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 관계가 서툰 아이
어른이 된 후 새로 친구를 사귀다 보면, 자연히 인간관계가 넓고 얕아진다. 사실 좁고 얕아질 때도 많이 있다. 반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는 점점 더 깊어지고는 한다. 왜 나이가 들면 새로 깊은 관계의 친구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답변이 있겠지만, 필자는 스스로가 가진 위선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란 기본적으로 꾸밈 없는 날것의 모습 그대로다. 반면 어른이 된 후에는 어느 정도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포장하고는 한다.
그 포장지라는 '위선'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스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저 사람이 알고 있는 '나'가 '진짜 나'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어른이 된 후에 사귀게 된 사람과는 깊은 관계가 되기 어렵다. 그것은 사회적 인간이 되는 어른의 모습이고 또 성숙한 모습이지만, 순수한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슬픔을 인식하는 날이면, 휴대폰은 어느새 어린 시절의 친구의 번호를 누르고 있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친구란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공부'와 '친구'의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절대 공부가 친구보다 앞설 수 없다. 공부야 말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막말로 재수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친구는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다시 만날 수 없다.
다시 말해, 만약 아이가 대인관계에 서툴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공부가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 일이다.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을 공부로 이끌어 주고는 한다.
대인관게가 서툰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과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다. 무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의 문화'가 아니라 '10대의 문화'를 따른다. 그리고 십대의 문화란,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과 웹소설> 등을 말하는데,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혼자 즐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혼자' 즐기기 시작하는 경우 지속적으로 혼자로 남는 경향이 짙어진다. 또한 아이의 성향 자체가 폐쇄적으로 변하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폐쇄적인 사람은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 나가기 어렵다. 다시 말해, 10대의 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는 '타인과 함께' 문화를 향유하기보다는 '자신과 문화'와의 직접 대응을 하게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혼자 남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인관게에 서툰 아이가 10대 문화에 과하게 노출되는 경우 상황은 매우 악화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또래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 줄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또래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1) 뚱뚱하거나 지나치게 마른 것 등 '몸'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는 경우
어떤 것이 '아름다운 몸'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과학적으로 '정상적'인 체중이란 것은 있다. 그리고 이 과학적 관점은 사람들의 일반적 관점에 부합하기 마련이다. 건강한 육체가 주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큰 호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이가 과체중이거나 체중미달인 경우, 아이는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또래 친구들의 눈에 그것은 놀림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취약한 10대 시절에, 자신의 몸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아이로서는 몹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육체적 놀림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조롱이 아이를 매우 위축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위축감은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져 아이가 행하는 일에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어른들 생각에는 그런 조롱과 무시를 이 악물고 갚아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필자의 오랜 관찰로 볼 때, 대인관계에 서툰 아이들은 대부분 살이 쪘거나 말라 있었다. 이러한 아이들은 항상 위축되어 있었고 언뜻 보기에 쾌활해 보이는 학생도 심층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몸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 경우 비단 자존감의 하락으로 인한 자신감 저하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방어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방어적인 사람이란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인정하기보다는 그 행위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을 말한다. 재밌는 것은 방어적인 사람의 대부분은 공격적인 언어습관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공격적인 언어습관은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방위 행위이다. 공격 받지 않기 위해 상대를 먼저 공격함으로써 자신이 타겟이 될 가능성을 줄인다거나, 자신의 컴플렉스를 상대에게 씌움으로써 자신이 상대보다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느끼려 한다.
슬픈 일이다. 너무 오래도록 상처를 받아 왔기 때문에, 조금의 상처로도 남들보다 배는 아프다. 그러니 조금도 상처 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어떤 잘못도 인정할 수 없고 또 불가피한 경우에 자신의 잘못은 결코 큰 일이 아니다.
이러한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아이들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방위 행위를 한다.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말 때문에 불안해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생들은 피해의식에 싸여 있다. 피해의식은 주변 사람들을 떠나게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유머'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친구끼리 건네는 사소한 농담과 작은 장난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그것을 배려하는 건 어른이 할 일이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피해의식에 둘러싸인 학생은 친구들이 어려워하는 학생이 된다. 친해지고 싶어도 이것저것 배려하고 신경 써줄 것이 많으니, 이용하는 게 아니고서야 진심으로 친구가 되어주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피해의식이 있는 아이는 부모도 통제하지 못한다. 어른의 조언도 아이에게는 지적으로 들리고 결국 싸움만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학생들은 공부보다는 우선 운동을 시키는 것이 좋다. 운동이 주는 효과는 다양하지만, 이런 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몸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큰 효과를 보인다. 사실 남자들은 헬스장에 가면 운동하는 시간보다 거울을 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만큼 운동이란 것은 자기애를 높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정말로 학업을 하길 원한다면, 우선은 아이의 몸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된 몸을 바탕으로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피해의식을 줄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또래 문화를 습득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또래문화를 누리게 된 이후에는 아이가 자연히 또래의 고민을 공유할 것이고, 학업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체형을 변화시키는 것은 몹시 고된 일이다. 필자 역시 47kg에서 63kg까지 증가시키는 데에만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성인이 되어서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하는 데에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상대적으로 의지가 약한 아이들은 어쩌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부모가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가 운동하고 온 수고로움을 말해주고, 그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지 말해주고, 식단관리를 도와주는 것은 그 시작이다. 하지만 칭찬도 과하면 독이 되듯이, 너무 잦은 칭찬의 효과가 낮다.
