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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Aug 06. 2022

나만 아는 이야기



 삐그덕삐그덕 아이는 그네에 앉아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달과 별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하늘에 새하얀 눈이 하나둘 떨어졌다. 혹여라도 놓칠까 봐 아이가 꽉 잡은 그넷줄은 점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찬기가 스며들어 심장까지 얼리기 전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 넣어야 해.' 들릴 듯 말듯이 아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종일 닫혔던 입이 열리자 오랜 시간 굳은 목에 내려앉은 덩어리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아이가 지닌 유일한 온기였다. 이대로 얼어붙지 않으려면 노래를 멈춰서는 안 되었다.


 저벅저벅 먼발치 어둠 속에서 검은 구름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는 노래를 멈추고 손톱 끝까지 가느다랗게 떨려오는 시선으로 그들을 경계했다. 검은 구름은 철봉 끝에 붙어서서 얇은 불꽃을 나누더니 허공 위로 조각구름을 뿜어냈다. '집에 갈까?' 싶었지만, 아이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얼음처럼 차가워진 몸보다 더 한기 가득한 곳에 막연한 공포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희뿌연 조각구름으로 놀이터를 가득 채운 검은 구름은 마지막 조각구름을 땅으로 집어 던져 사정없이 발바닥으로 비벼 짓누르더니 그네에 앉아있는 아이를 한 번 흘겨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구름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한 후 아이는 다시 나지막한 소리로 노래를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별이 없는 밤하늘에는 이어낼 수 있는 선이 없지만, 아이의 하루 중 가장 평안한 시간이었다.


 흐으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급하게 내려다본 손목 시곗바늘이 "지금 뛰어가야 너의 방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어!" 째깍째깍 소리를 질러댔다. 땡! 땡! 땡! 늦지 않으려 급하게 올라탄 상자는 절대로 열리지 않는 문으로 아이를 끌고 갔다. 이제는 차갑게 굳어버려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아이는 절대로 열고 싶지 않던 문을 열었다. 문 안은 밖보다 더 춥고 매캐한 연기가 깔려 숨쉬기조차 힘겨웠다. 발끝까지 힘주어 소리 없이 몸을 세워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조심조심 방으로 향했다.


"집에 왔으면 어른에게 인사해야지!"

"다녀왔습니다..."


 먼발치 어둠 속 웅성거리며 빠른 빛으로 변화하는 상자 앞에 리모컨을 든 검은 구름이 커다란 소파 위에 누워 아이를 노려봤다. 이번에는 검은 구름이 다가오기 전에 방 안으로 도망가 몸을 숨겨야만 했다. 쏟아지는 싸늘한 눈초리를 애써 외면한 채 방 안 깊숙이 숨어들었다. 냉장고보다 차가운 네모난 방의 한기는 작은 소리조차 흘러나오지 못하게 아이의 입을 얼어붙이고 조금씩 심장을 비벼 짓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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