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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Apr 21. 2022

오늘 내 마음의 날씨는 안녕할까?

 

 어느새 3월의 끝자락이다. 아직 코로나 확산으로 불안한 시기에 예솔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우솔의 유치원은 개학했다. 이제 고작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뿐인데 내 일상의 시간표는 잠깐의 쉼도 없이 빼곡히 쓰였다. 새 학기를 알리듯 점차 길어지는 낮은 하루를 재촉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부족한 잠을 깨운다. 집과 학교가 동떨어진 탓에 아이들 나갈 채비를 서둘러 차에 태워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아이들을 맡긴 해방감도 찰나. 요일별로 신청해둔 내 수업과 모임에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바삐 움직인다.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우울함을 느끼지 않으려 이것저것 신청했는데 역시 좀 과했다. 혼자만의 시간에 힐링이 되기를 바랐는데 잇따른 전문적인 조언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몫은 무엇일까?’ 결국 아이들이 크면서 할 수 있는 제 몫의 일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도 아직은 이른 듯 점심 먹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데리러 간단히 요기를 때우고 서둘러 예솔의 학교에 간다. 쉼표 없는 일과에 '방과 후 수업을 신청했으면 어땠을까?' 문득문득 생각이 들지만 먼저 도서관 상반기 프로그램이 올라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태권도 학원 시간과 겹치지 않게 신청을 했었고 이미 재료비를 내고 받은 상태였다. 물론 다 취소하고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할 수도 있었겠지만, 걱정 많은 엄마라서 코로나 시국에 오래 두기가 꺼림칙하다.


 그만 머리 아픈 생각의 꼬리를 잘라내고 예솔의 학교에 왔건만 또 우솔의 유치원 하원 시간이 다 되도록 하교 시간이 늦어진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교문을 나서는 예솔을 보자마자 손을 잡아채 차에 태워 유치원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우솔까지 극적인 가족 상봉을 이루어내면 학교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으며 간식을 사 먹이고 태권도 학원으로 데려다준다.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에 들어가면 신기하게 채워도 비워지는 냉장고를 다시 채우기 위해 마트에 간다. 나름 이 시간이 빠듯한 일정에 쌓여가는 숙제를 할 수 있는 짬이라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둔 장 볼 목록만 후다닥 사고는 차로 돌아와 한 줄의 선이라도 그어보려 집중한다. 섬광 같은 시간이 스치면 아이들 온라인 수업을 하러 또 차에 태워 집으로 달린다.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을 차 안에 있을까? 아이들을 보는 시간에 일하는 게 더 가치 있을까?’ 이제는 제법 자라서 둘이 노는 아이들 덕분에 운전하는 동안에 시간을 흘리는 생각만 하게 된다.

    

 여하간 집에 오면 노트북과 수업 재료를 책상에 꺼내두고 아침에 허물처럼 쌓아둔 집안 곳곳을 다급히 정리한다. 장 본 물건으로 다시 냉장고를 채우고 바구니에 잔뜩 쌓인 빨랫감을 세탁기에 돌린다. 개수대에 가득 쌓인 설거지를 끝내고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장난감을 정리함에 휙휙 던지면 수업이 시작된다. 물론 아이만 들으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궁금하다. 지금 아이들 나이의 수업 방법과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등등 온라인이어서 어려운 부분을 도우며 같이 듣는다. 그렇게 살짝 엄마의 반강제적인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정리함에서 장난감을 꺼내고 나는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낸다. 저물녘 축 늘어진 몸처럼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저녁밥을 차린다. 오늘은 예솔이 얼마 전에 먹고 맛있어했던 맑은 곰탕 밀키트를 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기면서 대부분 집에만 있어서 답답했지만, 반조리식품이 많아져 정신없는 하루의 끼니를 거든다. (일회용품을 좀 줄여야 할 텐데…)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온 남편과 함께 식사하며 오늘의 시시각각 쌓인 일들을 즐비하게 풀어놓는다. 아이들과 앞다퉈 이야기해서 시끌벅적했던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설거지하고 아이들은 만화를 본다. 그동안 나는 가방에 넣었던 숙제를 꺼내어 멈춰진 선을 다시 이어본다. 아이들과 있으면 나무늘보가 시곗바늘을 잡은 것 같은데 혼자 있으면 훅 켜졌다 사그라지는 성냥개비의 불빛처럼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후 8시. 아이들을 씻기고 잠자리에 들어야 해서 아직 다 못 그은 선을 가방에 넣는다. 침실에 누워 각자 골라온 그림책을 읽어주고 양팔 가득 아이들을 안는다. '오늘 내 마음의 날씨는 어땠을까? 우울하지 않으려 바쁘게 만들었는데 그냥 시계 속 태엽처럼 돌아가기만 한 건 아닐까?' 피휴피휴 작게 코 고는 아이들의 따스한 체온과 달콤한 냄새에 힘겹게 잠드는 몸을 일으킨다. 이제 몇 년 전처럼 밤을 지새울 체력은 없지만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는 몸을 위해 짧게 스트레칭을 하고는 다시 할 수 있을 만큼의 선을 이으려 가방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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