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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의원

이젠 쉬어 가기 힘든 곳

by 다자녀 디자이너

어깨 통증이 시작된 지 벌써 한참 되었다.

오른팔을 올리고 자는 희한한 잠버릇 때문에 어깨 결림이 생겼는데 손을 끈으로 묶고 자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추석 전 그러니까 한 달 전에 한의원에서 침을 한번 맞긴 했는데 이후로 방치하다가 결국 다른 쪽 근육까지 통증이 번지게 되었다. ㅜㅠ.


그때 찾은 회사 근처 한의원의 여의사는 우선 기본적인 물리치료와 침시술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효과가 없으면 '약침'이란 걸맞아 보자고 했다. 약 30분 정도 저주파 물리치료와 침술을 시술받고 만원 정도의 치료비를 내고 나왔다. 초진이라 약간 더 낸 거 같다.


통증이 싹 가셨다고는 할 순 없었으나 추석을 지내는 동안 골프 연습을 할 정도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서 한동안 잊을만했다. 그런데 자세에 따라 통증은 여전했고 특히 최근에 오른쪽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토요일인 어제 집 근처 다른 한의원을 찾게 됐다. 아파트 상가 3층에 위치한 나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남자 한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오전 이른 시간이라 다른 환자도 없고 한적했는데 그래서인지 접수대까지 걸어 나온 의사가 아는 척을 한다. 생각해 보니 작년 즈음 허리가 조금 불편해서 침을 맞았던 기록이 있었다. 그때 받았던 이 병원의 인상이 기억이 났다. '아... 여기... 비싼 병원이었지.'




어려서부터 키가 유난히 크던 나는 운동도 좋아했지만 근육이나 살집이 잘 붙지 않았고 한참 젊은 시절에도 왜 그리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이 생겨 나던지.. 그럴 때마다 한의원은 아픈 곳을 섬세히 찾아서 콕 집어 침을 놔주고 따뜻한 찜질도 받을 수 있는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던 힐링 공간이었다.


10년도 더 되었을까? 집에서 한 블록 더 먼 곳에 나만의 안식처 같던 다른 한의원이 있었는데 주위에 더 크고 화려한 한의원이 몇 군데 있었지만 이곳을 찾은 이유는 병원만큼 조용해 보이는 인품의 의사가 여기저기 아프다는 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면서 손 끝으로 하나하나 아픈 곳을 짚어 섬세하게 침을 놓는다는 인상을 주었고 무엇보다 비싼'약침' 시술을 권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심적으로 평온함을 느끼며 그 짧은 시간 동안 늘 숙면에 빠지곤 했다.


너무 조용한 구석의 병원이 점점 손님이 늘어나는 듯 보여 다행이다 싶었는데 어느 날 치료를 받으러 가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워낙 조용해 보이는 그 선생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잠시 되었으나, 나는 역시나 경영상의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 되지 않던 침상. 그리고 비급여 항목으로 비싼 치료를 권하지 않던 그의 진료 방침. 늘 몇천 원 (당시 3천 몇백 원이던 기억이다.)의 치료비를 내고 나가던 나는 어느 날 의사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약침' 같은 건 안 권하세요? 했더니 그는 '약침 이요?.. 그게 뭐... 전 별로..' 라며 쓴웃음 같은 미소만 지었다. 나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던 순간.



어제도 난 선택의 여지없이 바로 그 '약침'을 처방받은 것이었다. 내 말을 몇 마디 듣지도 않던 의사는 본 침을 시술하기 전에 짧게 '약침이요' 라며 살짝 어딘가를 콕 찍었다. 본 침의 시술 숫자는 정말 과거에 받던 침에 비해 현저히 줄은 걸 느낄 수 있다. 30분 정도 치료를 받고 나니 아픈 곳이 좀 부드러워진 거 같았다. 그 근육을 콱 쥐었다 풀어주는 저주파 물리 치료기가 제일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 적인 느낌? 의사는 한의원에서 처음 보는 태블릿 pc와 연동하는 초음파 탐지기로 내 근육 부위를 찍어 보여주더니 다음번엔 더 비싼 죽염 앰플을 써서 침을 놔주겠다고 했다. 비용은 총 15만 원 정도 들 거라고 미리 고지를 해준다.


침술 치료가 이렇게 까지 가격이 오르다니 요즘은 이래야 경영이 되는 것인가? 하긴 병원 주위의 아파트 가격만 보더라도.. 이 젊은 의사는 내 집 마련은 했을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왠지.. 오늘이 이 병원에서의 마지막 진료일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약침이든 뭐든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한 적절한 처방이라면 돈을 못 쓸 이유는 없다. 그리고 내 주위에 이런 훌륭한 의료 시설이 있다는 게 어디인가? 지구상에 의료가 낙후된 나라나 오지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인구가 소멸하는 도시조차 점점 이런 의료 복지 혜택을 받기 어려워진다는데 나는 지금 배부른 소릴 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을 넘길 무렵 오줌 줄기가 적갈색으로 변하자 어머니는 동네에 용하다는 한의원 서울 강서구 화곡 사거리에 있던 재생한의원 이었다. 나의 은인인 원장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을 테지.. 으로 데려가 진맥을 받고 엄청 쓴 한약을 두 달 정도 직접 달여주셨었는데 다 먹고 오줌 색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식욕이 돌아서 그 이후로 키가 쑥쑥 크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한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간에 염증이 생겨서'였는데 이걸 줄이면 '간염'이 아닌가? 한약을 먹고 말끔히 나았다.


임상실험과 해부에 기초한 양의에서는 한의학을 인정 안 하고 무시하는 기조가 있다고 하나 어머니가 파킨슨 병 초기 증세가 있을 때 기가 쇠하셨다며 50만 원(25년 전 가격) 어치 보약을 덜컥 처방하던 분당 동국대 한의원의 그 돌x이 한의사의 말만 믿었더라면.. 정말..--; 분명 우리 삶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보살피던 좋은 한의사 선생님은 존재해 왔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특히 근육 어딘가가 뭉치고 뻣뻣할 때 받는 침술과 물리치료는 나는 아직도 한의원을 선호한다.


물론 이것은 환자의 근골격과 기의 흐름을 살피던 사라진 동네 한의사의 손 끝에서 묻어오던 심리적인 안정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만나는 한의원들에서는 '비급여'의 가림 속에 그 온기가 식어 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세속적으로 변해가고 점점 블루탈리즘 화 (Brutalization) 되는 요즘 나는 남은 생에도 은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새로운 의술의 적용, 그리고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의 지불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의학도 전통적인 방법만을 고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의사들이 모두 사명감에 청렴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러나, 환자의 생존을 위한 치료에 앞서 병원의 생존을 더 먼저 떠올려야 되는 각박한 세상이 결국 도래한 것이라면 이 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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