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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 큰 나무의 미혜 Oct 23. 2022

엄마 정말 많이 화났어!

나의 이야기



 그날은 유달리 지쳐있었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묵직해져 한걸음 옮겨내기도 힘겨웠다. 그런데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치원과 학교가 끝나자마자 각각 차에 태워 조금 먼 옆 동네 마트로 향했다. 얼마 전 우연히 들렸던 마트에서 피카츄 컵케이크를 봤었는데 이미 장바구니 가득 계산을 끝낸 직후여서 아이들과 다음에 오기로 굳게 약속하고서는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쌔앵- 차에서 내리자마자 잔뜩 신나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급히 뛰어가는 아이들을 헐레벌떡 쫓아왔는데 어라?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빵이 없었다. 불길한 마음에 힐끔 곁눈질로 큰아이를 훔쳐보니 이미 가자미눈이 되어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엄마 때문이야! 그날 샀으면 되잖아!" "미안해. 엄마도 없을지 몰랐어. 위층에 다이소 있던데 예솔이 사고 싶어 하던 할로윈 소품을 사러 갈까?" 입안에 설탕을 머금은 듯 달콤하게 녹아드는 말로 굽신굽신 아이의 비위를 맞춰가며 다이소를 둘러보는데 맙소사! 이곳엔 여태 핼러윈 소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난 뭐라도 사야겠어!" 마치 무엇으로라도 허전한 손을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아이는 집에 있어서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이것저것 집어 올리기 시작했다. "예솔아, 집에 필통 있잖아" "예솔아, 집에 노트 많잖아" 예솔아… 예솔아… 큰아이를 따라다니며 애걸복걸하는 사이에 누나 따라 이런저런 물건을 아슬아슬하게 끄집어내는 작은 아이를 본 순간 그만 꾹꾹 누르던 화가 압력밥솥의 증기 배출처럼 새어 나오고야 말았다. "얘들아, 엄마 정말 많이 화났어! 그만 집에 가자!"


 울먹이며 덜덜 떠는 아이의 손목을 잡아 차로 데려왔다. 퉁퉁 부은 눈에 빨개진 얼굴은 안쓰러웠지만, 끊임없이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엄마의 노고를 전혀 모르는 것만 같아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다. 아직 여덟 살인 아이에게 나도 다 기억하지 못할 말들을 랩 하듯 쏟아냈다. (아마 잔소리로 힙합 오디션에 나가면 우승할 정도이다) 글을 쓰기 위해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을 돌이켜보니 여느 막장 드라마의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목덜미 잡는 대사처럼 '내가 힘든데도 네가 원하는 걸 다 해줬는데 어떻게 계속 짜증을 내?'라며 내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았다. 그나마 다행은(?) 잔소리가 아이 관점에서 하는 말이 아님을 너무 잘 알아서 더 윽박지르기 전에 멈출 수는 있었다. 하지만 조금 커지는 소리에도 마음이 얼어붙는 아이라는 점도 잘 알아서 불편한 감정을 마주했더니 죄책감이 생겼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을 전할 때마다 마치 헐크 같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연약한 존재를 공격하듯이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화를 잘 낼 수 있을까? 내가 작은 일들에 예민해져 날카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삐딱하게 쌓아두기보단 생각과 감정을 잘 내보이고 싶다. 한동안 등한했던 육아서를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빌렸다. 그동안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방법만 읽었는데 이번에는 왜 화가 나며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관한 책만 샅샅이 찾았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슥슥 책을 넘길수록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집착하는 애착 육아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너와 나를 받아들여야겠다. 엄마가 되었으니 나의 육아는 끝나지 않겠지만, 아이들을 존중해주고 나도 존중받으며 독립할 수 있도록 꽉 쥔 마음을 조금씩 놓으려 한다. 일주일 동안 화에 대해 깊이 생각했더니 감정의 원인을 알아가며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도 독립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어떠한 감정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책들을 읽으니 제법 마음도 편안해지고….


 "엄마 어디가?" "응. 다이소" 결국 그날의 나는 왔던 길을 돌고 돌아 다른 다이소까지 가서 아이들이 원하던 핼러윈 소품을 샀다.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심각했던 걱정이 무색해지게 아이들은 몇천 원짜리 물건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고 함께 집안 곳곳을 꾸미면서 뿌듯한 눈빛을 내내 주고받았다. 에고… 우리는 이렇게 변덕스레 바뀌는 감정을 마주 보며 살아가려나 보다. 사실 화에 대한 고민은 순전히 내 불안감 때문이겠지? 역시 아이들을 믿고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가 복잡한 머리도 좀 식힐 겸 편의점에 커피를 사러 갔다. 이상하다? 분명 커피를 사러 갔는데 눈은 피카츄 컵케이크를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아마 이제부터 어느 마트나 편의점에 가도 피카츄 컵케이크부터 살펴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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