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가 찾아 온 경우
아이가 공부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슬럼프가 찾아 오는 경우가 있다. 사실 학습적인 슬럼프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부모가 아이의 슬럼프를 찾아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교육자가 아니지만, 부모는 여전히 부모로서의 역할이 남아 있다. 이 장에서는 말하기방식보다는, 아이가 학습적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1) 슬럼프가 찾아 온 부분 파악하기
아이가 어딘가 힘 없어 보이고 자꾸 짜증 섞인 말을 꺼낼 때, 보통 아이는 어디선가 문제가 생긴 상태이다. 단순한 학업 부담감과 스트레스 때문일 때도 있지만, 잘 되던 과목이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다든가, 잘 안 되는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여전히 답보 상태이라든가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우선은 그런 아이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캐치해 낼 수 있는 관찰력이 부모에게는 필요하다. 그리고 앞선 장들의 내용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라면, 아이의 미묘한 변화도 예민하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의 변화가 관찰된다면, 우선 아이를 대화의 장에 앉혀야 한다. 맛있는 저녁은 그런 자리로는 안성맞춤이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위해 비싼 식사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부모님들이 계시다. 물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다면 힘든 일일 수 있다. 그 경우는 가볍게 산책을 나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고기 종류의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6시 이후의 고기 섭취는 사람을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주고 대화에 임함에 있어 긴장감을 줄여 준다.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썩 괜찮은 음식이 바로 고기인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또한 같은 음식을 먹을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가지고 있던 방어 기제가 조금 이완되기도 한다. 이래저래 6시 이후에 함께 먹는 고기는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말고 최근의 학업 상태에 대해서 묻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가 어디서 고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이 만일, 아이가 하고 있는 일이 잘 되지 않는 경우인 것을 파악한다면 아이가 슬럼프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2) '기한'을 설정하고 '보상'을 약속하기.
아이의 슬럼프를 파악했다면, 성급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기한'을 설정하고 '보상'을 약속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학업적으로 가지는 슬럼프는 대부분 이유가 비슷하다.
어떤 과목이건 낮은 점수에서 10점 20점을 올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70~80점 대에서 한 두 문제를 더 맞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된다.
고등학교를 예로 들자면, 40점이 50점이 되기 위해서는 10시간의 공부가 더 필요하고 50점이 70점이 되기 위해서는 15시간의 공부가 더 필요하지만, 70점이 80점이 되기 위해서는 20시간이 더 필요하다. 다시 말해 40점을 받던 아이가 80점이 되기 위해서는 대략 45시간 정도의 공부가 더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강사를 만났거나 재능 있는 아이라면 이 시간이 급격히 단축되기는 하지만 고등학교 공부란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터라 평범한 학생들은 한 과목당 60시간 정도의 공부 시간을 투자 해야 80점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 보통 6과목 정도를 시험 보기 때문에 360시간 정도가 필요하고 이를 날짜로 계산하면 꼬박 15일을 공부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은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두 달에 걸친 내신 기간 동안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두 달을 60일로 계산하였을 때 일 평균 6시간을 공부하면 되고 이는 학교에서의 시간만 충분히 활용해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기 위한 노력이다. 학교 시험이란 것이 대부분 객관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정확히 그 문제를 맞을 실력이 되기 이전까지는 그 문제를 맞을 수 없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80점인 학생이 4점짜리 한 문제를 더 맞기 위해서 10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을 때, 9시간 59분 59초까지는 그 4점짜리 문제를 맞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90점에서 한 문제를 더 맞기 위해서는 20시간 가까이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데, 19시간 59분 59초까지는 시험장에서 그 문제를 맞을 수 없다. 물론 운이 따른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아이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시간은 시간대로 쓰는데, 문제를 맞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아이는 조급해지고 예민해진다. 때로는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부모는 아이를 슬럼프에 빠트린 과목을 찾고 그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예컨대, 3일 정도는 그 과목만 공부하도록 하고 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면 3~5일 정도의 자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때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한'은 짧게, '보상'은 길게 주는 것이다. 여러분이 아주 관찰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관찰할 때 쯤엔 이미 아이가 충분히 지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가장 지칠 때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한 걸음'일 때 우리는 더 내딛을 수 있다. 자신의 앞에 절망뿐이라면, 누구도 쉽사리 걸음을 옮기진 못할 것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고작해야 '한 걸음' 혹은 '몇 걸음'이다.
그러니 아이가 슬럼프를 겪는 과목에 집중할 시간을 지나치게 길게 설정하는 것은 아이에게 독이 된다. 긴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는 노력하려 하기보다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슬럼프에 그대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 기한을 짧게 주는 것이 좋다. 필자는 길어도 5일 평균적으로 3일 정도가 적정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아이가 충분히 성실했다면, 아이에게 휴식이라는 보상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보상의 시간은 길어야 한다.
보상이 길 때, 부모들은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무 긴 시간 휴식을 주면 애가 오히려 공부에 지장이 가지 않을지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슬럼프'를 겪을 정도의 학생이라면 아무리 긴 시간을 주어도 아이가 더 조급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휴식 시간으로 5일을 주건 1주일을 주건, 아이가 스스로 다시 공부에 뛰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목적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공부에 지친 아이가 스스로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충분한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동력은 아이가 이제 몇 걸음 남지 않은 슬럼프 극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어 준다.
두번째 중요한 점은, '보상'의 시간에는 일절 손 대지 않는 것이다. 가끔 휴식을 약속하고서는 눈치를 주는 부모가 있다. 그것은 휴식이 아니다. 그저 방치에 불과하다. 아이에게 휴식을 주었다면, 아이가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건 드라마를 보건 밖에 나가서 놀다 오건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아이가 더 적극적으로 쉴 수 있도록 용돈도 쥐어주고 놀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아이가 부모가 제공하는 '보상'에 신뢰를 느끼게 한다. 또한 자신이 받는 보상이 자신이 '기한' 동안에 열심히 한 대가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이전의 '기한'에서는 성실하지 못했더라도 이후의 '기한'에는 정말로 최선을 다하게끔 만들어 준다.
부모는 항상 멀리 봐야 한다. 아이는 여러분보다 오래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가 조금 불성실하게 약속한 '기한'을 보내더라도, '보상'만큼은 확실하게 챙겨 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약속의 '기한'에 아이가 더 성실하게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보상'의 시간 동안에 아이를 '혼자 여행'에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필요하다면 가정학습을 써도 좋다. 중고등학생이면 이미 충분히 다 큰 나이다. 여러분이 품에 끼고 들 만큼 어린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얼마든지 혼자 여행을 갈 수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의미는 실로 다양하다. 일상에서의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고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혼자 하는 여행이 아이의 독립심을 키울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가서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등등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학업 과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설렘은 아이를 들뜨게 한다. 그리고 혼자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이 스스로 어떤 독립심을 기르게 된다. 이러한 독립심은 슬픔을 극복할 때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든다.
다시 말해, 슬픔을 여기저기에 토로하며 누군가에 기대고 해결책을 상대로부터 구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를 통제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되게끔 도와준다는 것이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결코 타인이 아니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 안에서부터 차 오르는 강렬한 감정이다. 그것이 자신감이건, 만족감이건, 아쉬움이건, 조급함이건 상관 없다. 오직 자기 안에서 차 오르는 어떤 감정만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고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 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다.
그러니 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서 아이가 슬기롭게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