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재능을 가진 아이.
앞 장에서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아이 유형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겸손한 우리 부모들은 이 장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모두가 읽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꼭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부모의 입은 아이의 뇌다.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졌건, 적어도 수능이라는 시스템에서 그건 그리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머리가 안 좋아 보이고 자꾸만 성과를 못 내는 것처럼 보인다면 아이를 나무라선 안 된다. 바로 아이를 나무라는 여러분의 입이 아이를 자꾸만 멍청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어떤 신뢰를 받고 어떤 감동을 받는지가 결국 아이의 지능을 결정한다. 평범한 아이더라도 아름다운 부모의 입으로 자란 아이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반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라도 폭력적인 부모의 입으로 자란 아이는 그 재능을 꽃 피울 수 없다.
뇌는 쓸수록 발달한다. 실제로 런던의 택시기사들의 뇌를 조사한 결과 공간정보를 기억하는 해마가 발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선 '공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할 마음이 드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말은 아이가 공부로부터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가 공부를 싫어하고 또 공부를 잘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이다. 아이를 나무라지 않길 바란다.
그러니 우리가 앞 장에서 배운 말하기를 통해서 일단 아이가 '공부하게' 만들었다면, 계속해서 아이가 공부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정말로 중요하다.
1)평범하다는 것은 가장 가혹하다는 것.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평범한 아이가 가지는 불행은 '평범'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가혹하다. 아예 재능이 없는 아이는 일찌감치 다른 길로 빠지거나 적어도 자신의 불행을 인식할 계기가 없다. 그런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학업에 뜻을 두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아이의 대부분은 학업에 뜻을 둔다. 남들처럼 공부 스트레슬르 받고 남들만큼 공부한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내는 친구들을 항상 목격한다.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성과 차이가 아이들 눈에는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다.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도망칠 수 없는 열등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 가혹함을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한다. 평범한 아이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실망할 것이 아니라 연민을 느끼는 게 사리에 맞다. 그러한 성과가 자꾸만 반복되면, 결국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아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이들의 또 하나의 문제는 무엇이냐면, 자신이 좋은 성과를 내는 '특정 과목'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가 개입한다.
첫째는 그 과목에서까지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아이가 기댈 곳이 어디에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최후의 자존심 같은 것인데, 평범한 자신이 남들보다 나은 유일한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이는 그 과목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최악은, 그 과목에서까지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인데 이러한 경우 아이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슬픔에 잠긴다.
필자는 이러한 경험이 무수히 많다. 아무리 숙련된 상담자일지라도, 이 정도로 큰 좌절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말이 궁한 필자를 보며, 아이는 자꾸만 더 큰 울음을 토해내곤 한다.
둘째, 자신이 다른 과목에까지 시간을 쏟기에는 어느 하나도 똑바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남들보다 효율이 좋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한다. 아이가 비교하는 친구는 같은 시간을 쏟아도 우리 아이보다 높은 효율을 낸다. 아이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 친구보다 어느 하나보다 낫기 위해서, 아니 적어도 어느 한 가지에서라도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아이는 특정 과목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모든 면에서 상대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이 느끼는 비참함은, 그리고 그 비참함을 매시험마다 느껴야 하는 절망감은 기껏해야 열 몇 살의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좌절이 아니다.
그러니 평범한 아이에게 공부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더 나은 친구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기 이전에, 아이가 느끼는 불행감을 알아야 한다.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화가 나기 이전에, 아이가 느끼는 절망의 깊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고 있는 부모만이 평범한 아이를 '잘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다.
2)평범한 아이는 절대로 한 번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
평범한 아이를 망치는 가장 나쁜 태도는, 아이가 도전한 처음부터 성과를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그 말뜻 그대로 한 번에 성과를 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이라고 뭐 한 번에 성과를 내는가?
평범한 아이가 계속해서 평범한 이유는 여러분 탓이다. 평범한 아이가 한 번에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여러분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내비치는 실망감은 아이가 좌절하게 만든다. 그러면 아이는 다음과 같은 좌절의 과정을 거친다.
