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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Dec 21. 2021

오늘도 쓸 글이 없어서 다행이야


 아이들이 종일 집에 있으면 나는 종일 아이들만 본다. 이제 아이들도 제법 컸으니 둘이 잠깐 놀라고 하고 나도 뭔가 해볼까 생각해봤지만, 늘 자석처럼 아이들 옆에 붙어 앉는다. 그래도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서 겨울방학 동안에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날의 일 중 가장 인상 깊은 일을 쓰려니 일상을 찬찬히 바라보게 되는데 하루에 짤막한 에피소드는 많아도 막상 글로 길게 풀어낼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매일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아? 아무 일도 없구나!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구나.’ 또 그동안 심각하게 생각했던 일들도 글로 적으려니 기껏 열 줄도 넘기지 못하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래, 아무 일도 아니었어.’ 쓸 글은 없지만 쓸 글이 없다는 것에 마음 편안해지는 이상한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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