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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Jul 13. 2022

책을 비워내는 일

 


 나는 책을 좋아한다. 자주 읽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곁에 두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되도록 지니고 다닌다. 책이라면 어떤 분야든지 상관없다. 학생 때부터 차곡차곡 샀던 미술책이든 즐겨보는 에세이집이든 엄마가 되고서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이든 책장에 책이 빼곡히 꽂혀 있어야 안정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갔을 때도 도서관에 갔었다. (딱히 갈 곳도 없었지만….)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 나를 숨겨 오늘의 기분에 맞는 책 한 권을 골라 읽고 있으면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에 잠긴 듯하다. 책의 공간은 심각한 고민도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준다. 메마른 마음에 책이라는 분무기를 뿌려 충분히 적셔내면 꽃 한 송이 피어나 지친 자신의 선물이 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서점이 없는 섬에 살고 있기도 하지만 걸핏하면 도서관에 간다. 가족이 다 같이 쇼핑하듯 읽지도 못할 책을 잔뜩 빌려와서 집안 곳곳에 진열하면 비록 보지는 않더라도 집 안에 책이 그득하다는 인지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이 책장에 꽂히지를 않는다. 원래 책 욕심 많은 우리 부부의 책도 잔뜩 있었는데 출산 후 아이들 책까지 더해져 더는 들일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일 년에 한두 번씩 정리해서 한껏 나누는데도 돌아보면 왜 책장에 책이 가득 차 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꺼내 보지는 않지만 버릴 수 없이 소중한 책만 남았는데도 간간이 와르르륵 토해내는 책장을 보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렇다고 아이들은 크는데 이대로 책은 멈춰있을 수 없고…. 지금이 한 번 더 읽지 않는 책을 정리할 시기 같다.


 아무리 아기책이어도 꺄르륵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넘겨보던 날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앨범처럼 추억 묻은 책을 버리려니 역시나 망설여진다. 그래도 정리해야겠지? 계절의 바뀜에 따라 스스로 나뭇잎을 떨어내는 나무처럼 나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려면 이제는 비워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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