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아이.
사실 이번 장에서 다룰 아이 유형은, '평범한 아이'와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이를 따로 떼어 설명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어린 아이의 대부분은 정말로 잘하는 게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아이가 '아이'인 이유는, 무언가를 잘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무언가를 목표로 할 만큼 현명함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에도 부모는 조바심이 난다. 자꾸만 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묻고 하고 싶은 일을 묻는다. 냉정히 말해서 30이 넘은 필자도 아직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 당장 내년에 무슨 일을 할지도 확신할 수 없다. 한 평생 공부하며 살았지만, 향후 필자의 수십 년을 먹여 살릴 '진로'를 결정할 현명함은 조금도 없다.
그런 일을 고작해야 열 몇 살인 아이들에게 결정하라니, 부모들도 참 너무하다. 냉정히 말해서 기껏해야 10대의 현명함으로 결정한 진로가 얼마나 아이에게 지속성이 있겠는가. 그러니 아이에게 커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필자가 '잘하는 일'은 모두 7년 이상의 고된 훈련을 거친 후에야 나타났다. 강의면 강의, 상담이면 상담, 글쓰기면 글쓰기, 어느 하나 쉽게 얻은 것은 없다. 그런데 무언가를 꾸준히 노력한 일도 없는 아이가, 어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부모가 먼저 조급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잘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어하는 것도 없고 더 크게 말해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할 일은 그런 것들을 하나씩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결코 한심하게 볼 일이 아니란 것이다.
다만 재미난 것은, 때로는 스치듯 건넨 한 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국어 강사이지만 철학을 전공하였다. 현역과 재수 모두 철학으로 학과를 결정한 것은 큰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1)진로와 관련된 말하기
초등학교 4학년 때인지, 그것도 아니면 5학년 때인지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큰 누이가 필자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큰 누이에게 "자전거는 어째서 움직일 때만 넘어지지 않아?"라고 물었다. 누이는 내 질문에 "그건 너무 철학적인데."라고 답하였다.
그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 맹세코 나는 '철학'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내가 철학에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이의 그 말은, 내가 철학에 적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실제로 철학을 전공하게 했으며 대학에 와서는 나름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렇듯 스치듯 건넨 한 마디가 아이의 진로를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잘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우선 가벼운 칭찬으로 시작해 아이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
사소한 장난감이라도 아이가 그럴싸한 것을 만들어낸다면, "우리 A는 참 손재주가 좋아. 나중에 기계 같은 걸 만지진 않을까?"라고 한다든가, 자동차에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 A는 엄마도 모르는 걸 아네. 나중에 자동차 만드는 일을 하지는 않을까?"하는 등의 칭찬을 건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들을 상담할 때면, 우선 문이과를 결정하게 한 후, 관련된 학과를 전부 늘어 놓는다. 이후 학과명만 보고 무슨 일을 할 것 같은지를 생각해 보게 하고 관련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도 이미 잊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는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던 아이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보통 자신은 단순히 관심을 표현했을 뿐일 때, 엄마가 했던 어떤 말들이 아이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좋지 않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이후의 아이에게 너무 노골적으로 부모가 원하는 방향을 제시하게 되면, 오히려 그 방면은 처다도 안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좀 있는, 그러니까 중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칭찬을 두루뭉실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2) 잘하는 일 만들어 주기.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통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자신이 어느 하나 특출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친구들 중에는 꼭 무언가 하나를 잘하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대인관계면 대인관계,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는 어디나 있다.
하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디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느 하나 특출난 게 없다.' 등의 말하기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 말은 아이가 의식 저편으로 밀어 두었던 열등감을 꺼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말들보다는 아이가 잘하는 일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도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 7년 이상의 시간을 쏟았다.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를 예로 들자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한 가지 선택한다. 그 다음 그 과목에 대해서 무한한 칭찬과 기대를 표현한다. 다른 과목에는 일체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아이는 일반적으로 엄마가 기대하는 과목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리고 그 과목이 자신이 제법 흥미도 있어하는 과목이라면, 아이는 그 과목을 중점적으로 공부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꼭 아이의 흥미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수학에 흥미가 없어 하는데, 부모의 기대 때문에 수학 과목에 기대를 표현한다면, 아이는 부담감만 커진다. 그러니 우선 아이가 그나마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찾고, 그 과목을 열심히 하기로 약속한 후, 그에 대한 기대를 지속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또한 아이가 어떤 성과를 가지고 오건, 아이가 받아 온 성과에 만족하고 기쁨을 표현해야 한다. 평범한 아이는 결코 단 번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우리 아이는 평범하고, 그렇기 때문에 노력해도 한 번에 성과를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했고 그 노력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아이가 노력한 만큼 정당하고 마땅한 칭찬을 해주는 것에 인색해져서는 안 된다.
혹은 공부가 아니라 진로와 관련된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중고등학생의 경우 부모가 아이에게 과제를 내어주는 것은 아주 부정적이다. 시작할 때 말씀드렸지만, 부모는 교육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어떤 진로를 알려주고 싶다면,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고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아이의 흥미를 바탕으로 부모가 직접 찾아 보고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와 다시 이야기를 하고, 대화에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조사해야 한다.
평범한 아이의 진로가 분명해지는 것은, 대부분 부모의 각별한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일지라도, 이러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아이의 꿈이 막연하다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리고 진로와 관련된 어떤 활동을 하였을 때, 마찬가지로 그것이 얼마나 조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건 간에 무한한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아이도 알고 있다. 평범하다는 것이 바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부모의 표현에 쑥쓰러운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부모의 거짓이 가지는 의미를 알 정도로는 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