'노력-> 낮은 성과 -> 실망 -> 부담감 -> 기피 -> 노력 -> 낮은 성과'
여기서 핵심은 '기피' 단계이다. 학업이라는 것은 축적되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평범한 아이에게는 더 그렇다. 하지만 부모가 내비치는 실망감은 아이가 그 과목을 기피하게 만든다. 노력해서 낮은 성과를 내느니,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자기 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기피'를 경험하게 되면 이전의 공부가 빠른 속도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니 다시 도전할 때는 처음과 똑같은 수준의 성과밖에 낼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더 낮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험은 어려워지고 공부할 것은 많아지는데, 자신은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범한 아이가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성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하여 말할 필요가 있다. 좀 전에 말했듯이 학업은 축적이다. 아이가 단 번에 성과는 못 내었을지언정, 축적된 다음부터는 점점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축적'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학업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말하기는 이 '기피'의 단계를 없애거나 혹은 아주 빠른 시간에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니 아이가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는 다음과 같은 말하기 방식이 좋다.
1)"A야, 나름대로 노력하기는 했는데 성과가 안 나서 많이 힘들지? 어쩌면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실망하고 좌절할지 몰라. 그런데 엄마가 걱정하는 건, 우리 A가 엄마 때문에 그 실망감이 더 커지진 않을까 하는 거야.
엄마가 기대했을 텐데 네가 내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서, 그게 너를 더 괴롭게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어. 혹시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넌 지금 아주 잘못하고 있는 거야.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잘못한 게 아니라, 엄마 때문에 더 괴로워하는 게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엄마가 네가 공부하길 바랐던 이유는 네가 좋은 성과를 받길 바라서 엄마가 여기저기 뽐 내고 다니길 바라서가 아니야. 난 네가 공부를 아주 못해도 우리 아들 때문에 항상 행복해. 그러니까 행여라도 엄마가 너한테 실망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는 네가 어떤 성과를 냈건, 이번 시험에서 보여준 우리 A가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자랑스러워. 언제 이렇게 멋지게 컸나 싶기도 하단 말야.
A야,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우리 A가 노력하는 동안에, 엄마는 계속 행복할 거라고. 엄마가 대견해하고 멋있게 생각하는 부분은 네가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그렇게 힘들고 무거운 짐을 혼자서 거뜬하게 지고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이야.
넌 아주 쉽게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어. 성과가 좋지 않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 슬픈 일이 있을 때 좌절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서서 또 도전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면, 엄마는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고 행복해.
A야, 엄마를 더 행복하게 해주겠어? 엄마도 널 위해 노력할게. 그러니까 우리 성과가 나지 않은 게 슬프더라도, 멈춰 있지는 말자. 엄마는 정말 그거면 돼. 네가 평생 좋은 성과를 못 내도, 네가 노력하는 한 엄마는 항상 행복할 거야."
2) "A야, 너도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성적이 좋지 않아서 속상하지? 근데 A야,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사람이 한 번에 성공할 수는 없다고. 너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은, 너보다 어릴 때부터 너보다 많이 했을 거야. 그 친구들이 너보다 좋은 성과를 얻는 건 당연해. 공부한 총량을 따지면, 네가 걔네보다 적을 테니까.
엄마도 말야, 우리 A 앞에서 한 번에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자꾸만 A한테 못되게 말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거든.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계속 노력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무리 못나게 굴어도 우리 A가 엄마를 항상 믿어줘서야. 엄마는 엄마가 받은 걸 너한테 주고 싶어.
엄마는 네가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네가 엄마한테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당연하게 널 위해 기다릴 거야. 그리고 언젠가 우리 A가 목표를 이뤘을 때가 오면, 엄마는 너보다 훨씬 더 기뻐할 거야. 넌 엄마보다 나은 사람이 된 거니까. 엄만 그러면 정말 너무 행복할 것 같아.
그러니까 A야, 우울해 할 필요 없어. 네가 좋은 성과를 받고 싶으면, 걔네들보다 훨씬 더 많이 하면 돼. 노력하지 않고 좋은 성과만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야. 난 우리 A가 도둑놈이 되길 바라진 않아. 정의롭게 노력해서, 정당한 보상을 받았으면 해. 그러니까 남과 비교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우리 A가 정의로웠으면 해.
