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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대백과사전

놓지 말아야 할 의문

by 다자녀 디자이너

예기치 않게 입사했던 회사를 다닌 지 벌써 올해가 30년이 되었다. 회사 창립 기념일엔 보너스와 휴가 같은걸 직원들에게 뿌리는데 근속자에게는 10년 단위로 메달도 하나씩 준다. 그러다 보니 집에 메달이 2개가 이미 있는데 세 번째는 크기가 두배로 커진다. 순금이다.


1년 먼저 입사한 선배가 작년에 메달을 받을 때 이미 금값이 너무 올랐다고 하여 살짝 불안하였다. 올해부턴 안 주면 어쩌지? 그러나 다행히 그런 공지는 없었고 무사히 메달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금값이 이런 식으로 계속 오른다면.. 내년엔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많았다. 세대갈등은 이렇게 또..


기축화폐인 달러 dollar는 금본위제 화폐가 아닌데 세계 경제가 어찌 되려는지 실물인 금값이 치솟고 있다. 중국이 대량 매집한다는 소문도 있었고.. 하긴 돈은 이젠 종이 조각도 아닌 그냥 써버에 기록된 숫자에 불과할 세계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하는 위기가 온다면.. 이 세상에 불변할 가치가 있는 것은 땅 그리고 금이다. 물론 다른 값비싼 광물도 있겠지만..

이 귀한 금을 혹시 만들어 낼 순 없는가?'연금술'이란 말이 나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금을 못 만드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금은 실제적으로 인간이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초신성이 폭발하거나 행성이 충돌하는 수준의 에너지를 동반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물질이 바로 금인데 인력으로 그 정도의 에너지와 차폐시설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그렇다 해도 금은 도저히 채산성이 맞질 않는다고 한다. 생산에 성공한 다이아몬드는 가격이 하락 중이라고 한다.


물론 채굴에도 한계가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에게 발견되는 금은 모두 표피에 가까이 묻힌 것들인데 이것들은 지구 생성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모두 외계에서 운석처럼 날아와 지구 표면에 박혔던 것들이란다. 지구가 스스로 품고 있던 금은 인간이 도저히 파 내려갈 수 없을 만큼의 깊이에 있다.


선물로 받은 금 값이 치솟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런 경제적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고 나는 이런 고급 정보를 인터넷 아니 더 정확히는 유튜브에서 쉽게 접하고 AI에게 물어본다. 너무도 좋은.. 아니 편한 세상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참 궁금한 게 많던 어린이였는데 어머니가 같이 다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질문이 많았다고 했다.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나의 어린 시절은 그럼 어떠했을까 싶은데 나에겐 대신 이것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몇가지가 나오는데 왼쪽이 내가 갖고 있던것과 비슷해 보인다.


세계여행을 못해도 저 멀리 우주까지 원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던 탐사의 보고. 역사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던 지식의 장. 학습 대백과사전! 볼만한 만화책도 흔하지 않던 시절 나는 이 두껍고 무거운 책을 화장실에도 들고 들어가 한참을 앉아서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때부터인가.. 변비가..-,.-


80년대에는 장학퀴즈를 필두로 학생들의 상식 퀴즈 프로가 많았는데 이 학습 대백과 사전 때문이었는지 초딩 대상의 퀴즈 프로그램에 나오는 문제는 거의 못맞추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내 주위엔 나처럼 책을 좋아하고 똑똑한 녀석들도 꽤 많아서 왜 저리 쉽게 문제를 내는 걸까라는 생각만 했지 내가 그리 뛰어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런데 직접 애를 키워보니까.. 우리 애들 중엔 그런 애가 없다. 끊임없이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하던 아빠를 닮은 놈이 하나도 없다니.. 아이를 셋이나 낳으면서 나도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한 번쯤은 느껴볼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럴 수가.. 지금 헤아려 보니 어머니는 어쩌면 귀찮아하시면서도 혹은 답을 몰라서 겉과는 달리 속으론 기분이 좋으셨을 거 같다.


내때 생각하고 큰 아이 초딩때 부랴부랴 샀던 요즘 대 백과 사전..전혀 안본다. 다행인건 당근에서 반의 반값에 구입. -_-

아이들이 질문이 없는 이유는 어쩌면 현재의 나와 같은 이유일 지도 모른다. 스스로 궁금해하기 전에 인터넷과 유튜브가 밀어 넣는 수많은 정보를 채 소화도 하기 전에 무슨 질문을 할 수 있으랴.. 결국 이것도 시대상일 것이다.


스스로 의심하고 궁금해하지 않는 세대의 위험은 어쩌면 점점 양극으로 치닫는 현재의 위험을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다. 이런 식이면 우리는 결국 내게 주입되는 정보가 전부인 세상에서 결국 AI의 지배를 받거나 멸망하는, 한때 지구를 점령했던 포유류의 한 종으로 전락하게 되는 건 아닐까?


결국.. 나는 누구인가?

우주가 품고 있는 블랙의 공허함은 내 일상의 절점마다 다가오던 암전과 어쩌면 일맥상통한 충분히 감당해야 할 진리였을 것이다. 인간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우주적 탐구와 상상을 하는 순간 일상의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가 떠오르는 이유는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쇠퇴하여 낡고 소멸되는 대자연에서 그 존재가 사라져도 한 조각 문으로 남아 어느 한 우주 귀퉁이에 떠돌 수 있는 것은 신도 미처 몰랐을 기적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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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