 냉정한 사업가라기보다는 최소한 기획자 아티스트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면.. 결국 타협할 줄 모르는 예술.. 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불행하기 십상인가.


(여하간.. 잘 모르겠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뉴진스 돌려놔라!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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