그러니까 A야, 우울해 하지 마. 다시 해보는 거야. 엄만 널 기다릴 거고 넌 다음 시험이 됐건 그 다음 시험이 됐건 아니면 수능 때가 됐건, 네가 원하는 성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다가 목표를 이뤘을 때 엄마한테 말해주면 돼.
그 동안 엄마는 하루도 실망하지 않고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행복할 거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표를 이뤘을 땐 더 행복할 거야. 엄마가 걱정하는 건 네가 여기서 멈추는 거야. 남과 비교하면서 멈춰 서고, 엄마가 실망할까봐 멈춰 서는 거, 그게 엄마가 걱정하는 거야.
멈추지 않고 노력해줄래. 네가 엄마한테 그랬던 것처럼, 엄마도 널 위해서 계속 노력할게. 우리 잘 해보자!"
3)보상은 성과가 아니라 과정에 부여.
가끔 아이가 너무 공부를 안 한 나머지, 이번 시험에서까지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아이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겠다는 위협을 하는 분들이 계시다. 단기적으로는 그러한 방법이 효과를 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방법은 더는 빼앗을 게 없게 되거나, 아이가 그것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됐을 때면 효과가 없게 된다.
실제로 아이들에 대한 통제는 보통 휴대폰이 가장 일반적인데, 아이들은 휴대폰을 대체할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심하게는 핸드폰의 유심칩만 빼서 친구의 남는 휴대폰에 채워넣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어떤 강대한 위협 앞에 인간은 낮게 수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맞서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가 가하는 위협이 자신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함으로써 상대를 무력화 하기도 한다.
위협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부모는 이와 같은 문제에 빠질 수 있다. 어떤 위협도 아이에게 더는 위협이 되지 못하는 상황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의 신뢰를 회복하기란 몹시 어렵고 아이는 자꾸만 엇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면, '금지'보다는 '권장'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좋은 방법이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는 그러한 보상이 자꾸 지속된다면 그것을 감당할 경제력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보상을 주기 위해 소모되는 경제적인 비용은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몇 번의 보상만 확실하게 제공한다면, 아이는 더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문제는 '무엇'에 보상을 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정답은 성과가 아니라 과정에 보상을 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평범한 아이는 한 번에 성과를 낼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어떤 보상을 내걸건, 아이가 한 번에 보상을 타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보상을 타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그 보상을 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보상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려 든다. 일종의 '신포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주지하듯이 평범한 아이는 공부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여러분이 바라는 바는 일시적인 성과가 아니라 꾸준한 성과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소 기다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다리는 동안에 아이가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아름다운 말뿐만 아니라 아이가 해나가는 과정에 대해서 계속적인 보상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보상을 과정에 걸고 성과와 무관하게 보상을 제공한다면, 아이는 노력을 목표로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평범한 아이는 성과가 아니라 노력에 주목해야 결국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과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에야 비로소 성과가 나는 것이다.
또한 성과에 보상을 제공하게 되면, 아이의 과정에 개입할 수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건 아이는 성과를 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이 채근대는 말을 할 때마다 아이의 입에서 "알아서 할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성과에 보상을 걸었기 때문에 성과가 나올 때까지 개입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에 성과를 부여하게 된다면, 언제든 여러분의 아이를 다독일 수 있다. 결국 과정이란 여러분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도 여러분에게 잘 보이려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과정에 보상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면, 아이가 심각하게 불성실한 것이 아니라면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여러분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그 보상의 정도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
정말 누가 봐도 열심히 했다면, 성과와 무관하게 약속한 모든 보상을 다 주어야 한다. 다소 애매하다면 절반의 보상을 주고, 누가 봐도 부족하다면 아주 조그만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성과가 나지 않았을 때, 어떤 보상도 제공 받지 못한다면 아이는 더는 공부를 계속 할 이유가 없다. 아이가 계속 공부를 해나 갈 명분을 주어야 한다.
아이의 입에서, "그래도 열심히만 하면, 원하는 걸 들어 주시니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정에 성과를 부여 하라. 그리고 그 과정이 쌓이게 된다면, 결국 아이는 축적된 공부를 바탕으로 자기 욕심이 생기고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니 보상을 제공할 때에는 반드시, 성과가 아니라 과정에 부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