운동의 경우 최소 한 달부터 그 효과를 보이며 3개월까지는 본인만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근육의 경우에는 첫 한 달 동안은 운동 신경이 발달할 뿐 근육량 자체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운동 시작 한 달까지는 몸의 변화보다는 '운동 능력'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또한 시작한 지 한 달 동안은 1주일마다 칭찬을 해주어도 효과가 떨어지지 않는다.
운동 시작 한 달 후에는, 3주 정도의 시간을 갖고 칭찬을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칭찬을 할 때에는 전체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특정 부위를 언급하며 칭찬하는 것이 좋다. 살을 빼는 경우에는 먼저 빠지는 부위가 있고 근육을 늘리는 경우에는 더 열심히 한 부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줄 때에 아이는 큰 위로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운동 시작 세 달 후에는 슬슬 운동으로 인한 효과가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뼈골격을 바꿔주는 시기이다. 체중이 눈에 띠게 늘거나 줄지 않는 대신 더 나은 골격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서 아이에게 알려 주며 정확히 어떤 면에서 체형이 변화했는지를 짚어주는 것이 좋다.
운동 시작 여섯 달 후부터는 이제 육안으로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체형이 변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앞으로의 변화는 미미하다. 하지만 이때 포기해 버리면 목표만큼의 체중이 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때에는 다시 칭찬을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모의 칭찬에 힘 입어 자신의 몸을 변화시킨 아이는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 또한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이 힘들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될 때에야 비로소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화가 돌아오게 된다. 부모에게도 수고로운 일이 정당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2)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
가끔 보면,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학생도 친구관계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학생들은 몇 마디만 나눠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배려 없는 말하기, 부족한 눈치 등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은 언어에서부터 티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가 '내향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사회성 부족'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은 과학적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부득이 사정이 어렵다면 아이의 평소 말하기 습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순히 내향적인 아이는 타인을 비하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내향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지향'이 자신의 '안에' 있다는 뜻이다. 즉 관심사가 자신의 안에 있고 이런 아이들은 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타인으로부터 흥미를 느끼는 정도가 남들보다 적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들은 문제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내향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서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들은 굳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지 않을 뿐, 마음이 맞는 친구가 한 두 명쯤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아이들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말하기를 하거나, 타인을 비하하는 말을 자주 한다. 사회성이라는 것은 타인의 상황과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다. 평소엔 짓궂은 장난을 치다가도 아이가 기분이 나빠 보이는 날이면 그런 장난을 치지 않는다. 또는 자신이 실수했다고 느끼면 거침없이 사과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성이 떨어진다면 타인의 기분 살피기에 서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이들이 굳이 '악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런 말을 함으로써 그 자체로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러한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웃는 것'이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는 기본적으로 '유머'를 '생산'해내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생산된 유머를 반복 재생할 뿐이고 그러한 모방을 통해 상대방이 웃기를 바란다.
흔히 말하는 '2절까지 한다.'는 말이 나온 이유도, 유머를 생산해 내지 못하는 사람은 상황에 맞게 유머를 꺼내 들지도 못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에게는 진짜 '유머'라는 것이 타인을 비하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어야 한다. 대부분 인기가 많은 아이들은 자신을 깎아내리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또한 자신이 놀림거리가 되는 것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놀림 받은 만큼보다는 조금 적게 상대를 놀린다. 사회성이 있는 사람은, 이러한 과정이 어떤 계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야 말로 타고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에게는 이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자신이 놀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상처 받거나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여유롭게 그것을 받아주는 것이 유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말해주어야 한다. 또한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깎아내릴 때 그것이 유머를 야기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행여 아이가 자존감이 깎이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는 자신의 치부를 소재로 유머를 만들어낼 시도를 하지 않는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으로 소재를 삼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다.
또한 자꾸 자신을 비하하는 말하기를 한다면, 아이가 위축될까 걱정하시는 부모도 계실 것이다. 물론 지나친 것은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유머'를 위할 때만 자신을 비하하도록 유도한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정말 더 큰 문제는, 타인을 비하했다가 만들어지는 구설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친구가 주는 위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친구 문제만큼 아이를 힘들게 하는 일도 없다. 친구가 있어야 공부도 할 수 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원만한 대인관계를 느낄 수 있게 부모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살펴 주길 바란다.